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지중해(Mediterraneo), 1991>
IMDb rating: 7.4/10
감독: Gabriele Salvatores
출연: Diego Abatantuono, Claudio Bigagli, Giuseppe Cederna
이 영화는 1992년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한 걸작입니다.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 당시 전형적인 할리우드식 영화나 홍콩 느와르에 익숙해 있던 제게, 이 엉성하고 투박해 보이는 이탈리아 영화는 그 언어만큼이나 낯선 감성으로 다가왔습니다. 특별히 슬픈 이야기도 아닌데 — 사실 장르로 따지면 코미디에 가깝습니다 — 영화를 보는 내내 설명하기 힘든 슬픔과 묘한 위로가 동시에 밀려왔습니다. 그 혼란의 이유는, 엔딩 크레딧이 오르기 직전 화면을 가득 채운 한 문장을 보는 순간 비로소 이해가 됐습니다.
Dedicato a tutti quelli che stanno scappando
(지금 어딘가로 도피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바침)
그렇습니다. 이 영화는 지금 도피하고 있거나, 도피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영화였던 것입니다. 개봉 연도를 보니 별것도 아닌 것으로 세상 번뇌를 다 짊어진 듯 폼 잡고 다니던 시절이었으니, 저는 정확히 그 타깃층이었던 셈이지요. 학업 때문이었는지, 일 때문이었는지, 인간관계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단순히 전날 마신 술 때문이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지만 — 번아웃 상태였다는 사실만은 분명합니다. 맑은 하늘, 잔잔한 지중해, 해변에서 축구를 즐기는 사람들, 석양 아래 춤추는 남녀의 실루엣. 그 평화로운 장면들이 역설적으로 제 지친 마음을 더 아프게 건드렸던 것 같습니다.
영화 후반, 귀국 명령을 받은 군인들 중 한 명은 섬의 여인과 사랑에 빠져 이미 결혼까지 한 상태였고, 끝내 섬을 떠나기를 거부한 채 그곳에서 여생을 보냅니다. 이 장면은 자연스럽게 서머셋 몸의 소설 달과 6펜스 속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왕립 의과대학 교수직을 눈앞에 둔 한 의사가 잠시 휴가를 얻어 남태평양의 작은 섬으로 휴가를 떠납니다. 섬의 고요함과 해방감에 충만함을 느낀 그는, 막상 귀국선이 항구를 떠나는 순간 갑자기 바다로 뛰어내립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 섬에서의 삶을 선택합니다. 소설 전체에서 단 몇 줄에 불과한 예화지만, 제게는 가장 강렬한 잔상으로 남아 있습니다.
아마도 그 안에 우리가 한 번쯤 품어봤을 그 감정 — 타인의 리듬을 따라 사는 삶에서 벗어나, 진짜 나로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 — 이 가장 단순하게 담겨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두 이야기는 배경도 시대도 다르지만, 결국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지금의 삶이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인가?"
'도피'라는 말은 흔히 '비겁' 혹은 '나약함'의 동의어로 쓰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만 보지 않습니다. 힘든 시기를 견디는 동안 "내가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 갈 수 있는 다른 삶이 있다"는 감각은, 어떤 조언이나 위로보다 훨씬 큰 힘이 되어줄 수 있습니다. 그 가능성을 마음 한켠에 품고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상하게 더 단단해지고 오히려 버틸 힘을 갖게 됩니다.
아마 그래서였겠지요.
지쳐 있던 제가 그 영화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위로를 받은 것도.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실제로 어디론가 떠나는 극적인 선택 대신, 고작해야 다음 날 하루 학교를 결석했을까 말까 하는 정도로 끝난 것도.
그리고 삼십 년이 더 지난 지금도, 그 문장을 떠올리기만 하면 여전히 울컥하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