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을 깨고 싶다
며칠 전, 우연히 호주에서 사용하던 인스타그램을 보다가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유학생활 속 그림들과 마주쳤다.
호주에서 그렸던 것들.
그것들을 보는 순간
그때의 공기와 물감 냄새, 외로움과 긴장,
밤늦게까지 작업하던 손끝의 감각까지
한꺼번에 돌아왔다.
그 시절의 나는
말로 표현하지 못한 모든 감정을 그림 속에 밀어 넣었다.
언어의 장벽 앞에서 입을 다물던 답답함,
낯선 환경이 주는 고립감,
멀리 떨어진 가족과 친구를 향한 그리움,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버틸 수 있는 건지 불안해하던 마음, 그리고 외로움.
그림을 그리는 동안만큼은 살 수 있었다.
현실은 힘겨웠지만
캔버스 위에서는 도망치지 않아도 됐다.
그곳은 나를 위로하는 세계였고
표현하는 것만으로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세상을 바라보는 일이 버릇이 되었다.
낙엽 하나의 움직임,
거리의 풍경, 여행에서 느낀 것들,
사람들의 표정과 도시의 온도.
모든 감정은 나만의 방식으로 재해석되어 그림이 되었다.
때로는 아픈 이야기였고,
때로는 사회를 향한 풍자였고,
때로는 색과 질감으로 감정을 표현했다.
사람들이 캔버스에 걸린 내 작품을 바라보며
각자의 방식으로 감정을 읽어내던 장면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내 마음이 누군가에게 닿는 경험.
그게 너무 신기했고
나는 예술이 가진 힘을 믿게 되었다.
한국에 돌아온 뒤
나는 자연스럽게 붓을 내려놓았다.
바쁜 일상 속에서
창작은 어느새 ‘과거의 일’이 되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나쁜 일이 아니었다.
아픔이 잦아들고
일상은 평온해졌고
나는 더 이상 절박하지 않았다.
고통이 사라지자
그것을 재료로 삼아 태어나던 예술도
잠시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도자기는 계속했다.
흙을 만지는 건 여전히 좋았고
나를 숨 쉬게 해주는 행위였다.
하지만 마음 가장 깊은 층에 있던
‘창작의 뜨거움’은
오랜 시간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그런데 요즘,
그 뜨거움이 다시 깨어나는 느낌이다.
그리고 이번엔
평온함을 담아내고 싶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 평온하기 때문이다.
하루하루가 똑같이 흘러가고
안정의 무게가 때때로 답답하다.
마른 사막이 비를 기다리는 것처럼
조용히 굳어버린 내 일상에
창작이라는 자극제가 필요하다.
예술은 언제나 격변 속에서 태어난다고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변화가 필요할 때, 예술은 깨어난다.
균열이 필요할 때, 예술은 스스로 틈을 만들어 낸다.
이제는 아픔이 아니라
지루함을 깨기 위해 만들고 싶다.
다시 뛰는 심장을 느끼기 위해.
살아 있다는 걸 확인하기 위해.
평범한 일상에서 금이 가는 순간,
깨지는 감정들의 파편,
질감이 어긋나는 미묘함.
지금의 나에게는 그것이 필요하다.
그림을 그릴지, 도자기를 빚을지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다시 손끝이 뜨거워졌다는 것.
다시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는 것.
그 사실 하나면 충분하다.
창작은 떠난 적이 없었다.
잠시 쉬고 있었을 뿐.
그리고 나는 지금,
다시 나를 표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