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아이가 되었다

#12 팔순잔치

by 조명찬


6월 18일 일요일



돌아오는 수요일에 엄마가 혼자 병원에 가기로 했다. 안동에 모시고난 후로는 처음 간 것이다. 매일은 면회가 어렵고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허용됐다. 시간은 30분 정도.


대중교통을 혼자 타는 아이를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처럼 나는 엄마가 혼자 갈 수 있을지 불안했다. 청량리에서 KTX를 타면 안동까지 2시간. 병원도 안동역에 가까이 있으니 왕복 4시간이면 다녀올만한 거리다. 관건은 엄마가 제대로 된 시간에 제 열차에 오를 수 있느냐.

엄마에게 물었다.


"혼자 기차 타고 어디 가는 건 처음이지 않아?"


"그렇지. 처음이지."


"잘 탈 수 있겠어?"


"안 그래도 오늘 경동시장도 갈 겸 한번 가 보려고. 아침에 괜히 헤맸다가 기차 놓치면 안 되니까."


경동시장은 제사나 명절 그리고 집에 손님들이 많이 올 때나 일부러 가는 곳이다. 시장은 핑계다. 엄마도 내심 불안했던 것이다. 미리 답사까지 할 정도면....

아내가 기차 스케줄을 확인하고 티켓을 끊고 엄마의 동선을 체크해서 알려주었다. 내가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세세하게 생각해 주는 아내. 나는 그게 늘 고맙다.


엄마에게 예전 사진 좀 챙겨가라고 했다. 아버지는 나와 동생의 어린 시절 사진을 한참 동안 볼 정도로 지난날을 많이 그리워하던 사람이다.

작년, 아버지 팔순 잔치를 급하게 준비했었던 게 기억났다. 사실 팔순 잔치를 크게 준비할 생각이 없었다. 우리 가족끼리 저녁 한 끼 먹고 그동안의 얘기를 조금 나누려고 했는데, 아버지는 생각이 달랐다. 친구들은 못 불러도 친척들은 한자리에 불러서 식사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아버지가 정말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다.


하루하루 가겟세를 메꿔보려고 안달을 하고 있을 때라 더 그랬다. 아버지의 그런 말들이 모두 부담으로 다가왔다. 아버지가 생각하는 팔순잔치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큰 연회장을 빌리고 트로트 가수를 섭외하고 친구들을 과시하듯 불러놓고 가족들이 한 명씩 나와서 '만수무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는 그런 풍경을 생각하고 있겠지?


나는 가만히 일을 하다가도 갑자기 화가 났다. 지금 그렇게 생각할 때인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의 뜻대로 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때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자신이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가친척들과 함께 밥 한 끼 먹고 싶다는 거였다. 아버지의 친구들, 큰 연회장, 트로트 가수는 그렇게 해줄 수 없는 나의 자격지심이 만든 상상이었다. 아버지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사촌의 고깃집을 대관하기로 하고 친가와 외가 친척들이 모두 모이기로 했다. 엄마는 음식이 걱정이었고 나는 양가의 어색한 분위기가 걱정이었다. 아버지는 그날 한복을 입고 오겠다고 했다. 나는 한복은 연회장을 빌렸을 때나 입는 거지 고깃집에서 무슨 한복을 입겠다고 하냐고 엄마를 통해 말렸지만 엄마의 생각은 또 다른 것 같았다. 나는 가볍게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행사였고 부모님은 오랫동안 기억되고 싶은 행사였다.


잔치를 일주일 앞두고 나는 조금 마음이 무거워졌다. 작은 이벤트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고민하다가 아버지의 일생을 한눈에 보여주기로 했다. 꼼꼼하기로 유명한 아버지는 자신의 어릴 적 사진을 잘 간직하고 있었는데 그게 큰 도움이 됐다. 엄마에게 부탁해 아버지 사진을 연도 별로 받아 사진을 추렸다.

아버지의 지나간 날들이 한눈에 보였다. 아버지의 젊음이 보였다. 반짝반짝한 눈이 보였다. 장난기 넘치는 광대가 보였다. 아내가 사진 보정을 담당했다. 하루종일 아버지 얼굴만 보고 있자니 애틋한 마음이 절로 든다고 했다. 자세히 보고 오래보고 있자니 예뻤나보다. 장인어른, 장모님의 사진도 자주 그리고 오래 들여다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팔순잔치 당일, 양가 식구 60명이 넘게 모였다. 아버지는 내가 결혼할 때 맞춰 입었던 한복과 두루마기를 입고 등장했다. 고깃집에 들어서자마자 창문에 붙어 있는 아버지의 사진을 한참동안 들여다봤다. 그날, 모든 사람이 그랬다. 오롯이 아버지가 주인공이 되는 순간이었다.


함께 사진을 찍고 밥을 먹고 테이블을 돌아다니며 인사를 하고 술을 마시고....

생각보다 재미있는 행사였다. 내가 너무 보수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친가도 외가도 어느덧 함께 어울려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같은 건물에 있는 라이브 카페를 빌려 모든 식구들이 노래를 부르며 놀았다. 흥이 오르니 모두 무대에 나와 서로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빙빙 돌면서 춤을 췄다.


편지를 준비했으면 좋았을 걸.

나는 이제껏 후회한다. 이왕 하는 것 더 진심으로 할걸....

그리고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날이 아니었다면, 아버지는 아버지가 그토록 보고 싶어 하는 양가친척들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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