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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명찬 Oct 09. 2024

마지막 차례상

엄마의 결단

올 추석은 여러모로 특별했다.

가장 큰 변화는 아버지가 집에 없다는 것이다. 뇌출혈로 입원한 아버지는 1년 반째 병원에 있다.

아버지가 작년 5월에 쓰러졌으니 작년 추석에는 명절을 쇨 경황이 없었고 올해 설 명절도 마찬가지였다. 이제는 아버지가 병원에 있는 것이 익숙하다.


사실 지난 1년 반 동안 우리 가족은 아버지가 금방이라도 집에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던 것 같다. 현실은 그렇지 않은데 잘하면 이번 추석 즈음엔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모두 그랬다. 나도 엄마도 내 동생도.

유일하게 아내만 현실을 직시했다.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는 데에도 이유가 있긴 하다. 아버지는 그의 생에 있어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다. 골반이 부서지는 교통사고를 당해, 앞으론 걸을 수 없을 거란 병원의 진단을 비웃듯이 1년 만에 병원 문을 두 발로 멀쩡하게 걸어서 나왔고 의사도 힘들 것이라 얘기한 담도암 3기도 수술을 하고 나서 5년이 흘러 완치 판정을 받았다. 그런 일을 몇 번 겪다 보니 우리 가족의 마음에는 희미한 긍정이 작용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받아들일 때가 됐다. 아버지는 더 이상 예전의 아버지로 돌아올 수 없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데 나는 1년 반의 시간이 걸린 것이다.


추석을 앞둔 몇 주전, 엄마가 말했다.


-올해를 마지막으로 명절 차례는 더 이상 지내지 않으려고…. 아버지도 아프시고 너희도 시간이 없는데 굳이 계속할 이유가 없는 것 같아. 이번에 마지막으로 차례상 올리고 조상님께 말씀드리면서 끝내려고 해.


나는 엄마 편할 대로 하라고 무심한 척 말하긴 했지만 속으로는 적지 않게 놀랐다. 누구보다 차례와 제사에 진심이었던 아버지 못지않게 엄마 역시 정성을 다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런 결정을 하게 됐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궁금증보다는 더 이상 차례를 지내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이 순간적으로 컸던 것 같다. 그리고 그 기쁨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도 같아 큰 일 아니라는 듯, 나는 그저 엄마의 뜻에 따르겠다는 듯, 표정을 감추고 고개만 끄덕였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엄마는 마음이 불편했을 것이다. 우선 아버지가 병원에 있느라 여러모로 신경을 쓰고 있는 아들들에게 부담을 덜어주고 싶었을 것이다. 엄마는 그런 사람이니까 늘 해준 게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니까.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해 보면 매번 집안일에 참여하는 첫째 며느리에 비해 단 한 번도 집안 대소사에 참여하는 법이 없는 둘째 며느리가 맘에 걸렸을 것이다. 어느 집이든 문제가 있듯 우리 집도 동생의 결혼과 동시에 문제가 생겼다.


동생의 아내는 남처럼 행동했다. 집안 대소사에 참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가 쓰러졌는데도 엄마에게 안부전화 한 통화 없었다. 처음에는 그게 분하고 화가 나서 동생도 보고 싶지 않았지만 그랬다간 동생조차 남이 될 것 같아 우리 가족은 그냥 이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까 엄마는 단 한 번도 명절에 오지 않는 둘째 며느리 때문에 첫째 며느리의 눈치가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게 불편했을 것이고 결국 차례를 없애는 것이 모두의 불편함을 없애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동생과 나는 동생이 결혼 전엔 사이가 괜찮은 편이었다. 매번 같이 놀러 가고 밖에서 술자리를 가진 것은 아니었으나 서로를 존중하고 각자의 역할을 나눠서 부모님을 도왔다. 하지만 동생의 결혼과 동시에 우리 집의 균형은 순식간에 깨졌다. 나는 오랜 시간 동안 분노했지만 지금은 이 모든 것이 없었던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 맘대로 바꿀 수 없는 것은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좋다.


마지막 차례를 준비하며 나는 시원섭섭한 마음에 사로잡혔다. 좋을 줄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나는 차례와 제사를 극도로 싫어했다. 그것은 아마도 아버지의 일방적인 강요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는 나에게 지방 쓰는 법과 그 밖의 법도에 대해 엄격하게 가르쳤다. 동생은 나에 비해 자유로운 편이었다. 때때로 제사를 오지 않을 정도로 나에 비해 그 기준이 엄격하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의 그런 점이 싫었다. 때에 따라 사람에 따라 바뀌는 기준이 싫었다.

사실 차례나 제사를 엄격하게 지내야 한다고 말만 했지 일은 엄마가 다 했다. 아버지는 목욕탕에 다녀와서 밤을 칠 뿐, 특별히 하는 일이 없었다. 게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밤을 치는 일도 나에게 맡겼다. 아버지는 아무리 시간이 많아도 내가 올 때까지 밤을 치지 않았다. 제사를 지내기 위해 야근을 마치고 헐레벌떡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에게 하는 말이 바로 ‘빨리 손 씻고 밤 쳐라.’였다. 아버지는 고집스럽게 자신의 일을 하나씩 나에게 넘기려고 했다. 나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나를 정말 모른다고 생각했다. 내가 차례나 제사를 지낼 사람으로 보인단 말인가! 아니면 그렇게 계속 강요하면 내가 할 것처럼 생각한단 말인가!

나는 제사상에 절을 하며 특별한 생각을 한 적이 없다. 그냥 이 귀찮은 행사를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 불만만 있을 뿐이었다.


그랬던 내가, 드디어 차례를 그만 지내도 되는데 섭섭한 마음이 드는 건 나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동안 차례와 제사를 지내며 보냈던 시간에 대한 회한이었을까? 아니면 아버지의 고집스러운 집착의 마지막에 대한 허탈이었을까?


그 어느 때보다 겸허하고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차례를 지냈다. 절을 마치고 엄마를 차례상 앞으로 모셨다. 지금까지 모든 차례상을 준비한 사람은 엄마다. 어쩌면 진짜 주인공은 엄마다.


-엄마도 한 마디 해.


-무슨 말을 하라고….


-무슨 말이든 해. 그동안 엄마가 정성스레 모셨으니까. ‘그동안 찾아주셔서 감사해요. 이제는 식당 문 닫아요라고…’


우물쭈물했던 엄마는 가벼운 농담에 쉽게 풀렸다. 그리고 아무도 앉아 있지 않은, 푸짐한 차례상에 앞에 서서 말했다.


-이제 그만하려고 해요. 너무 서운해하지 마시고 마지막으로 맛있게 드시고 가세요.


담담하게 말하던 엄마가 말끝을 흐렸고 나는 엄마의 말을 받아서 이어 말했다.


-정 서운하시면 아버지 벌떡 일으켜 주세요. 아버지가 정신이 있으시면 당연히 차례를 계속 이어가시겠죠.


엄마는 어렵게 결정하긴 했지만 끝내 아쉬운 듯했다. 아마도 엄마는 자신이 할 수 있을 때까진 계속 이어나가고 싶었을 것이다. 나는 그 맘을 너무 잘 알지만 ‘엄마가 정 서운하면 끝까지 하자’라고 말하지 않았다.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곤 있었지만 외면했다. 잠시만 맘이 불편하면 될 일이었다. 앞으로 차례를 그만 지내려면….

맘이 약해져서 엄마 마음 편한 대로 하자고 말했다간 두고두고 후회할 게 뻔했다.


이제 더 이상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 우리 집의 참으로 무거웠던 한 페이지가 넘어가는 기분이다.


간소하게 준비했다는 엄마의 차례상-여전히 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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