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생일》

1인 희곡

등장인물
아버지

(아들은 무대에 등장하지 않는다. 존재는 소리와 동선으로만 남는다.)


장면

늦은 밤.
불이 반만 켜진 작은 집.
낡은 식탁 하나.

아버지가 식탁에 앉아 있다.
시계를 한 번 본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잠시 정적.

현관문 여는 소리.
신발을 벗는 소리.
봉투가 스치는 소리.


아버지는
고개를 들지 않는다.


아버지

(작게)
왔냐.

(대답 없음)

식탁 위에
케이크 상자가 놓이는 소리.
비닐이 바스락거린다.

아버지는
그제야 고개를 든다.

잠시 본다.
아주 잠시.


아버지

(괜히 퉁명스럽게)
이 밤에 뭘 이런 걸.

아버지는 케이크를 피한다.
괜히 옆으로 밀어둔다.

하지만
눈은 자꾸 그쪽으로 간다.

잠시 침묵.


초밥 포장 상자가
식탁 위에 놓인다.

아버지는
숨을 한 번 고른다.


아버지

(조금 낮아진 목소리)
이런 건
미리미리 하지.

(잠시 멈춤)

아니다.
괜찮다.

아버지는 웃으려다 만다.
그러다
결국 웃는다.


아버지는
손을 무릎 위에 올려둔다.
괜히 손을 만지작거린다.


아버지

나는
생일을 챙기는 사람이 아니다.

이 나이에
날짜 하나 더 생겼다고
달라질 것도 없다.

아들도 그렇다.
우린
기념일에 서툰 사이였다.

그래서
오늘도
아무 일 없을 줄 알았다.


아버지는
케이크를 다시 본다.


아버지

(조금 느리게)
그래도…
이렇게 들고 오니까

(잠시 침묵)

사람 마음이
이상해진다.


아버지는
케이크 상자에 손을 얹었다가
다시 뗀다.


아버지

아들은
늘 바쁘다.

불 앞에서
자기 인생을 굽는 놈이다.

나는
그걸 안다.

그래서
챙기지 않아도 된다고
먼저 이해해 왔다.


아버지는
식탁 아래를 본다.
아들의 발이 보이는 것처럼
시선을 둔다.


아버지

(작게)
고맙다는 말은
안 해도 되지?

(대답 없음)

그게
우리 사이니까.


아버지는
조심스럽게
케이크 상자를 다시 끌어당긴다.

초를 만지작거리다
불을 켜지 않는다.


아버지

불은
안 켜도 된다.

이미
충분히 따뜻하니까.


아버지는
아들을 보지 않는다.
대신
허공을 향해 말한다.


아버지

오늘은
케이크가 달아서가 아니라
사람이 남아서
맛있다.


아버지는
웃는다.
이번엔 숨기지 않는다.

그 웃음은
오래간다.


암전

현관 쪽에서
아들이 움직이는 소리.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미소를 유지한 채
식탁에 앉아 있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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