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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스파 Apr 17. 2024

우리에겐 육군/해군/공군,
그리고 청군과 백군이 있었다

그 시절 운동회의 추억

얼마나 길게 연습을 했었는지 기억은 없지만 수업 시간과 쉬는 시간을 쪼개서, 또 어떤 날에는 수업 시간을 빼가면서 하루도 빠짐없이 흙먼지 날리는 운동장에서 무한 반복 군무 연습은 계속되었다. 

엄청난 고난도 동작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조금 틀려도 크게 표시 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국군의 날 분열을 연습하듯 그렇게 전교생은 땡볕에서 계절 하나를 보내야만 했다.   

  

예전에는 학교 운동회가 지금처럼 부모들이 운동장 뒤편에서 조용히 구경하다가 스리슬쩍 사라지는 그런 구경정도가 아니라 온 가족의 소풍이고 축제였다.     


치킨, 피자와 같은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먹거리는 구경할 수 없었던 시절이었던지라 주로 김밥이나 불고기, 여러 가지 반찬들을 한 보따리 싸서는, 치열한 눈치싸움 끝에 먼지 덜 날리고 햇빛을 피할 수 있는 운동장 가장자리에 삼삼오오 골라 앉았고, 때론 가족들도 선수가 되어 같이 뛰고 웃던 시간이었다.   

   

항상 국민체조와 단체 군무로 운동회가 시작되곤 했었는데, 알록달록 부채나 소고, 곤봉과 같은 기구를 이용해 그동안 몇 날 며칠 연습했던 기량을 몇 분 만에 해치우고선 약간의 허무함을 느끼며 청군과 백군의 기분 좋은 전쟁은 시작되었다.     


나는 달리기를 꽤나 잘해서 100미터 달리기에서는 늘 1등을 놓치지 않던 아이였는데, 나중에 고학년에 올라가서는 1등을 해도 당연한 결과처럼 여기며, 평소 먹기 힘들었던 위대하고 찬란한 점심 메뉴에 더 관심 갖는 가족들의 모습에 조금 서운했던 기억도 있다.   

  

운동회의 꽃은, 지금까지의 경기를 왜 했나 싶을 정도로 엄청난 점수 폭탄을 안겨 주었던 마지막 줄다리기나 오자미(오재미)가 아니겠냐 말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내 기억에 운동회의 꽃은 이어달리기였다.  

    

지금은 뭐 저렇게 많이 뛰나 싶을 만큼 한 반의 절반 이상이 무한정 돌고 돌지만, 당시에는 청군과 백군 각 4명의 대표들이 나와서 한 명이 운동장 한 바퀴씩 뛰는 릴레이로 결판을 지었었다.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라는 운동회의 정석 응원이 가장 빛을 발하는 시간이었고, 역전과 역전을 거듭하는 레이스에 운동장은 초흥분 상태에 빠졌었으며, 누군가 넘어지거나 바통을 놓치는 대참사가 발생하는 경우에는 응원인지 욕인지 모를 말들이 더 큰 목소리로 운동장을 가득 메웠었다. 


주자들이 방해받지 않도록 다른 학생이나 가족들이 경기장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정한 나름의 라인들이 경기 막판에는 우르르 무너지며, 결승점에서는 주자와 학생, 가족들이 서로 뒤엉켜 그 많은 흙먼지를 누가 빨리 먹는지 내기를 하듯 서로들 왁자지껄 거친 호흡에 푸쳐핸섭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혹시라도 뒤쳐진 승부를 역전으로 만들어 놓는 아이가 나타나면, 그 친구는 그날의 영웅이 되어 최소 일주일은 아이들의 무용담 속에 등장하는 단골 주인공이 되곤 했었다.     


희미한 기억 속의 옛 운동회에는,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를 제외하고 아버지와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늘 함께 했었지만 지금은 안타깝게도 모두 빈자리가 되었고, 특히 이십여 년 전 아버지께서 편찮으심에도 손자의 유치원 운동회에 꼭 참석하고 싶다 말씀하시며 힘겹게 박수를 치시곤 며칠 후에 돌아가시는 바람에 운동회가 항상 좋은 기억으로만 자리하고 있지는 않다.     


멋진 모자와 골프웨어를 입고 선글라스를 낀 채 뒤에서 팔짱 끼고 구경하는 운동회보다는, 전혀 상황과 맞지 않는 정장양복을 입은 아버지들과 뽀글 머리에 장롱 속 숨겨 두었던 화사한 옷이나 한복을 입고, 가져온 음식들 먼지가 앉지 않도록 휘휘 팔 저으시며 자식들을 미소로 바라봐 주시던 어머니들이 있던 그 시절 운동회가 참 그립다.     


겨울이 지나고 날이 따뜻해지면서 또다시 찾아 올 운동회의 시즌에, 감춰두었던 그리운 추억들이 다시 떠오르는 요즘이다. 

그리고 아들을 닮아 달리기에서 1등을 한 손자에게 남아 있던 힘을 모으고 모아 기쁨의 박수와 미소를 보내주시던 아버지도 더욱더 보고 싶은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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