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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스파 Apr 05. 2024

개천에서 용 나는 중

타지방에서 학원수업을 받으러 오는 남매가 있었다. 

매번 부모님 차량을 이용해 등하원을 했는데, 거리가 상당한지라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내심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학년이 완전히 다른 남매여서 서로의 수업 요일과 시간도 달랐던지라 거의 매일같이 부모님이 학원을 와야 하는 상황이었다. 


너무 멀어 힘들지 않으시겠냐고 댁 근처 학원을 한 번 알아보시길 권유드렸었지만, 일주일에 한두 번은 하시는 일로 어차피 나와야 하는 상황이어서 늘 괜찮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부잣집도 아니고 그렇다고 학원이 유명한 곳도 아니어서 장거리 학원 수업을 받아야 할 이유가 전혀 없었지만 그래도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늘 학원을 믿어주심에 항상 감사한 마음이었는데, 심지어는 한 번도 아이들이 잘하고 있는지 묻거나 어떻게 해주셨으면 좋겠다는 요청이 없었다. 

그저 뵐 때마다 감사합니다, 너무 수고가 많으십니다. 우리 아이들 때문에 힘드시지 않느냐는 걱정과 응원의 말씀만 가득한 분들이었고, 가끔 농사지은 작물들을 투박하게 상자에 담아 쑥스럽게 건네주시는 소박한 농사꾼 부부셨다.     


그런 부모님 밑에서 커서 그런지 남매는 둘 다 참 착하고 성실하고 어떻게 이렇게 자랐을까 싶을 정도로 순한 아이들이었으며, 부모님이 농사를 지으시다 보니 도와드리는 시간이 많아서 늘 옷에 흙이 묻어 있거나, 손톱 밑에 까만 자국을 남겨 오는 경우가 허다했다.

      

부모님이 저녁에만 시간이 되시는지라 당시 중학생이었던 큰 아이는 저녁 중등수업에 문제없이 올 수 있었지만, 작은 아이는 초등학생이어서 낮에 진행되는 초등 수업을 들을 수 없어 그 친구만 따로 요일을 정해 내가 과외하듯이 맨투맨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학원에 다닌 지 2년쯤 지난 어느 날, 어머님이 늦게 도착하신다는 연락을 받고 잠깐의 시간을 이용해 동생에게 나중에 뭐가 되고 싶은지를 물었다.     


“공무원이요.”

“공무원? 그럼..... 어떤 일 하는 공무원이 되고 싶어?”

“......... 그냥......... 공무원이요.”     


아마 어린 이 아이도 공무원이 최고라는 어르신들의 말씀을 많이 들었던 듯하고, 또 시골에서 생활하고 있어서 더욱더 그런 환경에 노출됐을 수 있겠다 싶었다.    

 

“공무원으로 통칭되는 ‘직업’을 나중에 되고 싶은 것으로 삼기보단, 어떤 걸 하고 싶은지를 생각해서 그것과 관련된 공무원의 분야를 구체적으로 연결시켜 보는 건 어때?”    

 

그때부터 아이와 미래를 함께 얘기하는 시간을 많이 갖기 시작했다. 아이가 말하는 그냥 공무원이 정말로 꿈이나 목표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그로부터 다시 2년 후, 오빠는 고등학생, 동생은 중학생이 되었고 그동안의 대화들이 조금씩 아이에게 변화를 주었는지 꿈이 바뀌기 시작해 나중에는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는 확고한 생각을 내게 말했다. 

생각으로 미래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기에 지금부터 꿈을 이루기 위해 실제 행동들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아이는 방송반에 들어가 그 나이의 아이들이 보고 만질 수 있는 장비들을 경험하고 실제 영상도 찍어보며 꿈을 위한 기본을 채워갔고, 매번 방학에는 뜻이 맞는 타 지역 아이들과 연합해 실제로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주로 시나리오를 담당했었는데 학원 수업이 끝나고 어머니가 늦어지는 날에는 시나리오 내용을 공유하면서 어떤 부분을 수정하면 좋을지, 어떤 반전이나 내용을 추가하면 좋을지 서로 얘기하며 꾸며나가곤 했었다. 

    

남매는 같은 중학교를 나왔는데, 모두 전교 1등인 학생들이었다. 

오빠는 지역 자사고에 들어가 졸업 후 현재 미국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있고 학교 장학금에 더해 여러 가지 알바를 뛰며 부족한 학비와 생활비를 스스로 벌어 생활하고 있으며, 영화감독을 꿈꾸던 동생도 오빠와 같은 고등학교에 입학해 내년 졸업 후에는 미국이나 호주로 영화 관련 학과 유학을 준비 중이다.

     

미래의 어느 날, 공무원을 바라던 시골 소녀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영화감독이 되어 오스카 시상식 트로피를 힘차게 들어 올리는 장면을 가끔 상상해 본다. 그리고 그 옆에는 공학자인 오빠와 시골 노부부가 흐뭇한 미소로 눈물을 흘리고 있으리라...... 상상이 현실이 되는 그날이 꼭 오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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