직장생활의 허무함을 느끼기엔 아직 설익은 1년 치 신입 사원은 사대보험이 되는 회사라면 이 한 몸 바치리라 결단했다.
2년의 공백기를 청산하고 중견 기업에 응원과 박수를 받으며 입사했기에 아, 이제야 학자금을 청산하겠구나 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긴 공백기로 마음이 바닥난 상태에서 입사일을 마냥 설렘과 기대감으로 기다리진 못했다.
가슴을 쓸어내릴 땐 손바닥이 위에서 아래로 향하는 것처럼 쌓여 있는 빚더미 위에서 하루라도 빨리 파산하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피곤한 표정의 이사님이 갈라진 목소리로 다음 주에 신입사원 입사 기념으로 부서 회식이 있으니 한 명도 빠짐없이 참석해 달라고 말했다.
조용했던 사무실이 갑자기 부산스러워졌고, 곧이어 목소리를 가다듬지도 않은 채 나를 호명한 덕분에 모든 눈이 내게로 꽂혔다.
어긋난 삑사리 때문인 건지 아니면 나에게 거는 다른 무언가가 있는 건지 부담스러운 시선들이었다.
회를 좋아하냐는 질문에 순순히 즐겨 먹지 않는다고 대답했다가 이사님의 얼굴이 금세 실망으로 번져갔다.
어른의 투명한 감정표현이 당황스러웠다. 이럴 땐 회를 먹을 수 있다고 거짓말이라도 해야 하는 건지 정직하게 말한 게 잘한 건지 도무지 답 없는 딜레마에 빠졌다.
그날은 하루 종일 친하지 않은 회에 대해 생각했다. 팔딱거리는 물고기, 생선 눈깔을 빤히 쳐다보다 목을 졸라 오드득 씹어 먹고 싶어졌다.
결국은 살아 있는 생선 대신 매콤한 볼때기가 상에 올라온 뒤에야 회식은 시작됐다. 이깟 회식 메뉴가 뭐라고 이사님을 실망시켰는지 애꿎은 볼때기의 눈깔을 째려봤다.
여섯 달 먼저 입사한 동기가 다들 면접 때 어땠냐며 이야기의 말문을 열었다. 자기가 면접 볼 당시 면접위원들의 반응이 안 좋아 떨어질 줄 알았는데 어떻게 붙게 되었다며 웃었다.
생각해 보니 내가 면접 볼 당시에도 그랬던 것 같아 맞장구를 치다 보니 순간 테이블이 어중간하게 조용해졌다.
별 거 아니라는 듯 옆 테이블 호탕한 임원들의 큰 말소리와, 어색한 공기가 섞인 우리 테이블이 소름 끼치게 대비됐다.
한 동기가 머뭇대며 사실은 내가 들어오기 전, 다른 사람이 오기로 예정되어 있었다만 노쇼로 인해 내가 합류하게 됐다는 걸 말해 줬다.
헛웃음이 나왔다. 그러니까 나는 이 회사에서도 한 번 떨어진 사람이라는 거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나는 고작 플랜 비였다. 한 번에 척 붙은 당신들과 거리감이 느껴졌다.
들고 있던 잔과 들뜬 마음을 손으로 헤쳐가며 겨우 찾은 후 끌어내렸다. 그중에는 아버님이 상무였던 낙하산도 있었지만, 비빌 언덕이 없는 나는 연신 콩나물에 파묻힌 볼때기를 찾으려 뒤적거렸다.
그 밤, 어른들의 회식은 원래 모르는 것도 알게 되는 자리라며 혼자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렵사리 들어왔으니 회사에 오래 몸 담아야겠다는 마음이 마구 들었던 입사 초반의 이야기이다.
아무렴 신입사원은 당차야 하지만, 매번 주눅 들 수밖에 없는 서툰 역할이라는 걸 깨달은 후 이상하게 자꾸만 깍두기 생각이 났다.
아무래도 난 이 판에선 설익은 깍두기와 참 닮았다고.
남들은 이미 가슴팍에 별 몇 개를 달아 노련한 판이지만, 난 도무지 입문할 실력은 없으니 껴 주길 바라야 하고 온갖 실수도 몇 번이고 봐줘야 하는 성가신 존재덩어리였다.
아른아른 거리는 빠알간 깍두기의 국물은 내가 돌아다닐 때마다 뚝뚝 바닥을 어지럽혔고
그걸 내 손으로 닦아내고 있는 현실에 헛웃음이 몇 번 났다.
신입사원은 아이러니하게도 무언가를 하려고 할 때 더 손이 갔다. 죽은 뽈때기마냥 얌전히 있어 줘야 했던 걸까.
생각해 보면 입사 전 그들이 보내 줬던 축하 박수는 미래의 행복을 미리 가불로 땡겨받았던 거였다고 확신하게 되는 날이 점차 늘어갔다.
내가 이토록 분개하는 건 아무도 신입사원이 맡은 역할이 슬픈 역할이라고 말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디어에서 보던 신입사원은 분명 열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대차게 주연 자리를 꿰찼다.
그런데 난, 조연도 아니고 씹다 버린 깍뚜기라니. 예상은 했지만 계속 또 계속 내 이름이 씹다 버려지니 이제 깍두기는 무리 안에서 자신의 존재 자체를 고민하게 되었다.
4월 23일은 깍두기가 울 자격도 없는 날이었다. 업무 중 가장 예민한 전산 실수를 해 버렸기 때문이다.
점심시간이 지난 한 시쯤 아무것도 모른 채 여유롭게 앉아 커피를 홀짝이고 있을 때, 서서히 내 파티션 위로만 먹구름이 다가왔다.
곧이어 내 이름을 부르는 이사님 목소리에 손에 쥐고 있던 텀블러를 슥 내려놓았다. 아, 난생처음으로 개명하고 싶어지는 날이었다. 왜 하필 내 이름은 내 이름인 걸까.
그 몇 초 사이 멍청한 생각이 빠른 속도로 굼뜬 나를 휘감았다. 아무 상관없이 뒤에서 키보드를 타타타닥 치는 동기의 이름을 아주 잠깐만이라도 빌리고 싶었다.
하여튼 나의 직무는 아니었지만 알려 줬으니 잘 해내야 했다. 슬냄새가 풍기는 회식이 끝난 뒤 캄캄해 가로등만 의지하며 걷던 길, 집 가는 방향이 같은 주임님께 이때다 싶어 괜한 투정을 부리고 싶어졌다. 왜 그 업무는 우리 부서의 일이 아닌데 우리가 하냐는 식으로 말이다.
그 어이없고 당돌한 질문에 벙쪄 잠깐 머뭇대던 주임님은 우리 부서의 업무는 아니지만, 우리 부서의 일이다 생각하고 해야 한다며 딱 잘라 말했다.
오히려 너무 예상했던 대답이었기에 대답할 말을 잃었다. 한 마디로 회사에서 까라면 깔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거다.
술 한 방울도 마시지 않았는데 그 말이 계속 울렁거려 버스 한 대를 놓쳐버렸다.
다시 고함을 치는 이사님 구두 앞 코만 바라봐야 했다. 적당히 닳은 앞 코에 눈을 두며 생각한 건 저 정도쯤만 닳기 위해선 얼마나 더 고개를 숙이고 있어야 할까였다. 왠지 이 각도에서 더 고갤 숙이면 내가 더 닳아질 것만 같아 그게 참 싫었다.
모르는 게 많아서 막막했다고 말하면, 알려주는 게 많아서 헷갈렸다고 말하면 저 뾰족한 앞 코에 찔려 엉엉 울 수도 있단 생각이 들었다.
한두 번도 아니고 이러면 일 못 맡긴다는 이사님의 목소리 끝이 유독 아팠다. 우두커니 서서 당신이 휘두르는 혀 끝의 칼을 무자비하게 맞고 있었다. 귀가 먹먹했다. 다음엔 잘해야지 다짐하며 쥔 주먹은 땀 때문에 자꾸만 미끄러졌다.
이사님이 튀긴 침이 축축했다. 모든 게 축축했고, 이걸 맞아야지만 자랄 수 있는 거라고 몇 번 마음을 고쳐먹으려고 했다.
그 이후로 똑똑한 줄 알았던 내 세상이 와르르 무너졌다. 한 번에 적용하지도, 약삭빠르지도 못해 바들바들 떠는 자존심만 센 못난 신입사원이 보였다.
입사 이래로 나도 싫어하는 내 치명적인 덤벙거림이 업무 중 그대로 드러났다. 걸어볼 만했던 플랜 비가 처참히 실패했으니 이사님의 한숨 소리는 나날이 거세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판을 그만둘 수 없었다. 그만두고 싶다고 말하기엔 깍두기는 이미 과한 배려를 받고 있는 존재였다.
누구라도 신입사원이 맡은 역할은 처절히 슬픈 역할이라고 귀띔해 줬다면 마음이 견딜 방법을 적어갔을 것이다. 하다못해 참고서라도 뒤적거려 대비라도 하지 않았을까.
고개 숙여 사과하던 날에는 부러질 듯한 나를 어떻게 세워줘야 할지, 속이 답답할 적엔 꽉 막힌 사무실에서 어떻게 하늘을 봐야 하는지에 대한 대비를 말이다.
겨우 일 년 차가 된 지금, 이제는 한 번도 웃지 못한 날엔 스스로를 어떻게 웃겨줘야 할지 이런 것들이 나의 고민이 되었다.
여전히 덜 익은 1년 차 사원은 회사와 맺은 계약에서 빼먹지 말아야 했을 항목들을 생각해 본다. 미리 고지해 주지 않은 일을 때때로 마주하게 되면 그제야 사계절을 다 보낸 사원이 된다.
떠올리기도 싫은 몇 번의 밤을 보냈음에도 불현듯 내 손 끝에서 깍두기 국물이 뚝뚝 흐를 땐 다시 까마득한 첫 회식 날로 돌아가게 된다.
그날 내가 회를 먹을 수 있다고 말했다면, 아니 회를 좋아한다고 말했다면 달라졌을까.
회사는 길가에 떠돌던 나를 건져 놓고 종종 그런 식으로 값을 치르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