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생일
5월 31일 수요일
간병인의 휴대폰이 아이폰이 아니라 화상통화가 쉽지 않다. 카카오톡 영상통화를 시도해 보긴 했지만 간병인이 카카오톡 사용이 익숙지 않아서 그마저도 가능하지 않았다. 그래도 언제든 전화해서 아버지의 상황을 물을 수 있다는 것이 마음이 놓였다. 마음 같아선 매 시간마다 전화를 해보고 싶지만 간병인을 귀찮게 해서 좋을 게 없을 거란 생각에 하루에 한 번 정도로 참고 있다. 엄마도 마찬가지 생각인 듯. 엄마에겐 궁금하면 참지 말고 마음껏 전화하라고 우리가 간병인에게 주는 돈에 그런 비용도 다 포함되어 있는 거라고 얘기했다.
엄마가 가게에 들렀다. 아버지 사고 이후로 가게에는 처음 오는 것이다. 매일 오던 그 길이 오늘따라 멀게 느껴졌다고 했다. 당분간 엄마는 가게에 오지 않게 할 생각이다. 아버지의 상황에 따라 점심장사는 더 이상 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집안에 환자가 생기면 그 사람만 병원에 가면 그만이 아니다. 가족 모두가 생활이 변한다. 그게 힘든 거다. 엄마가 점심 준비를 하고 내가 저녁 준비를 했던 우리의 가게는 아버지의 사고로 인해 순식간에 균형이 무너졌다. 점심, 저녁 장사를 꼬박해도 각자 인건비 정도만 빠듯하게 챙겨가기 바빴는데, 그렇게 코로나를 견뎠는데.....
결국 이렇게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엄마도 나도 그리고 나의 아내도 고생만 했다.
엄마의 전화기로 간병인과 영상통화를 함께 했다. 아버지 얼굴이 어제보다 깨끗했다. 간병인이 잘 씻겨 놓은 것 같다. 아버지는 여전히 알아보지 못한다. 동공도 움직이는지 정확히 모르겠다. 우리는 말보다는 아버지의 미세한 표정으로 기분을 살핀다. 그리고 추측한다. 입꼬리가 조금 올라간 것처럼 보이면 웃는 걸로, 입꼬리가 조금 내려간 것처럼 보이면 우울한 걸로.
아내가 처형이 보낸 카톡 봤냐고 물었다. 어제 처형이 동영상을 하나 보냈었다. 현재 문래동에 있는 재활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처형이 재활을 잘할 수 있는 병원을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알게 된 곳에 대한 영상이었다.
안동에 있는 재활병원이었는데 조금 보다가 바로 꺼버렸다. 아버지를 연고도 없는 안동까지 보내라는 말인가? 조금 어이가 없었다.
"결정하라는 게 아니고 살펴보라는 거잖아. 언니가 일단 현장에서 일하고 있으니 우리 중에서는 제일 잘 알 거 아니야? 꼼꼼하게 좀 보라는 얘기야?"
보채는 듯 얘기하는 아내의 말에 나는 화가 났다.
"안동까지 아버지를 보내놓고. 우리 맘은 편하겠냐? 우리 아버지 어떤 사람인지 몰라? 아버진 가족들 목소리라도 자주 들려야 힘내는 사람이야. 그 멀리 혼자 떨어져서 자기가 버려졌다는 생각이 들면 어떻겠어? 그 얘기 그만해. 안 그래도 머리가 터질 것 같으니까."
아내는 말을 아꼈다. 우린 더 이상 말이 없었다.
6월 1일 목요일
생일이다. 아버지가 그렇게 있는데 내가 태어난 날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부모의 제삿날이 자기 생일인 사람들도 있겠지? 그들은 어떤 마음일까? 자신의 생일을 축하할까? 부모의 기일을 기릴까?
밤새 잠을 못 잤다. 아내가 자는 것을 확인하고 거실에 나와 처형이 보내준 영상을 그제야 끝까지 봤다. 선입견을 지우고 영상을 보니 좋은 내용이었다. 참고해야 할 부분이 많은 영상이었다. 몇 번을 돌려보고 메모를 했다. 재활병원에 대해 알아보고, 뇌출혈에 대해 알아보다 보니 밤을 꼴딱 새웠다.
아내가 일어나기 전에 다시 침대로 가서 누웠다가 곧 일어났다. 업무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다가 '안동복주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첫 상담이었다. 아버지의 현재 상황, 병원을 옮기기를 원하는 시기 등을 파악한 상담직원이 조금 더 서류를 받아보고 확인해야 하긴 하지만 지금 얘기만으로는 입원이 가능하다고 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맞다. 내가 입원을 원한다고 해서 무조건 입원이 가능한 것이 아니다. 나는 왜 나만 결정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을까?
지금 아버지가 입원하고 있는 경희대병원은 아버지의 재활치료를 전문적으로 하고 있진 않다. 재활치료는 발병 후, 3개월 이내에 얼마나 잘하느냐에 따라 환자의 상태가 달라질 수 있는데 아버지는 그중에 한 달을 중환자실에서 보냈다. 마음이 급해졌다. 아버지의 재활을 빨리 시킬 수 있는 병원을 찾아야 한다.
여기저기서 생일축하 문자가 왔다. 답장을 못했다.
아내는 생일축하한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괜히 얘기를 꺼냈다가 기분 상하는 소리를 들을까 봐 말았을 것이다. 아버지 재활병원 문제로 어제 언성을 높인 후 우린 조금 거리를 두고 있었다.
어차피 할 일도 없었으므로 가게를 열었다. 생일에 일하는 건 정말 싫지만 생각해 보니 가게를 열고는 생일마다 쉬지 못했다. 그게 무슨 대수라고 하루 쉬면 될 것을. 일을 하고 매번 일했음에 우울했다.
손님이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이제 정말 가게를 접어야 할 때인가? 당장 관둔다고 해서 특별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쨌든 앞으로는 돈이 많이 들 것이다. 잠시 쉴 수도 없다.
서먹거리다가 아내의 손을 먼저 잡았다. 그리고 안았다. 조금 울었던 것 같다. 아내가 얘기했다.
"그냥 집에 가자. 당신 생일인데 이게 뭐야?"
"아니야. 집에 가서 가만히 있어도 기분이 좋진 않을 것 같아. 9시까지만 있다가 그때도 아무도 안 오면 가자."
8시.
8시 반.
아무도 오지 않았다. 준비해 둔 재료를 하나씩 담고 있는데 가게 문이 열렸다. 영석형과 희정누나였다. 희정누나 손에는 케이크가 들려져 있었다.
"네 기분이 어떨지 고민되긴 했지만 그래도 축하할 일은 축하하고 지내라고 왔어. 잠시 들른 거니 부담 갖지 말고."
가게 문을 닫았다. 아닌 척하고 있었지만 결국 나는 누군가가 필요했었다. 위로가 필요했었다. 넷이서 간단하게 술을 마셨다.
"누군가에게나 일어나는 일이야. 누군가는 이미 겪었을 일이고. 너는 조금 빨리 겪고 있는 거고. 다들 말을 안 할 뿐이지. 너도 지금의 일을 쉽게 얘기 못하잖아. 그러니 혼자 겪는 일이라 외로워하지 마. 다들 겪는 일이다."
영석형의 말이 밤새 맴돌았다. 그리고 그 말은 큰 위로가 돼서 나를 덮어주었다. 나를 편히 잠들 수 있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