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흙에서 시작된 이야기

흙을 만지며 자란 아들, 글로 마음을 빚는 한작가입니다.

by 빚는 한작가





나는 태어나서 장난감 대신 흙을 만지며 자란 아이였다.

물레 위에 얹힌 흙덩이를 손끝으로 눌러 형태를 만들어가는 그 시간은,

어린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신기한 마법 같았다.


가난했고 장난감은 없었지만,

손에 흙이 묻는 건 싫지 않았다.

오히려 흙은 나에게 최고의 놀이였고,

상상력을 현실로 바꿔주는 유일한 친구였다.


어쩌면 그건,

태어나기도 전에 정해진 나의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흙은 도자기였고,

그 도자기는 우리 가족의 삶 그 자체였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아버지는 이미 도예가셨다.

젊은 시절, 물레 기술을 배우기 위해 허드렛일부터 시작하셨고

남의 작업실 바닥을 쓸며, 어깨너머로 기술을 익히셨다.

그렇게 시작된 길 위에서

지금은 ‘향현’이라는 이름의 도자기 브랜드를 이끄는 장인이 되셨다.


아버지는 평생 물레 위에서 흙을 다루며

예술이 무엇인지, 도자기가 무엇인지를

몸으로 고뇌하고 익히며 살아오셨다.


하지만 그런 아버지 밑에서의 나의 유년시절은 그리 쉽지 않았다.

예술가의 집은 늘 배고프다는 말, 우리 가족에게도 예외는 아니었으니까.




그럼에도 나는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은 듯,

그림 그리기와 흙 만지는 것을 참 좋아했다.

흙은 나를 한 번도 배신하지 않았다.


손끝으로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그 감각,

공룡도, 자동차도, 나무도, 마음도…

무엇이든 상상한 대로 빚어낼 수 있었던

그 흙은 나에게 끝도 없는 놀이터였고, 가장 좋은 친구였다.




하지만 사춘기를 지나면서, 도자기가 미워지기 시작했다.

부모님의 다툼이 잦아지고,

‘돈도 안 되는 일’, ‘가난의 원인’처럼 느껴졌다.


그때의 도자기는 내게 골동품처럼 느껴졌고,

가족을 힘들게 만든 장본인처럼 보였다.

그래서 일부러 멀리하려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른이 되어갈수록 다시 흙을 만지고 싶어졌다.

그 꼴 보기 싫었던 도자기를 다시 배우고 싶어졌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더 연세 들기 전에, 그 손을 보며 배워야겠다고.


예술에 대한 갈증,

내 안의 무언가를 꺼내 표현하고 싶은 욕망.

그래서 글쓰기를 시작했고, 도자기를 다시 붙잡았다.




도자기는 생각보다 훨씬 섬세하고 예민한 작업이었다.

내 한숨과 손길 하나에 따라

형태도, 온도도, 느낌도 달라졌다.


하지만 어린 시절 느꼈던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감각’은 여전히 나를 설레게 한다.




도자기를 이제 막 다시 배워가는 길목에서

그제서야 나는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왜 평생 도자기를 놓지 않았는지.

왜 그렇게 흙과 시간을 함께 보냈는지.

그리고 왜 그 손끝에서 ‘향’이 피어났는지를.




도자기는, 무에서 유로

시간과 감정을 빚어내는 복합적인 예술이다.

그리고 이제는 나도,

그 흙을 빚고 글을 쓰는 한 사람의 작가가 되었다.


아버지의 흙을 빚던 손은

이제 아들의 손 안에서 새롭게 다시 살아난다.

그렇게 우리는 ‘향현’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