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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명찬 Nov 03. 2022

식당이나 해볼까? #11

이른 시간 찾아온 손님



중국에서 발생한 우한폐렴이 중국을 마비시키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도시 전체를 폐쇄시킨다고 했고 중국과 관련된 무역사업에 차질이 있을 것이라 전문가들이 전망했다. 우한 지역에 있는 한국인들을 하루빨리 송환시켜야 한다는 얘기도 있었다. 모든 게 비현실적이었다.

(그때까지는 그냥 남의 일이었으니까)


저런 곳에 있으면 얼마나 불안할까? 한국인들을 빨리 데리고 오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출근을 했다.

바람이 몹시도 차게 느껴지는 새해의 겨울이었다.


날이 차서 그런지 기분도 조금 우울했다. 감기 기운도 있어 일하기 싫은 날이었다. 손님도 별로 없었다. 가게 문을 닫고 포근한 침대에서 초저녁부터 잠이나 자고 싶었다. 진심으로 그러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는 자신이 이내 안쓰러워서 다시 우울해졌다. 브레이크 타임에 이어폰을 끼고 엎드려 ‘조니 미첼’의 노래를 들으며 잠을 청했다. 우울할 땐 숨소리까지 우울한 가수의 음악을 듣는 것도 괜찮다.


잠을 잔 것도 아니고 잠을 자지 않은 것도 아닌 경계의 시간을 얼마나 보냈을까? 갑자기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유리문 앞으로 가보니 키가 큰 아저씨가 서 있었다. 50대 정도로 보였고 처음 본 사람이었다.


“아직 오픈 안 했어요?”


나는 고민할 틈도 없이 본능적으로 문을 열고 있었다. 비몽사몽이었다.

혼자인데 저녁 겸 간단히 한잔하고 금방 가겠다고 겸손하게 말씀을 하셔서 오픈 시간 전이었음에도 거절할 수가 없었다.


편한 자리에 앉으라고 말씀드렸더니 굳이 구석 자리에 앉은 아저씨는 메뉴판을 꽤나 신중하게 보았다.


주문한 메뉴는 ‘잡채’ 그리고 따뜻한 정종 한잔.


야채를 가지런하게 썰고 미리 불려 양념해둔 당면을 따로 볶아 빠르게 잡채를 만들었다. 정종을 덥혀 내는 주온기에서 따끈한 정종을 한잔 가득 따라 음식과 함께 드렸다.


아저씨는 정종잔을 먼저 들어 후후 불며 한 모금을 조심스레 마셨다. 그리고는 잠시 눈을 감고 천천히 깊게 숨을 내쉬었다.


나는 그 기분을 너무 잘 안다. 따끈한 정종이 목을 통과해 심장을 통해 온몸으로 퍼지는 느낌! 아저씨는 지금 그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혼자 식사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음악 볼륨을 조금 높였다. 매장에는 ‘Half moon run’의 ‘warmest regards’가 흐르고 있었다.


음악 사이사이로 잡채를 담아낸 사기그릇에 젓가락이 부딪히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렸다. 그리고 정종을 한 모금씩 마신 후 들려오는 아저씨의 아저씨스런 감탄사…. ‘으아’


좀 전까지 우울했던 기분이 갑자기 좋아졌다. 어쩌면 바로 지금의 분위기가 내가 가게를 시작하기 전에 꿈꿨던 장면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손님이 단 한 사람이더라도 그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고 손님이 맛있게 음식을 먹는 것에 보람을 느끼는 것. 가게를 시작하면서 매출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잊고 있었던 ‘초심’을 다시 떠올리게 된 순간이었다.


“아이고, 잘 먹었어요. 이 근처에 이렇게 정종을 데워주는 곳도 있었네. 야근하는데 힘이 날 것 같네요.”


문밖으로 나서는 손님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속으로 얘기했다.


‘다음에 오시면 따끈한 정종 한잔을 제가 대접할게요. 오늘보다 더 추운 날이었으면 좋겠네요. 정종이 더 맛있게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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