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 시간의 법칙.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그 일에 집중하는 1만 시간의 훈련이 필요하다 말하는 법칙이다.
나는 이 말에 무한한 동의를 하며 한 가지를 더얹어서 어떠한 분야나 일의 결과또는인간관계에서 조차 1만 시간의 법칙이 통한다고 생각한다.
이 믿음의 근간은 오로지 나의 개인적인 경험에 의한 것이기에 나의 믿음을 누구에게 강요할 수는 없겠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1만 시간이라 함은, 실상은 완전한 제로베이스에서 비전문가가 전문가가 되는 시간이거나 정말 재능이 없는 그 분야랑 전혀 안 맞는 사람에서 그 일이 잘 어울리는 사람으로 바뀌는 시간.
일이나 삶에 성과를 내는 시간이라고 한다면 1만 시간은 초보자로서 재미를 붙이고 흥미를 붙이며 무재능자로서 그 일을 마음에 붙이느라 걸리는 또는 헤매는 시간을 실제로 계산한다면 아마도 매일 3시간씩 한다고 해도 내 실제의 인생 시간은 10년이라는 기간은 족히 걸릴 것이다.
혹시 생각나는가? 지금이야 레전드 프로그램으로 알려진 무한도전의 초창기 모습을?
무한도전이 아니라 무모한 도전일 때, 멤버들이 지금의 스타가 아니라 일반적인 남성의 평균이하의 모습일 때 그들의 하던 날것의 방송처럼..
나의 20살, 군대를 다녀오기 전 20대는 그 날것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었다.
무모한 도전을 하는 멤버들처럼 대한민국 평균이하의 성인 남자.
꿈도 없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몰랐지만 그저 날것의 그 열정으로 열심히만 사는 삶.
그 당시에는 뭐든 열심히만 살면 인생은 아무 문제 없이 잘 풀릴 거라는 근거 없는 마음으로살았다.
아마도 어린 시절 보던 착하게 살면 잘살고 못되게 살면 못 산다는 만화나 교훈이 큰 몫을 하지 않았을까?
그 생각 없이 살던 삶은 조금씩 현실에 부딪치며 힘들어진다. 꺠닫는다고 해야 하나 삶이 또 인생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걸...
다시 나의 20대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하고 싶은 일도 되고 싶은 것도 없이 그렇다고 소소한 재미가 있던 삶도 아니었다.
그저 흑백필름 영화처럼 그때의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조금 어둡고 암울했던 것 같다.
힘들 때도 있었다.그때의 기억을 애써 지우려 해야만 하는 큰 사건은 없다.
적어도 내 기억에는 없다. 집안 가세가 기울어졌고 어려웠다. 어느 가정에나 있을법한 인생의 어두운 때가 우리에게도 있었다.
하지만, 내 기억에는 그냥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엄마가 태몽이야기를 하신 게 기억이 난다. 엄마가 송아지들에게 둘려쌓여서 어디를 가시는 중이셨단다.
그중에 한 놈이 이쁜 짓을 많이 하고 눈이 참 예뻤단다.
아마도 그게 태몽이셨던 거 같다고 자주 말씀해 주셨다.
그러면서 엄마는 내게 말씀하셨다. “넌 참을성이 참 많을 거야”
그때 당시가 부모님이 한참 어려울 때였다. 태몽인지, 환경인지 모르지만 엄마의 말처럼 나는 좀 잘 참는 사람이 되었다.
20대에는 대학로에서 연극배우로 10년이라는 시간을 채웠다. “채웠다”라는 단어가 적절한 것 같은 시간을 보냈다.
어린 시절에 형성된 잘 참는 성격은 연극을 하면서 방해가 되었다.
화를 낼 수도 슬퍼할 수도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는 방법을 잃어버린 거 같았다.
착한 사람 컴플랙스에 빠진 것처럼 진짜 나는 없고 “착한 나”만 있었기에다른 사람을 연기하는 게 참 어려웠고 재능이 없었고 그러다 보니 무시도 많이 당했다.
이제야 시간이 지나서 말할 수 있지만, 1만 시간, 10년이라는 기간을 존버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은내가 그만한 재능이 없어서 또 처음부터 두각을 나타내지 않아서였다.
계산이 빠르고 재능이 있었다면 그 “채워야”하는 어두운 시간들을 존버할 수있었을까.
그저 하루하루를 숨이 턱에 차도록 버텨왔다.
그에 비해 재능이 있고 계산이 빠른 친구들은 잘하는 만큼 계산이 빠른 만큼굳이 존버하지 않아도 되기에 내가 볼 때는 별거 아닌 일에도 쉽게 다른 곳으로간다.
잘하는 것, 성과를 내는 것, 관계가 좋아지는 것, 인생에 있어서도 결과물이 나기까지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지나야 하고나랑 그 분야가 인생의 희로애락을 같이 보내야 한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내게 전혀 없어 보이던 나의 꽁꽁 숨겨둔 나의 재능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하나씩 또 어떨 때는 갑자기 활짝 피기도 한다. 뭔가를 이루겠다는 목표가 있던 것도 아니었다. 나의 생활이 나를 이끌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었다. 뚜렷한 목표가 없었기에 하던 일을 계속할 수 있었다.
성과를 낼 때까지, 열매를 맺기까지... 진짜 목표가 생기기까지!
재능이 없고 계산이 빠르지 못한 내가 서있는 자리에서조금은 비루하게 그 시간들을 존버했다.
어떨 때 스스로 존버하는 삶이 버거울 때도 있었다. 아마 나처럼 타고난 게 적은 사람들은 그런시간들이 있었을 것 같다.
어떻게 시간이 지나갔는지 모를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암흑 같은 시간들도 인생에는 빠지지 않는 과정인 거 같다.
존버하는 인생이라는 게 원래 이런 것 인지 아직 40대 초반에 어린(?) 나에게는 어려운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