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아이가 되었다

#11 전원(재활병원으로 옮기다)

by 조명찬



6월 6일 화요일


아침 일찍부터 엄마의 전화 때문에 잠을 깼다.

장손인 사촌 큰 형이 아버지 안부 전화를 했다가 안동복주병원으로 곧 옮긴다는 얘기를 듣고 서울 말고 굳이 왜 안동까지 모시냐고 물어봤는데 설명을 해줄 수가 없으니 대신 전화를 해서 답을 해달라고 했다. 나는 엄마에게 단호하지만 부드럽게 답했다.


“엄마! 다른 사람에게 일일이 설명할 필요가 없어요. 이건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 가족의 일이야. 남들이 쉽게 가타부타 얘기하는 거 나는 듣기 싫어. 이건 정말 오로지 우리가 결정하고 우리가 선택하는 일이에요. 우리가 결정하면 남들은 그렇구나 하면 되는 거고. 남들에게 설명할 필요가 뭐가 있어. 나는 지금 아버지를 최대로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거고. 이제 그렇게 할 거예요. 다른 사람 말에 휘둘릴 시간도 없고. 아버지가 입원한다고 해서 남들이 몇 번이나 와 볼 거 같아요? 이렇다 저렇다 말은 쉽지. 이건 오로지 우리 가족의 일이야. 그러니까 나는 누구에게도 따로 설명하지도 않을 거예요. 결정은 우리가 하는 거예요."


엄마는 조금 흥분해서 얘기하는 내 말을 아무 말 없이 듣고만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한 마디를 했다.


"그래. 네 말도 맞아."


전화를 끊고 맘이 편치 않았다. 아침부터 맘이 어지러웠다. 엄마에게 조금 더 부드럽게 얘기할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한 게 후회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분명 화가 나 있었다. 다른 것보다 남의 말에 자꾸 흔들리는 엄마의 모습을 보니 더욱 그랬다.


사촌 큰형에게 전화하지 않았다.



6월 12일 월요일


내일 병원을 옮긴다. 경희대 병원에서는 환자의 상태가 옮겨도 크게 문제가 없을 거라고 했다. 서울에서 안동까지 가려면 3시간 정도 걸리는 데 그게 조금 부담스럽긴 하지만 환자 상태를 보면 크게 문제 될 거 같진 않다고 담당간호사가 말했다.


아버지가 경희대병원에 입원한 게 4월 30일이니까 53일 만에 병원 밖으로 나오는 셈이다. 물론 다시 다른 병원으로 가긴 하지만....


미리 예약한 엠블런스에는 보호자가 최대 2명 탈 수 있는데 엄마와 동생이 타고 나와 아내는 내 차로 따로 움직이려 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엄마가 엠블런스 뒷자리에서 3시간을 타고 가는 것은 무리일 것 같았다. 그래서 엠블런스는 동생만 타고 가고 엄마는 내 차로 움직이기로 결정했다.


내일은 온 가족이 움직이는 날이다. 나는 가게 문을 닫고, 동생은 휴가를 냈다.

아버지가 병원을 간 후 가게 문을 닫아야 하는 날이 많았다. 동생은 휴가를 써야 하는 날이 많았고. 가족 중 누군가가 아프면 그렇게 일상이 조금씩 무너지는 것이다.


자기 전에 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내일 수고 좀 해라. 엄마랑 나는 조금 일찍 출발해서 복주병원에 도착해 있을게. 아버지 오면 바로 볼 수 있게. 서류 주는 것만 잘 챙겨 오면 돼. 예약한 엠블런스 연락처는 따로 보내줄게. 내일 보자."


"형. 아버지 괜찮겠지?"


"당연히! 그리고 아버지 치료 잘할 수 있는 데로 가는 거니까. 기분 좋게 생각하자. 경희대에서 아버지는 살아난 거고 안동에서 아버지는 걸어서 서울로 다시 오게 될 거야."


동생을 안심시키고 전화를 끊었다. 사실 동생과는 자주 연락을 하지 않는다. 동생이 결혼 후, 여러 가지 사정으로 더욱 그렇다. 그래도 이번만큼은 동생이 있다는 게 든든했다.



6월 13일 화요일



아침 일찍 눈을 떴다. 엄마는 이미 일어나 있었다. 병원 업무가 시작되는 9시 이후부터 퇴원이 가능하니까 아버지는 빨라도 10시가 넘어야 퇴원이 가능하다. 동생은 9시에 병원에 가서 퇴원 수속을 마치기로 했고 나와 아내 그리고 엄마는 9시에 안동으로 출발을 했다.

여름이 일찍 시작되는 듯했다. 더운 날이었다. 서울을 아직 벗어나지 못했는데 갑자기 에어컨이 작동하지 않았다. 이제까지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에어컨을 최대로 시원하게 맞춰도 더운 공기만 계속 뿜어져 나왔다. 출발부터 조짐이 좋지 않았다. 이런 채로 3시간을 달릴 생각을 하니 머리가 복잡해졌다. 창문을 열었다. 차가 막힌 채로 서행을 하고 있자니

더운 공기가 차 안으로 들어왔다.


에어컨 버튼을 신경질적으로 껐다 켜기를 반복.

아내와 엄마는 내 눈치를 보느라 조용했다. 나도 모르게 욕이 새어 나왔다.


"아이씨. 이거 오늘 왜 이런 거야. 정말!!!!"


아내가 뒷자리에 어머니도 있는데 자중하라는 표시로 내 손을 툭 쳤는데 그게 문제였다. 그동안 참고 참았던 분노가 터져버렸다. 나는 듣지도 못하는 자동차 에어컨에게 그리고 아버지에게 나도 모르게 말을 내뱉고 있었다.


"왜 하필이면 오늘 지랄인 건데. 이렇게 어떻게 가라고 지랄인 건데. 어제까지 멀쩡했다가 왜 이런 건데. 왜 꼭 이렇게까지 힘들 게 하는 건데!!!"


라디오도 켜 있지 않은 차 안은 분노로 가득했다. 액셀을 밟는 오른발이 뻑뻑했다. 금방 터져버릴 풍선처럼 차가 조금씩 부풀어 오르는 것만 같았다. 땀샘이 터져 겨드랑이를 시작해 등까지 축축해졌다. 너무 더웠다. 이제 출발이었다. 서울도 벗어나지 못했다. 자동차 점검을 받고 가야 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그럴 수 없었다. 아버지를 태운 엠블런스 보다 먼저 도착하려면 휴게소에서도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었다. 이렇게 가다가는 큰 사고가 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아주 잠시, 오늘 가지 말라는 소린인가?라는 생각도 했다. 그때 갑자기 에어컨에서 찬 기운이 스멀스멀 나오기 시작했다. 다시 에어컨을 강하게 돌렸다.


위잉~


찬바람이 본격적으로 나오며 땀을 순식간에 식혔다. 그제야 살만 했다. 아내와 엄마도 마찬가이였을 것이다.


우린 한동안 말이 없었다.


-


다행히 안동복주병원에 엠블런스보다 먼저 도착했다. 동생에게 전화를 하니 20분 후면 엠블런스도 도착한다고 했다. 업무과에 아버지 이름을 말하고 입원 수속을 했다. 상담직원과 간호사들이 적당히 친절했다.

업무과 앞에 있는 작은 소파에 앉아 병원을 둘러봤다. 가장 먼저 보이는 건 환자들이었다. 휠체어를 타거나 아이처럼 위태롭게 아장아장 걷는 환자들이 병원 복도를 걷고 있었다. 환자들 옆에는 재활담당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한 명씩 옆에 붙어 있었다. 환자들의 환자복이 깨끗했다. 표정이 밝았다. 환자들 표정에 아버지 얼굴이 스쳤다. 자연스럽게 아버지가 걷는 모습이 상상됐다. 아장아장 걷던 환자가 지나가는 병원 사람을 보더니 손을 번쩍 들었다. 둘이 짝 소리가 나도록 하이파이브를 했다.


여기가 앞으로 아버지가 있을 곳이구나.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실감이 나지 않았다. 아버지가 깨어나면 왜 이곳까지 왔냐고 짜증을 내겠지? 지금 같아선 나에게 짜증을 내도, 욕을 해도 다 받아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돌아올 수만 있다면.....


아버지의 엠블런스가 도착했다. 동생이 먼저 내리자 이동식 침대에 누워있는 아버지가 보였다. 이동시간이 길어 멀미를 했다가는 기도가 막힐 수도 있어 아침부터 금식을 하고 있는 아버지는 조금 핼쑥해 보이긴 했지만 괜찮아 보였다. 여전히 사람들의 말을 알아듣는지는 모르겠지만 눈은 멀뚱멀뚱했고 식사를 위해 코에 줄을 차고 있어서인지 코가 많이 부어 있었다.


"아버지. 고생했어. 여기까지 오느라 너무 고생했다. 이제 여기서 재활 잘하고 집에 가자. 진짜야. 나 여기 아버지 더 잘하기 위해서 온 거야. 멀리까지 아버지 떨구러 온 거 아니야. 그러니까 오해하지 말고. 진짜 치료 열심히 받아야 해."


아버지가 분명히 듣고 있다고 생각하며 나는 계속 말을 했다. 엄마도 아내도 아버지에게 하고 싶은 얘기들을 했다. 입원에 필요한 서류를 체크하고 병원 측에서 아버지 입원을 서둘렀다. 코로나 때문에 환자를 일반인들이 많이 오가는 곳에 오래 두지 않는 것 같았다.


아버지가 병실로 올라가고 담당의사가 인사를 했다. 자기 방으로 데리고 가 차트를 보며 설명을 했다. 조금 말이 많은 듯했지만 우리에겐 그게 더 안심이 됐다. 의사가 아버지의 경우는 확 좋아지거나 아니거나 둘 중에 하나라고 했다.


그렇게 아버지의 재활병원생활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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