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지고등어찜
겨울을 핑계 삼아 무절제하게 먹었더니 체중이 불었다. 더 위험해지기 전에 절식 시작!
아침 겸 점심은 과일이나 음료로 대신하고 저녁 한 끼만 먹고 있는데 쉽지 않다.
저녁을 일찍 먹으니 자기 전에 여지없이 허기가 몰려온다. 매일 유혹이 시작되고 매번 참는다.
잘 참고 다음날 일어나면 몸이 가볍다. 일어나자마자 발목을 이리저리 까닥거려본다. 가볍다.
먹고 잔 날은 발목 관절에 때가 껴있는 것만 같다. 움직임이 영 둔하다.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아내와 함께 점심을 사 먹는다. 그래야 절식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조금 해소할 수 있다. 문래동까지 걸었다. 집에서 15분 정도. 바람이 찼지만 걸을만했다. 좋아하는 식당을 가는 길이었다. 문래동의 <소문난 식당>은 '묵은지고등어찜' 한 메뉴만 점심에 판매한다. 저녁에는 영업을 하지 않고 깔끔하게 점심 장사만 한다. 절제가 멋지다.
최근 자주 다니고 있는데 담백한 고등어와 푹 익혀낸 김치의 궁합이 기가 막히다. '김치찜'을 떠올리면 간간할 것 같은 생각이 우선 드는데 <소문난 식당>의 김치찜은 확실히 다르다. 그래서 김치를 크게 찢어 먹어도 짜지 않다. 단점이 하나 있다면 김치의 익힘이 다를 때가 있다는 것.
원래는 김치가 푹 익어 녹을 정도로 부드러운데 가끔 원래의 맛보다 김치의 익힘이 덜할 때가 있다. 짐작해 보건대 다음날 판매할 김치찜을 전날 미리 해두는데 판매분이 다 팔리고 나면 다음날 판매할 김치찜을 당겨서 파는 모양이다. 푹 끓인 육수에 하루 절여진 김치와 바로 끓여낸 김치는 같은 김치로 만들었다고 해도 분명히 다르다. 덜 퍼진 김치찜을 먹게 되는 날은 뽑기에 실패한 마냥 영 개운찮다. (물론 충분히 맛있다.)
집에 오는 길은 바람이 조금 찼다. 갑작스러운 추위에 어쩔 줄 몰라하는 아내에게 목도리를 빙빙 둘러주었다. 한쪽 귀가 잘 덮어지지 않아 붕대를 휘감은 것처럼 보였는데 어떻냐고 묻길래, 반고흐 같다고 답해주었다.
볕이 들지 않는 터널을 걸었는데 날카로운 고드름이 위에 매달려 있는 게 보였다. 두껍고 길게 얼어서 떨어질 때 지나가는 사람이 머리에 맞기라도 한다면 큰 사고가 날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지나쳤다가 다시 돌아왔다. 적당한 돌멩이를 손에 쥔 채로.
한 번에 던져 고드름을 맞혀 떨어뜨렸다. 미치도록 정확한 제구력에 내 자신도 놀랐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다. 아내가 뒤에서 보고 있었으므로.
별 거 아닌 거에 기쁜 날이 있다. 그날이 그랬다. 모처럼 개운한 아침이 좋았고 심심한 묵은지김치찜이 좋았고 아내와 함께 걷는 게 좋았고 누군가에게 닥칠 위험을 하나 제거 한 것이 좋았다.
좋아하는 식당을 오랜만에 찾아가는 것. 기분이 좋아지는 참 쉬운 방법 중에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