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김옥란 책읽는 너구리
Dec 07. 2021
너 하나만
먹으면 살 것 같은 시간이
있다
아삭 깨물면 단물이 촤륵 몰려와
검은 구덩이 속에 있던 혀를 끄집어내는
너의 속성이 그리워서
빨간 사과를 손바닥에 올리고
거친 손바닥으로 매끈한 엉덩이를
쓰다듬는다
빨갛게 빛을 내는 사과 그리고 손바닥에
느껴지는 허기 사이로
사과나무 아래 누운 자는 연거푸 입을 벌리고,
한 입 베어 문 사과는 뱀의 꼬임, 추방이 있었다
사과에게 빛을 주는 붓질은 계속되고,
귀퉁이에서 벌레를 집어내는 잡스의 사과가
전광판을 차지하는 동안,
나는 너 하나 먹고 싶어
목구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식욕을 느낀다
가을 산을 오르다 보았던 사과나무는
빨간 얼굴을 다닥다닥 달고도 휘어진 꼬리를
놓지 않았다
너의 향기가 꼬리처럼
그리운 오늘, 비우지 못한 얼굴을 마주한다
탈출된 사과는 더 빨갛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