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가에서 만난 커피의 단맛
서두르지 않지만 나태하지 않게, 커피와 대화를 나누는 시간
오늘도 로스터의 불빛을 바라보며 나는 커피와 대화를 시작한다.
너무나 빠르게 변해가는 시대 속에서도, 느림의 손길은 천천히 삶의 맛을 우려낸다.
삶은 결코 서두른다고 해서 더 빨리 익어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대개 눈에 보이는 결과가 있어야만 신뢰를 보낸다. 하지만 커피를 볶는 이 시간만큼은 조금 다르다.
나는 인위적인 맛보다 자극 없는 자연스러운 맛을 추구한다.
겉만 번지르르하지 않고 속까지 차분히 익어 깊은 향을 품는 커피처럼, 우리의 삶도 그렇게 천천히 익어가는 것이라 믿는다.
12년 전, 규슈 사가에서 마주한 정적의 맛
이런 철학의 뿌리에는 2014년 3월, 일본 사가(佐賀)에서 만난 이즈미야 커피의 마에야마 하루히코 사장님이 있다.
규슈 커피여행의 마지막 여정에서 들른 그의 가게 안에는, 팽팽한 긴장감 대신 묵직하고 따뜻한 공기가 조용히 흘렀다.
단정히 맨 넥타이와 세련된 모자, 그리고 손끝에 깃든 장인의 정갈함.
그가 세월의 흔적이 배어 있는 주전자를 들어 물을 따르자, 공기가 순간 달라졌다.
가느다란 물줄기가 원두 위로 부드러운 궤적을 그리며 떨어졌고, 곧 볶은 견과의 고소함과 잘 익은 과실의 달큼한 향이 공간을 채웠다.
그가 건넨 한 잔의 커피를 내려다보는 나에게 마에야마 사장님이 조용히 말했다.
“커피는 정말로 달아요.”
직화로스팅에 대한 자부심!!!
그 한마디에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그는 불을 지피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굽고 있었다.
불을 지피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굽는다는 것
직화식 로스터의 불꽃을 다스려, 원두의 속(芯)까지 천천히 구워내는 일.
나는 지금도 그가 보여준 태도를 잊지 않는다.
불의 온도를 낮춰 생두의 가능성을 억지로 끌어내지 않고, 조용히 기다려주는 것.
커피를 볶는다는 건 결국 누군가와 깊은 대화를 나누는 일과 닮아 있다.
값비싼 생두를 쓰면 물론 훌륭하겠지만, 소비자에게 지나친 부담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믿는다. 평범한 커머셜 생두라도, 로스터의 기술과 정성이 더해지면 충분히 아름다운 결과를 낼 수 있다고.
억지로 맛을 입히기보다, 콩이 지닌 본연의 개성이 스스로 피어날 수 있도록 묵묵히 기다리는 것.
그것이 내가 커피의 단맛을 찾아가는 방식이다.
다시 또 한 잔을 그리워하게 만드는 일상을
고객께 전달해 가는 것이야말로
로스터리카페의 책임이자 사명이라고 하신
마에야마 사장님의 말씀을 ~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다.
마지막 한 모금을 넘길 때 밀려드는 묘한 허전함은 맛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깨끗하고 편안한 여운을 조금 더 붙잡고 싶다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한 잔을 비우자마자 다시 또 한 잔을 그리워하게 만드는 맛 —
어쩌면 마에야마 사장님이 평생을 바쳐 구워낸 것은 바로 그리움의 맛이었는지도 모른다.
귀국 편 항공편 스케줄 관계로 짧은 머묾의
아쉬움울 뒤로하고,
사가를 떠나던 버스 안에서도 그 온기는 입안에 고요히 머물렀다.
그리고 12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내 기억 속에서 달콤하게 남아 있다.
서두르지 않지만, 결코 나태하지 않은 삶.
오늘 나는 다시 커피를 볶는다…
단순히 커피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하루에 깊은 여운을 남길 시간의 맛을 굽는 마음으로.
서두르지 않는 오늘이 쌓여, 가장 나다운 향을 내는 내일이 될 것이라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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