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아이가 되었다

#07 자전거

by 조명찬


5월 22일 월요일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엄마와 아내가 자는 동안 집안 구석구석을 돌아봤다. 아버지가 즐겨 쓰던 파란 등산 모자와 자전거 열쇠가 현관문 바로 옆에 소중하게 걸려있었다. 운전을 하지 못하는 아버지는 자전거를 즐겨 탔다. 아버지에게 자전거는 레저보다는 운송수단이었다. 충분히 운전을 배울 수 있었음에도 아버지는 운전을 하지 않았다.


"내가 운동신경이 있으니까 운전을 했으면 잘했겠지. 그런데 결국은 술 때문에 큰 사고가 났을 거야."


술을 조절하지 못하는 자신이 운전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다행이라고 생각하라는 아버지의 말이 나는 싫었다. 아버지는 핑계가 많았다. 술을 조절 못하는 건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속상한 마음을 이겨내려고 친구들과 몰래 술을 시작했기 때문이었고, 운전을 배우지 않은 건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았다가는 자기뿐만 아니라 남에게도 큰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전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후배에게 전화가 왔다. 며칠 전 안부 통화를 하다가 아버지 사고 소식을 듣고는 주민번호만 알려주면 아버지의 보험이 해당될 수 있는 부분이 어디까지 있는지 알아봐 주겠다고 했었다.


"형님. 어떡하죠? 아버님 보험이 이번에는 하나도 해당이 안 되네요. 아버님 보험은 뇌졸중에만 해당되는 거고. 이번 사고처럼 외상성뇌출혈의 경우에는 특약으로 빠져 있어요. 제가 어떻게든 도움이 되려고 했는데 어쩔 수가 없네요. 보장이 너무 안 되는 걸 가입해 두셨어요."


아버지 사고 후, 아버지가 가입한 보험 약관을 꼼꼼히 읽어봤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후배에게 다시 한번 살펴봐달라고 부탁을 했던 건데 결과는 같았다. 엄마는 보험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말을 좀체 이해하지 못했다.


"안 되는 게 어딨어? 한 달에 보험금을 얼마나 많이 내는데, 보험회사 측에서는 어떻게든 보험금을 내주지 않으려고 하겠지. 그쪽에서 말하는 걸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되는 거야."


엄마는 내가 너무 원리원칙대로 일을 처리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때때로는 큰소리를 내면서 따져야 할 때도 있는데 내가 너무 무르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이제 보험 관련해서는 엄마가 알아봐. 나는 이제 그만할래. 머리가 너무 아파. 엄마에게 설명하는 것도 머리 아프고. 엄마가 보험에 전화해서 직접 알아봐요. 나는 이제 끝."


금세 서운한 눈으로 변한 엄마가 무슨 말을 하려던 차에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자가호흡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의식은 있긴 한데 대답은 잘 못하시네요. 눈은 마주치고 동공반응도 있긴 해요. 가장 걱정했던 폐렴은 많이 좋아졌습니다. 다만 심장 부정맥이 있어 심장전문의 선생님이 살펴보시고 일반실로 옮길지 결정하게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제가 하나 여쭤볼 게 있는데요. 아버지의 정확한 진단명이 어떻게 되죠?"


"외상성뇌출혈입니다."


"아. 그렇군요. 이건 너무 개인적인 얘기긴 하지만 저희가 보험을 들어 놓은 게 있는데요. 그런데 이게 뇌출혈은 보장이 되는데 외상성뇌출혈은 보장이 안되더라고요. 추후에 혹시 진단명이 바뀔 수도 있나요?"


"아니요. 의사의 진단은 처음부터 확실하게 정해져 오기 때문에 함부로 바꿀 수 없습니다. 중간에 바꾸게 된다면 나중에 법적으로도 큰 문제가 될 수 있고요. 병원비가 문제라면 병원의 사회복지팀에 문의하시면 여러 가지 방법을 잘 안내해 드릴 거니까 제가 연락해 둘게요."


혹시나 해서 물어보긴 했지만 결국 안 되는 일이었다. 애초부터 가능성이 없는 일이었다. 엄마는 억울해하며 남을 탓했다.


"보험 그것도 모임에서 만난 사람한테 든 건데. 그 사람은 왜 보험보장을 그렇게 좁게 해 뒀는지 모르겠네. 가입할 땐 뭐든지 다 해당된다고 얘기했으면서. 다 알아서 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나는 엄마와 다르게 억울하지 않았다. 누구 탓을 하겠는가? 자신의 보험을 미리 챙기지 못한 자기 자신 탓이지. 그렇다고 내가 아버지 탓을 한 것도 아니었다. 나는 이 모든 일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마치 모든 일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처연했다. 희망이 크게 없으니 포기가 빨랐는지도 모르겠다.


집에서 나오는 길에 1층 자전거 거치대에 단단히 묶여 있는 아버지의 자전거를 봤다. 15년을 넘게 탄 자전거는 여전히 깨끗했다. 그 사이에 나는 차를 두 번 바꿨다. 자전거 앞에서 잠시 서 있는 나를 보고 아내가 말했다.


"뭐 해? 가자."


"이거야. 아버지 자전거. 아직도 깨끗한 거 봐. 이거 아버지가 다시 탈 수 있을까?"


그때의 아버지가 떠올랐다. 초등학교 5학년때였다. 집에 있는데 퇴근하던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왔다. 10분 후에 집 앞에 좀 나와 있으라는 전화였다. 그때만 해도 아버지의 말은 어떤 일이 있어도 최우선이었기 때문에 나는 벽에 걸려 있는 시계 초침을 보면서 10분을 기다리다가 밖으로 나갔다.

집 앞 골목에서 큰길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골목 끝에서 아버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자전거 위에 올라 타 페달을 밟고 있는 아버지는 흰 셔츠에 네이비색 정장 차림이었다. 파란색 계열의 넥타이가 바람에 날리며 이러 저리 흔들렸다.


"웬 자전거?"


멀리서 나를 발견하고 핸들을 좌우로 흔들며 곡예를 하듯 자전거를 타며 오고 있는 아버지는 웃고 있었다. 가슴이 뛰었다. 아버지가 다가올수록 지금 타고 오는 저 자전거가 내 자전거일거란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눈앞까지 왔을 땐 나는 이미 자전거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니 거야. 타봐."


기어 18단짜리 삼천리 자전거. 오직 나만의 첫 자전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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