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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창대 Feb 14. 2024

느림

존버

나의 30대의 이야기를 해본다면 내가 말하는  습관항상 내 20대의 연기자 생활을 잠시 거론하는 스스로를 보게 된다.


내 20대가 온전히 연기자로 존버하는 삶을 살았다면 서른 살이 되면서 내 인생은 큰 변화를 겪게 된다.


한 가지 일을 하다 보면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많은 일들을 겪으며 내가 알지 못했던 꽁꽁 숨겨진 재능들이 발견된다고 지난번 글에 말했었다.


그래서 그 일의 천직이 되고 나면 계속해서 그 삶을 사는 것이 어렵지 않고 그 일로 겪게 되는 어려움조차 피부로 느껴지는

체감은 적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럴 때 큰 변화와 용기는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일 것이다.


나의 새로운 도전은 서른 살에 시작됐다.

연기자로 사는 삶이 관성이 생겨 더 이상 큰 어려움이나 고민이 적을 때 아니 익숙해질 때,

적지만 성과가 생기고 조금씩 길이 생길 때,

나의 새 도전은 어떤 한 사건으로 시작된다.


대학로에서 연극이나 뮤지컬을 주로 공연했기에

현재 하고 있는 공연과 새롭게 준비하는 그다음

공연을 하는 휴식기에는 배우들은 시간이 생긴다.

그때는 알바도 하지만,


주로 단편영화 촬영이나 새 공연 오디션을 보기도 하고 개인의 역량 개발을 위한 수업들을 들어야 했다.


연극계도 다른 시장과 마찬가지로 물론 좀 덜 하지만 시장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이다.


스타가 아닌 이상 스스로가 매력적이고 같이 일하고 싶은 인물이 되어야 한다.


스스로가 매력적인 상품이 돼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배우들은 발레, 성악, 팬터마임, 댄스, 화술 등 시간과 재정이 허락하는 한 스스로에 몸값을 높이기 위해 투자한다.


나도 29살 작품을 쉴 당시에,

러시아에서 연극연출을 공부하고 한국에 교수를 하려고 귀국한 선배에게 러시아식 몸 쓰는 법을 훈련을 하다가 다치게 된다.


약간 서커스 같은 방식의 몸 쓰는 훈련이었는데

성인이 돼서야 배우가 되기 위한 몸을 쓰는 법을

늦게 배운 나는 조급한 마음에 내 몸을 오랜 시간

너무 혹사시키다가 고질적인 다리 부상이 커져서

6개월이라는 재활의 시간을 가지게 된다.


혼자 있는 시간들,

정신없이 바쁘다가 한없이 한가해진 시간들,

나는 그때 많은 생각들이 오고 갔다.


10년을 쏟은 내 열정과 에너지...

전부라 생각한 나의 일이...

6개월을 쉬면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되었다.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이 일을 통해 얻고 싶은 게 무엇인가?

누구와 하고 싶은가?


오랜 생각 끝에 보이는 존재가 있었다.

바로 가족이었다.


내가 잘났건 못났건,

전문가건 그렇지 않건

내 옆에 있던 존재,

귀해서 더 몰라본 존재.


연기에 몰두하느라 10년 동안 뒤로 밀려난 존재 “가족”

나는 가족이랑 행복하게 살고 싶구나!


단순한 이 다짐을 서른 살이 돼서야

또 크게 다치고 나서야 깨닫게 된다.


삶이 주렁주렁 달린 여름 포도 같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앙상한 겨울나무가

되어서야 홀로 남겨진 시간에 알게 된다.


나는 뭐든지 참 늦다.

매번 늦다.

뭔가를 정말로 안다는 게.


주로 이게 싫고 아주 가끔은 이걸로

잘 버틴 시간들도 있다.


미움을 받을 때도

오해를 받을 때도

무시를 받을 때도

사랑을 받을 때도...


그래서 나는 그 다짐에 맞게 불특정 한 일상이 평범한 루틴이 되는 연기자의 길을 잠시 뒤로하고

새로운 일, 가족과 평범하고 소소하게 살만한 일을 찾게 된다.


서른 살에 도전은 처음부터 난관이었다.


회사를 들어가기도 공부를 하기도 쉽지 않았다.

고민의 연속이었다.


선택은 아주 의외에 계기로 결론이 났다,

그때 당시에는 호주나 외국에 제빵 기술자들이 기술이민을 많이 갈 수 있는 시기였다.


외국에 대한 호기심 그리고 빵에 대한 모호한 동경으로 뚜렷한 목표 없이 배우게 된다.


그렇게 시작한 제빵 일이 벌써 10년을 훌쩍 지나갔다.


새로운 분야가 매번 그렇듯이 무재능자, 거의

바보와 흡사한 모습부터 시작해서 길고 긴 어두운

터널을 지나 일과 희로애락 또 사계절을 지내며

아주 조금씩 재능들이 발견되었다.


나도 모르고 다른 사람들도 모르던 재능들이 발견되었다.


20대에 받은 연극계에 설움과 무시도 어려웠지만

30대가 되어 새로운 영역인 제빵 업계에서 받은 냉대는 참기가 어려웠다.


나보다 어린 친구들에게 받던 무시나 냉대들

그리고 연극계에서는 이제는 전문가로 받았던 조그만 인정을 경험한 후라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이렇게 글을 쓰겠다는 결심이 없었다면

기억 저편에 접어놓았을 일들이다.


어두운 일들이 길었고

빛을 본 순간은 짧았으니까

제빵 업계에서도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이제 조금씩 여유가 생긴다.


금전적인 여유라면 좋겠지만

아직은 마음의 여유라고 하는 게 사실 맞다.

그래서 잠시 뒤로 접어둔 연극배우의 삶을

병행할 수도 있게 되었다.


연극으로 10년,

제빵으로 10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며

알게 된 나의 삶의 철학은...


주로 이게 싫기도 하지만

아주 가끔은 삶에 정수를 알려준,

나의 ‘느림’인 거 같다.


많은 눈물을 흘린 후에

땅속 깊은 석유를 끓여 올려준 나의 느림.

그래서 오늘도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나와 같이 느린 누군가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자신의 인생을 살아내는 나를 포함한 모든 분들 응원합니다.

지금처럼 계속 당신의 삶에 존버하세요.

많이 느려도 괜찮으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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