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노래가 미국인들의 간절한 희망가로 등극하기까지의 이야기
앞의 글에서 Judy Garland Show의 한 장면을 언급하면서, 필자의 의식의 흐름은 당연히 주디 갈란드로 이어졌다. 앞에서 짧은 글로 적었듯이 그녀는 사춘기를 앓던 열두 살의 나에게 첫사랑처럼 다가온 할리우드 여배우였다. 주디 갈란드(1922-1969)는 미키 루니(Mickey Rooney 1920-2014)와 커플을 이루어 B급 저예산 뮤지컬을 통해 할리우드에 얼굴을 알린 배우이다.
1930년대에 이미 할리우드의 영화 제작 시스템은 거대한 자본과 무자비한 상업 논리가 지배하고 있었다. 당시 뮤지컬이 돈이 된다 싶었던 할리우드의 제작사들은 품격과 고상한 이미지로 알려진 배우 제임스 스튜어트(James Stewart)에게 까지 춤과 노래를 시켰다. 술과 시가 연기가 자욱하던 뉴욕의 보드빌 쇼가 거대 자본의 도움으로 세련되게 다듬어졌다. 무대 위의 뮤지컬이 필름 위로 옮겨 오면서 제롬 컨(Jerome Kern), 콜 포터(Cole Porter), 조지 거슈인(George Gershwin) 등의 작곡가들이 할리우드를 위한 곡을 쓰면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당시 할리우드는 자본을 빨리 회전시키면서 인력과 스튜디오를 계속 돌릴 수 있는 제작 시스템을 만들었다. A급 영화와 B급 영화를 함께 배급하는 시스템이다. 예를 들어 영화 제작사 MGM(사자 얼굴이 로고로 나오는 그 제작사이다.)에서 제롬 컨이 곡을 쓰고 프레드 아스테어(Fred Astaire)와 진저 로저스(Ginger Rogers)가 출연하여 흥행이 보장되는 A급 뮤지컬을 제작 중이라고 치자. 할리우드 시스템은 이 영화를 제작하면서 동시에 배경, 엑스트라 등을 공유하는 저예산 영화를 만든다. 그리고 극장주에게 A급 뮤지컬 필름을 상영하고 싶으면 B급 필름도 함께 구매하라면서 B급 영화를 끼워파는 방식이다.
주디 갈란드와 미키 루니는 이런 저예산 뮤지컬에 투입이 되었다. 젊은 청춘 남녀가 노래를 부르지만 젊은 아이디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비슷한 분위기의 영화들이었다. 긍정적인 반응으로는 이 두 젊은 배우가 노래를 제법 잘하고 뮤지컬에 어울린다는 평을 들을 수 있었다.
이 둘은 1937년부터 다섯 편의 뮤지컬에 함께 출연했지만 아직 이들은 탑 스타와는 거리가 멀었다. 미키 루니와의 뮤지컬에 출연하던 주디 갈란드는 어린이를 위한 동화책 오즈의 마법사가 컬러 뮤지컬로 제작된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 당시는 테크니컬러 기술을 사용한 컬러 영화가 할리우드에서 화제가 되었던 시기였다.
감독 빅터 플레밍(Victor Fleming)은 처음에는 주디의 오디션 소식을 탐탁지 않아했다고 한다. 감독이 생각했던 주인공 도로시는 어리고 연약한 소녀였고, 당시 열여섯 살의 주디는 이 역을 맡기에는 나이가 많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디션에서 그녀의 노래를 듣자마자 도로시 역으로 주디 갈란드를 결정했다. 그만큼 주디 갈란드의 노래 실력만큼은 독보적이었다. 오즈의 마법사는 지금은 너무나 흔해빠진 이 세계로의 소환물인데, 감독은 주인공 도로시의 현생은 흑백으로, 그리고 이 세계 오즈의 나라는 컬러로 제작해서 동화적인 효과를 극대화했다.
해럴드 알렌(Harold Arlen)이 곡을 쓴 Over the Rainbow는 시골에서 자란 도로시가 무지개 너머의 세상을 꿈꾸는 서정적인 노래이다. 지금은 모르는 사람이 없는 이 곡이 그야말로 통 편집 당할 뻔 했다고 한다면 갸우뚱 할 것이다. 영화 촬영을 마치고 영화사의 관계자 시사회에서 Over the Rainbow를 부르는 장면이 스토리와는 좀 뜬금없다는 반응이 나왔다. 소위 영화 전문가라고 자부하는 영화사 관계자들은 흥행을 위해 보다 속도감 있게 컬러 영화를 보여줄 것을 요구했다. 컬러 영화를 기대하고 온 관객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흑백의 스토리 전개 부분은 가능한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급기야 이 노래 장면의 통편집이 언급되었다.
오늘날에도 이런 현상은 흔하게 벌어진다. 극의 전개가 조금만 늘어지면 바로 불편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은 일주일 마다, 몇 년 마다, 세기를 반복해서 등장한다.
작곡가 해럴드 알렌이 나서서 이러한 의견에 반대를 했지만, 무엇보다도 감독 빅터 플레밍의 반발이 대단했다고 한다. 감독과 제작사와의 갈등 속에서 이 노래 장면은 가까스로 영화에 삽입되었다. 그리고 이 노래는 주디 갈란드의 인생을 바꿔버린다.
https://youtu.be/PSZxmZmBfnU?si=kuEvkE8SJ_HCzDt5
가수에게 있어서 자신이 발표한 곡이 대히트를 한다면 그야말로 하늘이 도와준 행운이라 여길 것이다. 그런데 그 곡이 전 세계적으로 히트를 하고 세대를 이어간다면 자신이 부른 히트곡에 가수가 압도되어 버리는 아주 드문 현상이 발생한다. 곡의 영향력이 클수록 가수를 무겁네 누르는 짐이 될 수도 있다. 인생은 아이러니한 면이 있다.
이 곡은 무지개 너머의 희망을 노래한다. 혹자에게는 답답한 현실 너머의 이상향일 수 있을 것이고, 대공황이 끝나고 아물어가는 미국 경제의 회복을 꿈꿀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는 대부분의 관객들에게 이 노래는 제2차 세계 대전이 조속히 끝나서 전장으로 떠난 가족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는 기도처럼 들렸다. 세계가 미쳐 돌아가고 있고 하루에도 수천의 젊은 목숨이 기관총 앞에서 쓰러져갈 때, 모두들 간절한 마음으로 이 노래를 들었다. 전 미국이 주디 갈란드에게 그들의 희망과 소망을 노래해 달라고 부탁했다.
Over the rainbow는 단순한 히트곡의 범주를 넘어서 미국인들의 기도문이 되어있었다.
십 대의 어린 소녀에게 이러한 전 국민적 기대감은 어마어마한 압박이 되었음에 분명하다. 온 미국인들이 전쟁을 끝내 달라는 기도문을 어린 소녀에게 요구했다. 빨대로 입김을 불어넣어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콜라의 거품처럼, Over the Rainbow는 주디를 위로 위로 끓어 올렸으며 급기야 주디를 통째로 집어삼켜버렸다. 오즈의 마법사 이후 주디는 이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명성을 얻었다. 그 명성으로 인해서 수많은 영화에 출연했음에도 불구하고 Over the Rainbow에 대한 부담감은 그녀가 죽기 전까지 따라다녔다고 한다. 그러한 부담감에서 도피처로 삼고자 그녀는 결혼을 선택했다. 주디는 아직 어린 나이에 결혼과 이혼을 반복했다. 다섯 번의 결혼 후 그녀는 47세 나이에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사망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주디는 the Command Performance U.S.A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그녀의 히트곡이자 미국인들의 간절한 희망을 노래한다. 수천 번을 불러보았을 노래이지만, 파르르 떨리는 주디의 목소리에서 시대의 긴장감이 느껴진다. 전쟁에 나간 장병들이나, 본국에서 노래를 듣고 있는 군인들의 가족들은 이 미친 전쟁이 반드시 끝날 것이라는 희망의 기도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방송을 듣고 있다. 오늘날을 사는 우리들이 감히 가늠할 수 조차 없는 무겁고 아픈 시대의 희망가인 것이다.
https://youtu.be/4wkSBZb2aoI?si=HmORGx3bFUZHfYFQ
무거운 분위기에서 조금 가벼운 이야기로 글의 분위기를 바꿔야겠다. 앞 글에서 언급했듯 필자는 사춘기를 앓던 열두 살에 TV에서 방영하는 오즈의 마법사를 처음 보았다. 영화 속 양갈래 머리의 주디 갈란드에게 빠져서 주디 갈란드 앓이를 하고야 말았다. 그것은 사운드 오브 뮤직의 폰 트랩 가문 남매들 중 다섯째 브리기타(Brigitta) 때 보다 강렬한 것이었다. 당시에는 인터넷 검색이라는 지금으로서는 너무나 쉽고 당연한 문물이 존재하지 않았을 터라, 오즈의 마법사가 1939년도 영화라는 사실을 몇 개월 뒤에서야 알게 되었다. 주디 갈란드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났다. 사춘기 소년에게는 제법 충격적인 결말이었다. 첫사랑을 시작하자마자 잃어버린 내 마음을 알아주는 성주라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TV에서 방영한 고전영화 '길은 멀어도 마음만은'의 여주인공 마리솔(Marisol)에 빠져있었고 이 영화가 1960년에 제작된 스페인 영화라는 것을 얼마 전에 안 상태였다. 두 사춘기 소년들은 그렇게 그들의 첫사랑을 떠나보내고 있었다. 이러한 역사는 반복되는 법인데, 젊은 시절의 기무라 타쿠야의 사진을 보고서 기무라 타쿠야를 격렬히 좋아하게 된 딸아이의 친구 은솔이가 그렇다.
토닥토닥.
필자에게 Over the Rainbow와 함께 이따금 꺼내 듣는 주디 갈란드의 노래를 꼽으라면, 이제는 클래식한 크리스마스 캐럴이 되어버린 Have yourself a merry little Christmas이다. 개인적으로 매우 사랑하는 크리스마스 캐럴 중 하나인데, 이 곡에서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흥행을 해야겠다는 자본의 냄새가 빠져있어서 좋다. 캐럴은 감사와 사랑이 첫째 양념이어야 한다는 필자만의 생각에 부합하는 노래이다.
영화 세인트루이스에서 만나요(Meet me in St. Louis)에서 20대의 주디 갈란드가 극 중 막내 동생 마가렛 오'브라이언(Margaret O'Brien)에게 불러주는 노래다. 마가렛 오'브라이언은 셜리 템플과 함께 회자되는 전설적인 할리우드 아역 배우로, 우리나라에서는 49년 개봉한 작은 아씨들로 각인되어 있다. 하마터면 이 글이 마가렛 오'브라이언에 대한 설명으로 또 빠질 뻔했다. 생각의 마무리가 시급하다.
Have yourself a merry little Christmas의 링크를 남긴다.
https://youtu.be/CreWsnhQwzY?si=TlMh_gbormzpnkP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