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아이가 되었다

#08 일반실

by 조명찬

5월 26일 금요일


오전 10시. 의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느 순간부터 전화가 오는 시간이 규칙적이라 그 시간이 되면 전화를 기다리게 된다.


"뇌 CT를 일주일에 한 번은 찍고 있는데 마지막에 찍은 걸 살펴보면 뇌에 차 있던 피가 많이 녹긴 했습니다. 그리고 뇌 일부가 손상된 흔적이 확실하게 보이는데 이게 조금 문제 이긴 해요. 입원을 하기 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긴 힘들어요. 얼마나 좋아질지는 앞으로 시간이나 환자의 의지에 달린 일이고.... 어쨌든 이대로 현재 상태를 잘 유지한다면 일반실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주말이 지나고 다음 주 초에는 가능할 것 같긴 하네요."


일반실로 올라간 후에는 병원에서 치료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고 했다. 재활병원이나 요양병원으로 옮길 마음의 준비도 미리 하고 있으라고 얘기해 줬는데 나는 이 모든 게 잘 이해가 되질 않았다. 병원에 대해 큰 정보가 없는 나에게 재활병원과 요양병원은 큰 차이가 있었다. 재활병원은 말 그대로 환자의 재활을 돕는 병원이니 환자가 좋아질 수 있는 희망이 있을 때 가는 곳이라 생각했다. 반면에 요양병원은 환자가 좋아질 가능성이 낮을 때 환자의 상태가 더 나빠지지 않게 요양만 하는 곳이라 생각했다.

그러니까 재활병원이나 요양병원으로 가는 건 보호자가 아니라 병원의 의사가 정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5월 29일 월요일


주말에 지켜보니 환자상태가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팔다리 움직임이 많이 좋아졌고 폐렴도 좋아졌고 대답도 조금씩 한다고 했다. 전반적으로 환자 상태는 많이 좋아졌지만 심장문제 때문에 일반실로 바로 올리는 것에 대해 고민 중인데 심장전문의 의견을 마지막으로 한번 더 듣고 일반실로 올라갈 예정이라고 전달받았다.



5월 30일 화요일


오전 9시. 아버지를 일반병동으로 옮긴다고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반가운 말이었지만 너무 갑작스러웠다. 의사의 갑작스러운 통보 후 집중치료실 간호사에게서 다시 전화가 와 일반실로 옮기는 과정에 대해 설명을 했다. 그리고 다시 일반실에 있는 간호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버지가 인수인계되는 느낌이었다.


"오늘 3시에 일반실로 오실 거고요. 일반실로 오시면 보호자가 필요한데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간병인을 쓰시는 게 좋아요. 직접 알아보시는 게 아니면 저희가 소개해드릴 수 있고요. 결정하시면 전화드릴 수 있도록 연결해 드릴게요."


"간병인을 무조건 써야 하는 건가요?"


"무조건이라는 건 없지만 지금 환자 상태가 집중치료병동에서 막 올라오셨기 때문에 가족분들이 케어하기는 힘드세요. 경험이 많은 간병인들이 케어해야 환자에게도 더 좋고요. 코로나 때문에 보호자가 왔다 갔다 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얘기를 들어보니 보호자가 간병을 하는 게 허용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 아버지 컨디션을 봤을 때 간병인을 써야 하는 게 여러모로 더 좋다는 말이었다. 에둘러 말했지만 '그냥 간병인을 써라'라고 들렸다. 병원과 연계된 간병인 소개소에서 전화가 왔다. 아버지의 나이와 거동 유무를 물었고 간병인이 필요한 시간을 물었다. 생각해 보니 나는 아버지의 상태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약 한 달 동안 의사에게 전화로만 전달받은 것이 다였으니 내가 아버지의 상태를 어떻게 정확히 알 수 있겠는가!


"나이는 80세. 한 달 전에 넘어지셔서 쓰러지셨고, 한 달 내내 중환자실에 있었어요. 아시겠지만 그동안 저희도 보지를 못해서 어떤 상황인지는 정확히 모르고요. 자가 호흡하고 의사소통은 아직 부정확하다고 들었어요."


"아. 네. 그러시겠네요. 자세한 얘기는 제가 병원과 통화해 볼게요. 비용은 24시간 케어를 기준으로 하루에 13만 원 발생하세요."


13만 원. 24시간을 관리해 주는데 하루에 13만 원이면 생각보다는 괜찮았다. 그런데 그게 한 달이 계속된다면? 390만 원. 가게 매출 순이익이 390만 원을 넘긴 적이 언제였던가....

일반병실 간호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환자분 지금 움직임이 어려우니까 욕창이 생기기 쉽거든요. 그래서 욕창 방지 매트를 구매하시는 게 좋아요. 원하시면 제가 연결해 드릴게요."


정신이 없었다. 아버지가 중환자실에 있을 때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던 돈문제가 비로소 실감되기 시작했다. 발 한 발자국만 떼도 모든 게 돈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일반실로 옮겨도 아버지의 면회는 불가능했다.


"한 달 동안 아버지를 보지도 못했는데 또 못 본다고요? 그게 말이 됩니까?"


"저희도 어쩔 수 없어요. 정부방침이 그러니까요. 대신 오늘 중환자실에서 일반실로 옮길 때 시간 맞춰서 오시면 이동 중에 환자분 잠시 볼 수 있어요."


엄마에게 모든 상황을 설명하고 시간 맞춰 병원에 오라고 했다. 회사에 출근한 동생에게도 원한다면 시간 맞춰서 병원에 오라고 했다. 간병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연변사투리를 쓰는 중년의 여자 목소리였다. 간병인에게도 아버지가 일반실로 옮기는 시간을 알려줬다.


아내와 함께 2시 30분에 병원에 도착했다. 엄마는 2시 40분에 도착. 회사에서 오는 동생은 3시가 조금 넘어서 올 것 같다고 했다. 동생을 기다리다가는 우리 모두 아버지를 보지 못할 수도 있다.

중환자실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대표면회자가 출입증을 받아서 엘리베이터에 터치 후에 올라갈 수 있었다. 2시 55분. 동생은 여전히 도착하지 못했고.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기분이 이상했다. 한 달 만에 아버지를 볼 수 있다는 설렘이 컸지만 앙상하게 말라 있을 아버지를 생각하니 두려웠다. 처참한 광경이 보기 두려운 것처럼 나는 아버지가 어떻게 변해 있을지 두려웠다.


2시 58분. 병원에 동생이 도착했다고 전화가 왔다. 나는 동생에게 어차피 늦었으니 그냥 쉬고 있으라고 말했다. 전화통화를 옆에서 듣고 있던 아내가 출입증을 달라고 하더니 자기가 내려갔다고 온다고 했다. 그 사이에 아버지가 나오면 어쩔 수 없는 것이고 동생도 아래에만 있기엔 애가 타지 않겠냐는 말이었다. 그렇게 마음을 쓰는 아내가 고마웠다.


3시 3분 동생이 아내와 함께 올라왔다. 아직 아버지는 나오지 않았다. 중환자실 벨을 누르니 담당간호사가 나왔다.


"오늘 일반실로 올라가는 아버지 가족입니다."


"아. 네. 오셨네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모든 준비를 마치고 기다렸다는 듯이 1분도 안 돼서 아버지가 침대에 누운 채로 나왔다. 우리는 모두 침대의 사방을 붙들어 매달렸다.


"아버지. 아버지. 내 말 들려?"


"명찬아빠. 명찬아빠. 내 말 들려?"


정신이 없을 것 같으니 아버지 사진 좀 찍어달라고 나에게 미리 부탁받은 아내는 침대에서 조금 떨어져 아버지를 찍고 있었다. 아버지는 눈을 깜빡였다. 감격스러운지 서러운지 깜짝 놀란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가 금세 울상이 됐다. 우리는 모두 울고 있었지만 소리 내지 않았다. 소리 내는 순간 다들 한 번에 무너질 거란 걸 알고 있었다. 아버지를 만지고 싶지만 쉽게 만지지도 못했다. 만지면 부스러질 것 같았다.


"죄송해요. 복도에 너무 오래 계시면 안 돼서요. 이제 이동할게요."


아버지를 한 달 만에 만난 것이었다. 매일 밤잠을 설치며 아버지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렇게 단 2분을 스치듯 보고 아버지는 일반실로 옮겨졌다. 단단한 병실 문이 자동으로 닫히고 우리는 손을 맞잡았다.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래도 생각보다 컨디션이 좋아 보이는데?"


실제로 그랬다. 중환자실에서 금식을 반복했기 때문에 살이 쏙 빠져 뼈만 남아 있을 거라고 걱정했던 것과는 다르게 아버지의 얼굴은 괜찮았다. 손과 발이 비정상적으로 부어 있긴 했지만 예상보다 비참한 모습이 아니었다. 엄마도 동생도 그렇게 보였는지 큰 충격을 받지는 않은 것 같았다.


"일반실 입원 동의서에 사인하셔야 해서요. 보호자 대표 한분만 와주세요."


동의서에 사인하러 병동에 들어가니 아버지가 2인실 병동에 이미 뉘어져 있었다. 아침에 구매한 욕창방지매트가 아버지 자리에 미리 깔려 있었고 간병인도 병실에 이미 도착해 있었다. 간호사가 필요 서류를 가져와 동의서에 사인을 하라고 했다. 대충 읽어보는 척을 하긴 했지만 간호사의 손가락이 짚어주는 대로 싸인을 반복했다. 사인을 하는 동안에도 아버지와 서류를 몇 번씩 번갈아 봤다. 1초도 소중했다. 내가 아버지 얼굴을 그렇게 귀하게 본 적이 있었던가? 당연히 없었을 것이다. 싸인을 다 마치니 간호사가 조금 시간을 드릴 테니 환자분에게 인사를 하고 가라고 했다. 아버지 얼굴을 조심스레 쓰다듬으며 귀에 대고 작게 말했다.


"아버지. 힘내. 우리가 기다릴게. 아버지 외로웠지? 우리가 올 수가 없었어. 아예 면회가 안 됐어. 아버지 혼자 둔 거 아니야. 그러니까 힘내. 알았지?"


조심스러운 내가 안쓰러웠는지 간호사가 와서 아버지를 깨우려고 했다. 손바닥으로 가슴을 강하게 쳤는데 조금 전까지 만지기만 해도 부서질 것 같아 조심스러웠던 내가 무안할 정도였다. 용기가 조금 생겼다. 아버지 팔도 주무르고 다리도 주물렀다. 아버지는 부스러지지 않았다. 얼굴을 만지고 머리도 넘겨주고 손도 만졌다. 무성한 눈썹도 손끝으로 빗어주었다.



간병인과 밖으로 나와 인사를 했다. 엄마에게 간병인을 소개하니 엄마가 두 손을 꼭 잡고 고개를 숙였다.


"잘 부탁해요. 우리 아저씨 잘해주세요."


엄마가 저렇게 누구에게 고개를 숙이고 부탁을 하는 걸 처음 본 것 같았다. 간병인은 당장 필요한 물품을 사야 하는데 같이 내려가자고 했다. 병원 편의점에서 파는 건 너무 비싸니 밖으로 가서 사자고 했는데 믿음이 갔다. 이 모든 과정이 몸에 밴 사람 같았다. 병원 후문에 있는 의료기기전문점에서 몇 가지 물품을 샀다. 아버지를 씻겨줄 플라스틱 대야가 필요한데 눈앞에 보이는 분홍색 대야를 두고 구석까지 가서 파란색 대야를 찾아오는 걸 보고 꼼꼼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남자분인데 분홍색 대야보다는 파란색 대야로 씻겨드려야죠."



간병인이 올라가고 아내와 나, 엄마와 동생은 병원 내에 있는 카페에 갔다. 엄마는 3잔만 시키라고 했지만 동생이 엄마의 음료까지 이미 주문해서 결제까지 마쳤다. 모두 웃으려 애쓰고 있었고. 모두 말을 아꼈다.

아버지는 한 달 만에 중환자실에서 일반실로 옮겨졌다. 어쩌면 아버지와 마지막일지도 모를 그 시간을 우린 잘 견뎌냈다. 나는 아버지가 중환자실에서 혼자서 외롭게 있다가 떠날까 봐 그게 제일 두려웠다. 이미 최악의 상황은 넘어선 것이다. 그렇게 나는 그리고 우리는 한숨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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