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림 안으로 들어간 것들

002 : 농구하며 소속되는 영혼들 (강변 보이드의 존재가치)

by 건축학도의 비일상


보름달이 떴다. 형과 나는 강변으로 향했다.

강변에는 사내만 가득했다.

약속이라도 한 듯 어두운 톤의 유니폼을 입고

땀이 섞인 채 다음 게임을 기다리며

내려놓았던 짐들을 다시한번 확인하는 모습들.


바닥 우레탄 색은 아이러니 하게도

농구공 색과 같았다. 이유가 궁금했다.

어딘가로부터 농구를 하겠다는 생각으로 모인

사내들은 플레이를 통해 어우러졌다.

잘하든 못하든 매너있게 하려는 모습들.

비교적 어린 사내들은 자신을 증명하고자 하는 듯

패스 보단 자신감 있게 많은 슛을 시도했다.


믿는 사람에게는 패스가 주어졌다.

자신감 있는 사람에겐 견제가 따라붙었다.

체력 없어 보이는 자에겐

비교적 자유로운 공간이 창출되었다.

타인이 경계를 놓는 탓이다.

그 사이를 꿰뚫고

나의 슛은 여러번 림 안으로 들었다.

지쳐보이는 내 모습이 기회를 만드는 듯 했다.


완벽해 보이는 자들에겐 화살이 날아든다.

기대하지 않는 자들에겐 놀라움이 표출된다.

어쩌면 완벽함이란 미흡한 많은 이들로부터

질투와 미움을 사는 일에 가깝다.

일의 완수는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과

어쩌면 구분되어야 하는 별개의 개념이다.


지난 한국 건축의 스키마는

불우하기 때문에 미움받지 않는다.

타버릴 법한 지푸라기 몇 단 쌓아 지붕을 조성해도

있는 자들은 그것을 가져가려 하지 않는다.

현관 문앞 항아리에 담겨 엉성하게 놓인 다육이들

그것을 지나는 이는 그것을 탐내하지 않는다.


나무 기둥 아래 이끼가 낀 듯한 모습의 석단

그것을 탐내하는 이는 없다.

도둑은 오히려 완벽하게 모양을 깎은

치미나 잡상을 들고 갈 것이다.

손상이 난 것들은 이미 자연으로서

흠없는 것들의 걱정거리로부터 자유롭다.


자연스러움이란 그런 것.

마치, 예측할 수 없는 하늘을 다니는 구름 모양처럼

통제할 수 없는 것 속에 머무르는 것.

그것을 아니된 것이 아닌 풍유로 음미하는 것.

한국건축을 나는 그렇게 정의하고 싶다.


농구공을 다루듯 움직여 조형하고

흐름을 따라 사고하는 것.

한국건축으로 드는 행위는

결과 자체가 아닌 결과로 이끄는 원동력.

시간이 지나야 없어 보였던 결과가

존재하고 있음을 어느순간 느끼는 것.


미완결로 맺었던 지난 프로젝트들을

다른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다.

그것들은 여전히 스핀하고 있고, 패스를 기다린다.

완벽하지 않아도 세상으로 전달이 되어

다음 수순을 밟는다.


능숙한 이도 때로 그것을 실패로 몰고가며,

어리숙한 이도 때로 그것을 성공으로 이끈다.

림 안에 들어갈 때 쾌감이

쌓이고 짜여져 귀가시간의 개운함을 만든다.

스포츠의 목적은 승리가 아닌

승리를 추구하며 얻어내는 과정 속 여러 요소다.


나의 몸을 타고 찬 물로 씻겨 내려가는

어딘가로부터 모인 사내들의 땀과 표정들.

그들도 나의 걱정과 고민들을 그들의 몸으로 받아

지구 중심으로 내리고 있다. 서로 감사한다.


중력에 몸을 맡겨 누워서 얻는 하루에 대한 감사.

살아있음에 대한 눈물겨움. 삶을 향한 사랑.

홀로있음을 느낄 수 없었던 아름다운 하루.

소속될 수 있어 행복했던 오늘 하루.

그리고 보이드. 내일의 장면을 위해 비워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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