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학도의 비일상 001 : 스즈메의 문단속
슬램덩크 퍼스트덩크를 보러 같이 갔던 친구와 스즈메의 문단속을 봤습니다.
너무 인상 깊게 본 슬램덩크였기에, 몇몇 장면에서 웃음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배경이나 등장인물, 전개, 어째 퍼스트덩크에 등장했던 장면들이 떠올랐기 때문이죠. 뭐, 이내 사그라들긴 했지만, 이런 점 때문에 영화를 보고 나서 친구와 재미있게 이야기 나눌 수 있었던 점은 좋았습니다. 몰입은 조금 되지 않았지만요. 친구에게는 제 머리에 '슬램마귀'가 씌워졌다고 표현했어요.
스즈메의 문단속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역시나 '일본스러운' 작품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점을 높게 평가하고 싶습니다. 이전에 봤던 다른 작품들에서도 이런 요소들이 느껴지나, 이 작품은 '지진'을 다루고 있으며, 배경은 방사능 오염으로 사람이 찾지 않는 폐허 등을 주인공이 찾아가는 듯 연출되었어요. 과거에 여러 사람들에게 소중한 기억으로 남았을 공간들인데, 이제는 발을 디딜 수 없게 되어버렸죠. 원인이 방사능 오염이든, 무엇이든 자유로이 갈 수 있고, 즐거움을 포함한 여러 감정을 느끼게 해 준 고마운 공간들이 우리 곁에서 사라지는 것은 참 아쉬운 일입니다.
또한, 지진의 발생을 '몬스터'와 같이 보이는 요소(미미즈)로 표현했는데, 실제로 일본에 일어난 여러 큰 지진들이 현재 어떤 영웅이라든지, 또 다른 요소로 인해 발생하고 있지 않는 상황이라면, 이들에게 감사하다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사실 모두가 그런 영웅이 되어야겠죠. 지진은 아니지만 기후위기 등의 문제에 대해 극복하자는 우리들의 마음가짐의 존재는 나아가 예방과 극복을 가능하게 할 것입니다. 영화에서는 주인공 두 사람이지만, 그 두 사람에 이입이 되는 건 영화를 감상하는 우리 모두이니까,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토테미즘? 애니미즘? 이라 하나요, 일본사람들이 사물에도 어떤 영혼이 깃들어 있다 하여, 쉽게 버리지 못하거나 하는 정신이 요즘 일본의 젊은 층 내에서도 사라지고 있는 것 같은데, 이런 것들이 부각되는 것이 좋았습니다. 다리 셋의 의자와 오래된 문, 고향의 집 터 등 여러 요소가 나왔는데, 다리 셋인 유아용 의자를 주인공이 소중히 들고 다니고, 입을 맞추기까지 하는 장면은 우리가 쉽게 쓰고 버리는 '과거에는 우리들에게 소중했던' 물품들에 했던 우리의 지난 행동들을 반성을 하게 합니다. 현재 쓰고 있는 모든 물품을 소중히 다루는 것은 환경을 보호하는 일이 될 수도 있고요. 인간이라 불리는 우리로 하여금 소멸해 가는 사랑이란 감정을 다시 일으킬 거예요.
제가 잘 알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원래 '오타쿠'라는 말이 어떤 대상을 극히 사랑하는 사람을 칭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어요. 특정 전자기기를 좋아하거나, 옷을 좋아하거나, 가구를 좋아한다면, 그것을 더 적극적으로 좋아하여, 자신도 모르게 전문가가 되는 사람들을 말하는 거죠. 일종의 ‘장인’입니다. 한국에는 일본 애니메이션 또는 캐릭터를 극히 좋아하는 사람이라 알려져 있는 듯 하지만, 누구나 좋아하는 게 있습니다. 만약 그게 사물이라면, 다리 셋의 의자에 입 맞추는 스즈메를 이상하게 볼 수는 없을 겁니다.
저는 좋아하는 건축물을 답사할 때, 공간을 다닐 때 그 건물의 콘크리트 냄새를 맡거나, 부속물이 되는 자갈 등을 줍기도 해요. 너무 마음에 들어 그것의 일부라도 소유하고 싶은 마음이 일기 때문이에요. 요즘에 그런 마음이 살짝 시들어가는 것 같기도 하지만, 이렇게 건축이라는 특정 대상을 사랑하는 제가 좋습니다. 건축 오타쿠라 불리면 참 행복할 것 같아요. 한국어로는 이 말이 '미친놈'과 같겠네요. '건축에 미친놈'.
영상과 음향미도 좋았어요. 특히 스즈메가 의자에 입을 맞추자, 의자 속에 굳었던 남자 주인공 ‘소타’ 앞의 존재하던 문이 열리고,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오며, 스즈메가 손을 내밀며 등장할 때. 마치 기다리던 사람이 문을 열고 등장할 때의 그 반가움이 아주 증폭되어 표현되었어요. 영화 안에서 '문'이란 경계를 열고/닫는 요소이자, '반가움'이란 감정을 담고 있는 건축요소였어요. 학교에서 배우는 설계수업에서는 내외부 공간을 연결하는, 외부인을 차단하는, 뭐 그런 정도의 요소라 생각하게 하지만, 두 사람이 문 안팎에 서 있는 순간 의미가 달라지는 거예요. 앞으로 설계를 할 때 이런 '사람'이라는 요인으로 인해 발생되는 새로운 사물의 이미지를 꼭 기억해 반영하고 싶어요. 단지 사람의 실수로 꼬꾸라져 버려지게 되는 신형 차와 소생되는 풀밭 더미 속 헌 자전거가 대조되는 장면도 압권이었습니다. 사람은 같은 사물을 다르게 인식하게 합니다.
일본의 풍경은 참 재미있는 게, 자연과 전통양식의 가옥이 자아내는 마을의 멋, 그리고 특정위치에 섰을 때, 또는 걸을 때 해와 달, 구름 등의 자연의 주체와 마주하게 되며 느끼는 감동이 있다는 것인데, 이런 감동이 참 잘 표현되어 전달되는 영화였습니다. 시골이지만, 도시이지만, 꼭 그렇지 많은 않은, 도시의 소음 보다, 사람들의 감정이 잘 들리게 연출되어 장소 보다 그 장소를 사는 사람들을 더 주목할 수 있었고, 제 마음 깊이 자리한 여러 가지들을 진하게 울렸습니다.
애니메이션 영화를 옛날 사고방식으로 움직이는 그림이라고만 말하기에는, 현실에서 드러나는 것보다 더욱 느껴지는 게 많습니다. 이와 같은 좋은 점들이 아주 잘 표현된 영화라, 보는 내내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