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방정계
세상의 모든 것들을 척지고 싶지는 않았지만, 삶은 고통스러움을 배운 건 일찍부터였다. 모진 핍박과 시기 어린 분노들은 세상에게 나 스스로를 인정받아야 하는 존재로써 빚어내주었다. 부모와 형제로부터 애정과 결핍을, 연인으로부터 사랑과 증오를 배웠으며, 친구로부터 우정과 복수를 알게 되었으니.
- 사람은 객관적일 수 없어.
그 말은 내게 객관적인 것. 진리를 부정하는 사람의 말로 들렸다.
' 주관과 객관이 없다면, 어떻게 이 사회가 생장했을 수 있겠어? 이상한 사람이야. '
곱씹을수록 그의 말을 대변하듯 탐탁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 내 의지로 상식에 벗어난 행동을 했어야만 할 때, 나 또한 그의 현안을 저주하고 말았다. 지금은 그저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천만 직장인 중 하나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이번 역은 00, 00 역입니다. 내리는 문 사이가......--
왜 시끄럽게만 들리던 개찰구 안내음이 조용하게 들릴까.
타인의 시선 끝에서 내 타오르는 부끄러움이 더 이상 낯부끄럽지 않을까.
기나긴 하루나 이번 주말에서의 나의 모습이, 나 자체이듯이 내 인생도 그렇게 저물어가지 않을까 했다. 한탄스러움과 공허함, 따뜻한 애정과 그리움이 공존하듯 일렁거렸다. 슬픔에 눈물이 나오는 것도, 어렴풋하게 잡힐 듯했던 관계의 끈이 선명하게 생각나도, 어쩌면 첫째 형과 막내보다 사랑받을 수 없음을 유산 분배에서 느낄지 모를지라도, 나는 그저 넘어지지 않게 걸어야만 했다. 곳곳의 가로등 불빛은 이따금 사람의 존재를 배웅하듯 어두커니 서서 기다렸다. 취하듯 발걸음을 긋는 게 어떤 것인가 싶어 흉내 내보는 발걸음은 뒤꿈치와 무릎에 조금씩 충격을 가하며 이건 아님을 깨달았다. 그리운 고향 길목의 추억엔 젊은 부모의 수발에 맺힌 노고로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꿈같았던 그들의 미소는 내 어릴 적부터 끔찍하고 선명하게 삶의 고통의 인지를 알려주었다. 그들에게 어렴풋하게 느껴지는 고된 하루의 끝이, 마치 이번 주말로부터 내 인생을 압축하듯 쾌쾌한 냄새와 무거운 눈꺼풀과 몸짓이 고작 어린아이에게는 너무나도 무서운 사람으로 비추어졌다. 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으며, 그들의 땀과 눈물이 내 마음의 거름으로 되어 소금과 같은 사람이 되었다. 사람의 욕망과 배신을 이해하지 못했으며, 그들의 가여움에 분노하고 그들의 위선에 치욕을 떨며 사람이 아닌 그저 보다 완벽한 소금의 결정만을 닮아가려 했다. 그리고 그 노력들은 가변적인 고통과 두려움의 미래로 나를 이끌었다. 과거는 너무나 불안하고 미성숙했으며, 미래는 너무나 아득했으니 내가 할 수 있는 건 현재의 감각과 지각이 있는 나를 피학적으로 살아가게 만들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