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세 손가락만으로 연주를 했던 기타리스트

[장고 라인하르트와 스테판 그라펠리의 집시 재즈 이야기]

by Bellbo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글에서 1930년대의 뮤직 비디오(엄밀히 말하자면 음악 교육용 영상) 한 편을 소개하려 한다.

요즘은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가 출시되면, 바로 유튜브에서 그 사람의 뮤직 비디오나 live 공연을 찾아볼 수 있으니 이것이 당연한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하루 종일 뮤직 비디오를 틀어주는 Mtv가 등장했던 80년대 중반에조차 빌보드 HOT100순위의 top 10에 오른 히트곡이 뮤직 비디오가 없는 경우도 있었다. 시대가 이런 시대이니 Mtv로 인해서 뮤지션에 대한 영상이 흔해지기 전인 60, 70년대의 락 밴드의 팬들이라면 밴드의 앨범을 여러 장 구입했을지라도 그들이 연주하는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세대가 존재한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40, 50년대 재즈신을 사랑하는 재즈 팬이나 클래식 음악 애호가에게 "그분의 영상을 보셨나요?" 하는 질문을 하게 된다면 "네? 클리포드 브라운이 트럼펫을 연주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냐고요? 아마 제가 그를 볼 수 있다면 그것은 천국에서나 가능하겠지요." 하는 대답을 듣게 될 것이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 장고 라인하르트는 클리포드 브라운에 비해 10여 년 앞서 활동한 재즈 기타리스트이니 그의 영상 자료는 그만큼 희귀하다.

나 역시 1930년대~50년대 초반까지 활동했던 장고 라인하르트(Django Reinhardt 1910–1953)의 CD를 사 모으면서 그에 대해서는 레코드의 라이너 노트(레코드의 설명과 평론이 적혀있는 레코드 속지)를 통해서 배울 수밖에 없었고 유니텔이라는 PC통신에서 만난 재즈 동호인 분들을 통해서 얻어들은 이야기들이 전부였다. 그의 곡이 흘러나올 때 귀를 쫑긋 세워서 집중해서 들으면서 그의 연주 모습이 이러한 모습일 것이라고 상상할 수밖에 없었다.

장고 라인하르트는 벨기에 출신의 집시 기타리스트로 포장마차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집시 생활을 하면서 기타를 연습했다. 어느 날 그의 포장마차에 불이 나는 화재사고로 그는 기타 코드를 잡는 왼손에 큰 화상을 입게 된다. 이 화재로 인해 왼손의 두 손가락인 약지와 새끼손가락을 움직일 수 없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이 두 손가락이 이어진 손바닥을 접는 것도 쉽지 않게 되었다. 화재는 그의 두 손가락과 손바닥, 손등까지 망가뜨렸다. 두 손가락과 손바닥을 제대로 움켜쥐지 못하는 상황에는 기타의 목을 움켜쥐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장고 라인하르트는 움직일 수 있는 엄지손가락으로 기타의 목(neck) 뒤쪽을 받치고, 검지와 중지 두 손가락 만으로 기타의 지판(finger board)을 짚어나가는 자신만의 연주법을 개발해야만 했다.

아이고.


위로 올라가서 커버 이미지를 다시 보신다면 그의 손이 얼마나 망가졌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다시 한번) 아이고.....


이렇게 고분군투하는 장고의 스타일을 알아보고 그를 프랑스 재즈 신으로 이끈 연주자가 있었는데, 재즈 바이올린 연주자인 스테판 그라펠리(Stéphane Grappelli 1908–1997)였다.

Django Reinhart Stephan Grapelli.jpg

장고 라인하르트와 스테판 그라펠리는 [퀸텟 뒤 핫(옷) 클럽 드 프랑스 Quintette du Hot Club de France (불어에서는 H로 시작하는 단어는 묵음으로 옷 클럽 드 프랑스로 발음한다.)] 를 결성했다. 이들이 연주한 재즈는 미국의 스윙 재즈에 장고의 집시 스타일을 섞어서 집시 재즈라 불리는 장르의 시초가 된다.


느긋 느긋 살랑살랑 거리는 스윙 재즈가 집시 스타일과 만나면서 보히미안스러운 파리의 분위기에 잘 녹아들었다. 영국과 미국의 재즈 연주자들과 라디오 프로그램들이 이들이 선보인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에 관심을 보였다. 뭔지 모르는 파리지앵스러운 낭만과 새로운 스타일의 전위적인 느낌이 동시에 느껴졌다. 묘하게 이국적인 분위기의 음악인데 세속적이면서도 실험적이고 전위적이면서도 동시에 낭만이 느껴진다.


이 즘에서 두 손가락 만으로 코드를 짚어나가는 장고 라인하르트의 영상을 보자.

유튜브에서 이 영상을 보았을 때 땅 속에 파묻힌 옛 성터를 발견한 고고학자의 심정을 일부나마 엿볼 수 있었다. 이런 영상이 존재했었다니. 나는 이 영상의 존재여부도 몰랐던 상태였으니 음악의 신이 나를 이 영상으로 인도했다고 생각하고 싶다. 유튜브 안에서 헤매는 맛이란 이런 것일 듯싶다.

1938년 영국에서 제작된 Jazz Hot이라는 제목의 짧은 영상인데, 당시의 시대적 배경지식이 약한 분들을 위해 설명을 드리자면 1938년 당시에는 유튜브나 인터넷은 없었고 영상을 볼 수 있는 TV도 극히 제한적이었다. 이러한 짧은 영상들은 극장에서 영화 시작 전에 상영되는 16mm 필름으로 촬영된 뉴스릴의 한 꼭지일 확률이 높다. 우리나라에서도 중년의 나이라면 극장에서 영화 시작 전에 나오는 "대한 뉘우스~ "하는 뉴스 영화를 기억하는 분들이 있으실 거다. (대한 뉘우스를 봐야 했고 애국가가 흘러나오면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뉴스 릴의 한 꼭지이기에 이 영상의 멘트도 다분히 BBC 뉴스의 억양을 따라간다. 아나운서의 말투와 원고가 다분히 설명적이고 교육적이다.


영상 멘트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장고와 스테판은 미국의 루이 암스트롱, 콜맨 호킨스, 잭 티가든 그리고 베니 굿맨과 같은 재즈 연주가이다. 1938년의 재즈는 20년대와는 다르게 연주자들의 해석과 즉흥 연주가 중요해졌다 하는 배경 설명에 이어서 그들이 연주하는 j'attendrai (나는 기다릴 거예요)가 흘러나온다. 정작 아나운서는 곡의 제목 소개는 안 한다. 장고 라인하르트와 스테판 그라펠리의 퀸텟 멤버들을 소개하는데 재미있는 것은 콘트라베이스 또는 더블 베이스라 하지 않고 베이스 피들(Bass fiddle)이라고 소개를 하는 점이다. 이 퀸텟은 베이스와 두 명의 기타가 리듬 섹션을 구성하고 있다.


또다시 등장하는 사족 : 유명세로 따지자면 트롬본 연주자 잭 티가든은 루이 암스트롱이나 콜맨 호킨스와 비교할 바가 아니겠지만, 뉴스 작가는 트럼펫, 색소폰, 트롬본, 클라리넷 연주자 한 명씩을 언급하려고 했던 거 같다. 잭 티가든은 루이 암스트롱이 이끄는 올스타 밴드(All-Stars)의 일원으로도, 솔로 주자로도 활약했다. 당시 베니 굿맨과 함께 백인 빅 밴드를 이끌었던 글랜 밀러가 트롬본의 대표가 아니라니! 뉴스 대본 작가가 댄스곡보다는 블루지한 음악 쪽이 취향이었던 거로군!

조금은 지루한 아나운서 설명의 배경으로 작은 오케스트라가 j'attendrai (나는 기다릴 거예요)를 연주하고, 해설자는 다음 등장하는 장고가 이들과 어떻게 다른 스타일로 연주하는지 들어보라 하면서 소개를 마친다.


이제 정말 J'attendrai의 연주를 들어보자.

https://youtu.be/cxQxajcOyCI?si=lgKwhIGI727kAIVv


이것은 장고 라인하르트의 화상을 입은 왼손을 매우 자세히 볼 수 있는 영상이다. 화상을 입은 두 손가락은 전혀 지판을 짚어나가지도 못하고 손바닥과 손등까지 화상을 입었으니 손바닥을 접어서 움켜쥘 수도 없다. 그럼에도 장고는 현란한 테크닉에 또로로롱 은쟁반에 옥구슬이 굴러가는 기타 톤 까지 사랑스럽게 연주를 한다.
포마드로 머리를 매끄럽게 넘긴 스테판 그라펠리를 보면서 그를 아는 재즈 애호가는 아마도 스테판 그라펠리가 이렇게 젊은 시절이 있었나 감탄을 하셨을 거다.


나 역시 어릴 적 아버지께서 들려주시던 예후디 메뉴힌과 스테판 그라펠리 두 할아버지 연주자의 듀엣 앨범이 그를 처음 알게 된 계기였으니, 어린 시절의 나한테도 스테판 그라펠리 할아버지였다. 조금 더 커서 용돈으로 LP와 CD를 사 모을 수 있었을 때에는 정말 나이가 많으신 원로 재즈 연주인이셨으니까.

젊은 모습의 스테판 그라펠리라니. 이 영상을 보다가 스테판 그라펠리의 젊은 얼굴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탄성이 흘러나왔다.


장고 라인하르트가 연주하는 자세를 보면 기타를 눕혀서 기타 현이 위를 향한 상태에서 눈으로 두 손가락의 운지법을 지켜보면서 연주를 한다. 이렇게 소파에서 나이브하게 눕듯이 연주를 하는 스타일에 대해서 기타 초심자라면 매우 불편하게 보이겠지만, 의외로 이렇게 기타를 연주하는 연주자들이 있다. 예를 들어 최고의 스윙재즈 밴드인 카운트 베이시 오케스트라(Count Basie Orchestra)에서 나긋나긋한 스윙감을 맡았던 기타리스트 프레디 그린(Freddie Green)이 있다. 프레디 그린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시 얘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장고의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매우 느긋하고 나른한 자세이지만, 그가 기타의 음색에 대해 매우 조심스럽고 예민하게 컨트롤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재즈 연주에서 기타를 리듬 섹션에서 멜로디를 이끄는 리드 악기로 이끌어낸 사람이 장고 라인하르트라고 할 수 있겠다.


재즈를 모르시는 분이라면 장고와 스테판이 젊은 시절 연주를 하는 귀중한 자료 화면이 주는 감동보다는, 젊은 바이얼리니스트 스테판이 구두를 신고 침대 위에서 담배까지 태우는 모습이 더 충격이었을지도 모르겠다. 1938년 당시는 담배가 신사와 숙녀의 기호품이었으니 흡연 영상이 계속 나오는 거에 대해 이해해 주자. 위대한 지휘자 오토 크램퍼러(Otto Klemperer 1885-1973)도 침대 위에서 담배를 물고 있다가 스르르 잠에 빠지면서 심각한 화상을 입은 적이 있다. 재즈 연주자만이 폼을 잡으며 흡연하던 게 아니다. 그저 흡연에 대한 낭만을 허용하던 시대였다.
물론 재즈라고 하면 왠지 담배 연기 자욱한 공간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재즈 앨범 재킷에 담배를 소품으로 활용하는 사진들을 꼽아보면 그것도 재미있겠다.(또 삼천포로 빠지려는 정신을 붙잡습니다.)

Blue Mitchell 00.jpg
Blue Mitchell 01.jpg
너무나 아름다운 When I Fall In Love가 수록된 Blue Mitchell의 음반 Blue's Mood. 트럼펫을 받치고 있는 왼손에 담배가 쥐어져있다.


나치가 프랑스를 점령하게 되면서 프랑스의 재즈 연주자들은 매우 위험하고 곤란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나치는 미국 문화의 선봉인 재즈를 금지한다. 재즈나 스윙, 찰스턴 등의 댄스 까지도 금지시킨다. 당시 나이트클럽에서 가장 인기 있는 미국 문화 일체를 금지시킨 것이다. 프랑스에서 연주를 할 수 없게 된 스테판 그라펠리는 영국으로 건너가 연주를 이어간다. 하지만 장고 라인하르트는 프랑스에 남는 선택을 하게 되는데, 집시였던 그로서는 매우 위험한 선택을 하게 된 것이다. 나치는 집시와 유태인을 수용소로 보냈으니 그가 어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영국으로 도피한 스테판 그라펠리까지 정신적으로 힘든 처지에 놓이게 된다.


다행히도 장고는 나치에게 붙잡히지 않고 잘 숨어 지낼 수 있었다. 험난한 나치 점령기간이 지나고 장고는 미국으로 건너가서 인정을 받게 된다. 미국의 재즈 애호가들은 장고가 무사히 전쟁기간을 넘길 수 있었음에 안도했고, 그를 몰랐던 사람들은 새로운 프렌치 집시 스타일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된다.

Django_Reinhardt_and_Duke_Ellington_(Gottlieb).jpg

미국의 사진가 Wiliam P. Gottleib이 찍은 장고 라인하르트와 듀크 엘링턴 (1946)


집시 재즈 스타일은 오늘날 프랑스의 대중음악에 뿌리를 깊게 내리고 있다. 장고 라인하르트의 기타 스타일뿐 아니라, 그가 남긴 곡들이 스탠더드 넘버가 되어 오늘에도 즐겨 연주하는 곡이 되었다. 마들렌 페이루(Madeleine Peyroux)의 보컬 스타일에서도 집시 재즈의 분위기를 쉽게 찾아낼 수 있다.


장고가 남긴 곡들 중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곡은 Minor Swing과 Nuages(뉘아쥐, 구름)다.

Minor Swing 은 가장 집시 재즈 스타일이 농축된 듯한 곡이어서 들을 때마다 묘한 기분에 빠지게 만드는 곡이다. Nuages는 정말 사랑스럽고 느긋한 곡인데 혹시 장고에 대해 관심이 들기 시작한 분들을 위해서 두 곡의 유튜브 링크를 소개하려고 한다.


이 글의 시작부에서 장고 라인하르트의 출생 연도와 사망연도를 확인 한 분이라면 그가 젊은 시절 짧은 기간의 활동만 했다는 슬픈 사실을 눈치채셨을 거다. 이제 미국에서 인정을 받으며 레코드를 취입하던 장고는 1953년 43세의 나이에 사망한다. 장고를 잃은 스테판 그라펠리는 이후 많은 기타리스트들과 협연을 하는데, 클래식 기타의 줄리언 브림(Julian Bream), 디즈 디즐리(Diz Disley), 마틴 테일러(Martin Taylor) 등의 기타리스트들이 있다.


다음 영상은 장고의 곡 Minor Swing을 스테판 그라펠리, 디즈 디즐리(기타), 마틴 테일러(리듬 기타), Jack Sewing(베이스)가 연주를 하는 1982년 공연 실황이다. 이 시절에는 스테판 그라펠리는 일흔넷의 노인의 모습이다. 할아버지 스테판 그라펠리는 1997년까지 왕성한 음악 활동을 이어나간다.

1982년 공연에서 장고의 역할을 디즈 디즐리가 맡고 있으며 스트라이프 티셔츠를 입고 리듬 기타를 연주하는 젊은 기타리스트가 마틴 테일러다. 마틴 테일러는 스테판 그라펠리로 인해서 재즈신에 들어선 스코틀랜드 출신의 젊은 기타 연주자로 장고에 대해 진심이었다. 후에 마틴 테일러가 녹음한 장고에 대한 헌정 앨범 [스피릿 오브 장고 Spirit of Django]는 장고 라인하르트의 곡을 다시 해석한 작업 중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https://youtu.be/qe29wZwIqkw?si=eyrSORmyzbIxlU6I




Nuages(구름)은 Martin Taylor의 Spirit of Django 앨범으로 들어보실 것을 추천드린다.

스포티파이나 유튜브뮤직을 통해 들으실 수 없다면, 음질이 조금 떨어지겠지만 유튜브에서도 찾아서 들을 수 있다. (물론 CD를 구입해서 듣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이 곡을 들을 때는 되도록 볼륨을 크게 해서 들으세요.)

이 음반 레이블은 턴테이블 자작사로 유명한 LINN이다. LINN 레이블은 스코틀랜드 출신의 음악인만 발매를 해 준다.

https://youtu.be/0_IbybzQ-8w?si=YuFNHSWqK6Y_AKwy


이 글은 왠지 마무리가 어렵다. 그냥 장고와 스테판 그라펠리의 연주만 계속 듣고 싶을 뿐이다.

오늘 내가 머무는 공간에 장고 라인하르트, 스테판 그라펠리, 다시 마틴 테일러의 연주가 이어졌으면 좋겠다.


프랑스 샤토 드 퐁텐블로(Château de Fontainebleau)에서는 매 해 6월 말에서 7월 초에 Festival Django Reinhart라는 재즈 페스티벌이 열린다. 느긋하게 그곳에서 Minor Swing에 빠져보는 것도

좋겠군 하는 생각이 든다.


Django Reinhart 03.jpg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