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분노가 슬픔을 덮을까 봐
6월 2일 금요일
오전 중에 안동복주병원이 요구한 서류를 팩스로 전송했고 오후에 안동복주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저희가 일이 밀려있긴 한데 지난번에도 상담 전화 주셨고 해서 특별히 빨리 전화를 드린 거예요. 원래 많이 밀려 있으면 일주일도 넘어서 전화드릴 때도 있어요. 병실이 나야지 입원을 하실 수가 있거든요. 다행히 늦지 않게 입원이 가능하긴 하세요."
상담 직원은 분명히 친절하게 말을 하고 있었는데 나는 기분이 조금 좋지 않았다. 특별히 빨리 전화를 줬다는 게 무슨 의미일까? 나와 일면식도 없는데 '특별히'라는 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괜히 의심이 갔다.
어쨌든 입원은 가능하다는 말. 결론적으론 좋은 소식이다.
나는 이미 마음을 먹고 있었다. 엄마와 동생을 설득만 하면 될 일이다. 엄마와 동생에겐 내가 봤던 복주병원 관련 영상을 모두 보냈었는데 꼼꼼하게 본 눈치는 아니었다. 시간이 많지 않았다. 아버지는 최대한 빠르게 재활 치료를 시작해야 했다. 넋 놓고 있다가는 치료만 늦출 뿐이다.
"뇌출혈은 발병 후, 3개월이 제일 중요하대. 그 기간에 어떤 재활치료를 받느냐가 정말 중요한데 그래서 재활병원을 잘 선택해야 해. 내가 알아본 병원이 안동에 있어서 우리가 자주 못 간다 하더라도 그건 우리의 입장이고 아버지의 입장에서 보면 재활을 가장 잘할 수 있는 곳으로 가는 게 좋은 거야. 어차피 지금 코로나라 매일 면회가 되는 것도 아니고 서울에 있으나 안동에 있으나 아버지를 매일 볼 수 없는 건 마찬가지야. 게다가 여기는 국가 지원을 받는 곳이라 다른 재활병원보다 병원비가 보험으로 공제되는 부분도 많으니까 일단은 여기서 집중 치료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평생 있자는 거 아니야. 여기도 오래는 있을 수 없어. 최대 6개월만 있을 수 있으니까 기간이 끝나면 어차피 아버지 가까운 데로 모셔야 해."
나는 엄마와 동생에게 단호한 말투로 설명을 했다. 안동으로 가는 것에 대해 내가 거부감이 있었듯이 그들도 지금은 그럴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정을 감안하면서 있을 시간이 없었다. 동생이 그래도 너무 먼 거 아니냐고 얘기를 해서 그러면 최대한 빠르게 대안을 제시해 달라고 했다. 마음이 급했다. 나만 마음이 급한 것 같았다.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다. 아버지가 쓰러지고 결정할 게 너무 많다. 매일이 결정이다. 책임은 무겁다. 혹시 아버지가 잘못되더라도 자책하지 않을 것이다. 그 정도로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
금요일이다. 가게 매출이 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당장의 생활비, 가게임대료, 앞으로의 병원비 등이 한꺼번에 스트레스로 밀려왔다. 손님이 다 나가고 가게 문을 닫은 후 마감 설거지를 하다가 내가 왜 이러고 있나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세재가 묻어 있던 손을 씻고 허리춤에 손을 얹고 가만히 천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오. 씨발."
매장 청소를 하고 있던 아내가 그 말을 듣고는 나를 슬쩍 보았다.
"아오. 씨발. 씨발. 씨발. 왜. 왜. 왜. 왜!!!!!!!"
나는 누가 들으라는 듯 주방에 있던 쓰레기통을 차며 소리를 질렀다. 아내는 그런 나를 그냥 바라보고만 있다가 가게 밖으로 나갔다.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오로지 순수한 분노만 가득했다.
주방 바닥에 쓰레기통에 있던 쓰레기가 나뒹굴었다. 바닥에 있는 그걸 가만히 보고 있다가 다시 쓰레기통에 담았다. 그리고 쇠솔을 가져 와 바닥이 벅벅 소리가 날 정도로 다시 청소를 했다.
집에 와서 아내와 캔맥주를 마셨다. 아내가 얘기했다.
"자기. 정말 고생 많아. 내가 자기 마음을 몰라서 가만히 있는 게 아니야. 나도 어떻해야 할지를 모르겠어. 가끔 자기가 뜬끔없이 화낼 때는 저렇게 화내서 뭐 하나 싶다가도 그냥 안쓰럽고 그래. 그래도 내가 이번 일 겪으면서 놀란 건 자기가 단 한 번도 아버님 원망을 하지 않았다는 거야. 어머님도 그렇고. 어떻게 그래? 나였으면 안 그랬을 거 같거든. 원망하고 화내고 그랬을 거 같거든."
아내의 얘기를 듣는 동안 캔맥주만 빙빙 돌리고 있던 나는 긴 호흡으로 맥주를 들이켰다. 그리고 말했다.
"나라고 왜 원망이 들지 않겠어? 그런데 그런 일이 있으면 안 되지만 나중에 나와 비슷한 상황이 온다면 자기도 알게 될 거야. 분노가 슬픔을 덮어버릴 까봐. 나는 그게 제일 무섭거든. 그래서 노력하고 있어."
6월 3일 토요일
가게에 일찍 나가서 준비를 했다. 어제 한바탕 하고 나니 조금 후련했다. 매일 매출 걱정을 하고 있으니 아버지에 대한 걱정이 조금 줄어든 것 같기도 하다.
6월 4일 일요일
안동복주병원에 대해서 계속 알아보고 있다. 알면 알수록 더 좋은 것 같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어느덧 자연스럽게 아버지를 복주병원으로 옮기는 걸 확정하고 있었다. 경희대 담당선생님과 면담 요청을 했다. 중환자실에서 일반실로 올라간 지 6일째다. 간병인을 통해 얘기 들은 것 말고는 따로 상황을 전달받은 것이 없었다.
6월 5일 월요일
모처럼 휴일. 아내와 서울대공원 둘레길을 걸었다. 한 달 만에 즐기는 휴일이었다. 오랜만에 즐기는 단둘의 시간이었지만 수시로 전화가 왔다. 엄마는 물론이고 친척들에 병원까지.... 전화기를 꺼두고 싶었다.
담당선생님이 바쁘다고 간호사가 대신 전화가 왔다. 담당선생님에게 면담 요청을 한 것이기 하지만 아버지 상태만 알면 되는 거니깐 크게 문제 되진 않았다. 메모를 하면서 얘기를 들었다. (아버지 입원 후, 병원과 통화할 때는 반드시 메모하는 습관이 생겼다)
-현재는 중환자실보다 상태호전
-머리에 피는 많이 녹음
-6개월 이상 길게 체크해야 함
-전원은 가능한 상태
-전원일자 알려주면 그에 맞춰 준비하겠음
중환자실에서 일반실로 올라온 지 일주일.
아버지는 살아났다. 살아냈다. 살아 나왔다. 이제는 재활만 신경 쓰면 된다.
일주일에 한 번씩 정산하기로 했던 간병비를 간병인에게 입금했다. 91만 원. 통장에서 돈이 더 빠르게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아버지 통장문제로 엄마와 통화를 했다. 앞으로의 병원비는 최대한 아버지 통장에서 찾아 쓰기로 했는데 엄마가 아버지 통장 비밀번호를 모르고 있었다. 오랫동안 쓰고 있던 번호는 엄마가 알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최근에 바꾼 것 같다고 했다. 비밀번호를 풀려면 아버지가 직접 은행에 오는 수밖에 없는데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아버지 통장에 있는 돈은 아버지가 비밀번호를 직접 알려주지 못한다면 쓸 수 없단 말인가?
은행에 사정을 얘기하니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병원비 영수증을 은행에 들고 오면 병원비를 은행에서 직접 송금하는 건 가능하다 했다. 비밀번호만 알면 되는 일인데, 일이 참 번거롭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