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5일 작성한 글입니다.
*6일 중 이어서 업로드할 예정입니다.
*뒷부분이 길어져서 개별 글로 분리하였습니다.
https://brunch.co.kr/@f483820ff9154c3/21
■ 이유
며칠 전, 내가 만든 ‘영상’이 영화에 속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다른 단편 영화들과 영화제나 상영회라는 배급 형식을 공유했지만, 보는 이들은 다들 ‘이게 영화?’라고 묻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고. 그 계기는 좋은 기회로 두 감독님께 첫 영화에 대한 평을 받은 일이었다. ‘특이 쇼츠와 영화 사이 그 어딘가에 위치한 작품’이라는 코멘트였다. 내심 느끼고 있던 점을, 판결받은 기분이었다. ‘쇼츠’(단편 영화를 뜻하는 shorts가 아닌, 숏폼을 의미한 것 같다)같대서 기분이 나쁜 게 아니다. 내가 의도치 않았는데 나타난 특성이라서 당황했다. 나는 내 시나리오에 대해선 어느 정도 안다. 블랙코미디 장르를 좋아하고, 부조리극의 엉뚱한 티키타카를 좋아하며, 인물을 윤리적 갈등상황에 갖다 놓고 폭주케 하는 구성을 선호하는 걸 안다. 하지만 어쨌든 그게 작가와 배우의 영역이라면, 나에겐 내가 만들려는 영상에 대한 명확한 상이 없다.
특이 쇼츠와 영화 사이 그 어딘가에 위치한 작품. 컨셉이 작품과 잘 어우러진다. /
연기와 음악, 자막 등의 사용 등이 과하지만, 그것이 묘하게 이 작품의 독특한 지점이 되고 있다.
태어나서 스물한 살까지는 쭉 꿈이 화가였다. 그러다 20대 내내 회화, 페미니즘, 연극, 그림책, 시리즈물 등을 떠돌다가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 방랑의 이유는 매체나 장르성, 커뮤니티(씬)에 대한 큰 애착이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주제의식은 있었지만 그게 매체, 장르, 유행과 긴밀하게 부합하지 않았고, 그 교차점을 그다지 찾으려 하지도 않았다. 지금에서야 사조나 계보, 스타일이라는 실을 붙들고 거기 나를 꿰고자 하는 중이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정말 근본도 소속도 없는, 어느 편의 언어로도 포착되지 못하는 유령이 된다. 그래서 ‘2025 숏폼 베스트10’은 내가 어떤 형식의 영상을 찍고 싶은지 정리해볼 구실이다. 숏폼은 좋다. 한 가지 영상에 한 가지 특장점이 있으니까. 소재, 구성, 인물, 작가성(개성) 중 하나는 꼭 있다. 이후 유튜브의 미드폼까지 검토한 뒤 나의 선호와 편향을 포괄할 수 있는 영상의 형식을 찾아야겠다.
■ 선정 방식
2025년 하반기, 내가 인스타그램에서 좋아요를 눌렀거나 저장해놓은 릴스 중에 84개를 골랐다. 출처가 롱폼 영상인 것은 제외했다. 84개를 현실과 초현실/창작 두 분류로 나누고, 반절 가량을 추렸다. 둘의 비중이 비슷하도록 유의하였다. 거기서 다시 10개를 골랐다. 이후 작품 속 어떤 요소가 뛰어나다고 느꼈는지 선정 기준을 표로 만들었다. 그리고 개별 릴스들의 어떤 지점에 끌렸는지 적었고, 마지막으로 왜 나는 줄 세우기 식 평가를 하려 했는지도 생각해봤다.
■ 선정 기준
■ 개별 분석
1. 비둘기 인형 뽑기 1분 47초 / @medalgamexclawcrane
릴스치고 긴 편인 1분 47초 동안 세 가지의 난관을 돌파하는 구조. 캡슐에서 미니 똥이 나와도 어린이의 마음으로 기대하며 보게 된다. 소재가 된 인형뽑기 기계의 독특함이 다 했다.
‘펀라켓’이라는 장난감이 있다. 몸체 여러 군데 난 열쇠 구멍을 열어가다 보면 보물을 얻을 수 있고, 최후에 가장 큰 보물을 얻게 된다. 그런데 보물이란 것들이 손톱만 한 조잡한 피규어거나 겨우 한두 개 인쇄된 롤 스티커들이다. 그러한 게임, 미로, 단순 동작을 반복하는 자동기계, 무대장치, 스티로폼으로 채워진 선물 상자, 한국에서 조성한 유럽 마을, 반짝이, 꼬마전구는 어린 시절 나에게 실망과 동시에 약간의 설렘도 주었다. 판타지 영화가 아니었던 현실에서 자꾸만 초현실을 보게 했다. 현재, 어른이 된 나는 물질적·미적 빈곤(?)이 자아내던 그 감정을 ‘노스탤지어’로 여기는 듯하다. 그러니 이런 감정은 내가 속한 특정 세대가 공유하는 ‘드림 코어’에 속할 수 있지 않을까?
2. 따듯해진 털털이 1분 50초 / @2wins_bubu
15분 길이 시트콤 에피소드 같다. 캐릭터 대비가 확실하며, 사건의 흐름이 명확하게 전달되는 친절한 구성이기 때문이다. 음악과 아이들의 말(화면에 등장하기 전에, 말소리부터 들린다)을 통한 장면 전환, 감정 전환이 자연스럽다. 한 장면 내에서도 슬프고 코믹한 음악을 번갈아 사용하며 아들의 아이 다운 감정선을 따라가도록 돕는다. 게가 탈출한 사건이 마무리 된 후에 또 다른 사건이 등장하지 않아도, 후반부는 그에 대한 인물 각각의 리액션으로 할애할 수 있음을 배웠다. 스마트폰 렌즈 배율도 상대적으로 다양하게 사용했고, 줌의 사용도 능숙해 보인다. 상당히 품이 든 영상이라는 뜻이다. 다만 유튜브 영상에 많이 쓰일 것 같은 음악들만을 사용한 점은 아쉽다. 여러 번 볼수록 음악이 귀를 피곤하게 한다.
대야에 넣어두었던 게가 탈출(공포)→게를 다시 잡음(궁색)→여섯 시간 후 게가 죽음→아들이 게를 키우고 싶었다며 눈물(슬픔)→부모와 딸이 아들을 달램(코믹)→회복된 아들이 조개와 게를 맛있게 먹음(슬픔과 코믹 반복)
요즘, 많은 릴스들에서 중년 남자 AI 음성이 어린이나 동물들의 시점으로 나레이션을 한다. ‘정병연애 썰’에나 ‘멘헤라’ 시점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어조 조절이 세밀하고, 속삭이거나 소리도 지른다. ‘쌰갈!!!’이나 폭발하는 텍스트 효과와 쓰이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릴스들에서는 언어 감각과 텍스트 효과, 스티커 같은 애니메이션 효과들이 더 부각된다. 장면 전환이나 대사 개념으로서의 말은 거의 없다. 나는 이런 릴스들이 영상보다는 텍스트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커뮤니티 글처럼 언어적 뉘앙스를 빠르게 캐치할 수 있는 특정한 유저들에게 잘 통한다. 반대로 ‘따듯해진 털털이’는 좀 더 보편적인 대중을 웃길 수 있는 종류의 릴스이다. 그런데 이 릴스를 보고 한참 후 스레드의 한 게시글과 댓글을 보니, 게를 삶아 먹기 위해 게와 육탄전을 벌인 이들이 여럿이었다.
3. 울음 참는 여자 12초 / @somiinthebagel
마치 gif(움짤)같은 정적인 릴스도 수요가 있다. ‘오 샹젤리제’ 밈이 그 예시다. (댓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채로 30번을 돌려봤습니다. 저의 뇌 건강을 책임져주셔서 감사합니다 @TL에딧) 카톡 창에 내리는 눈이나 유튜브 플레이리스트 영상의 애니메이션도 그렇다. 딱 맞는 선곡 그리고 움직임의 반복성이 특징이다. 그리고 이 릴스도 그런 식으로 감상하게 된다. <클로저>의 앨리스(나탈리 포트먼)를 닮은 여자가 울음을 참고 있다. 카메라는 누워있는 그녀의 상반신을 정면으로 내려다본다. 그런 정직한 앵글과 스톱 모션 기법 탓에 gif스럽다. 피부를 만든 매트한 점토나 투명 본드 같은 눈물의 묵직한 질감이, 미세한 표정 변화를 매초 선명히 붙잡아 보여주는 듯하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싫었던 감정이 연기로 재현될 때 받는 위안이 있다. 버려지고 거부당하고 배신당한 사람의 마음이 표정이 될 때. ‘꿀 떨어지는’ 눈빛 연기와는 반대로, 이런 표정은 보는 이를 화면 속 발광하는 시선의 대상으로 만들지 않는다. 화장대 거울 뒤에 카메라가 있는 줄 몰랐다던 <환승 연애2> ‘해은 화장대 씬’같다. 과장된 성격의 인물을 연기하는 경우가 아닌 이상, 배우는 ‘감정을 느끼는 연기’ 보다는 ‘참는 연기’를 통해 현실을 모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울음을 참는 연기, 화를 삭이는 연기, 웃음을 참는 연기로.
4. 이게 대체 뭐야! 21초 / @hyebixxn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생중계한다. 솔직한 데다, 숨기려는 의지가 덜 하니 시시각각 표정이 변한다. 또 재밌는 점은, 감정의 표정이 바로 매칭되지 않을 때도 많다는 것이다. 기저귀에 똥을 싸며 힘주는 표정이라던가, ‘화내고 싶은데 아는 욕이 없는’ 얼굴, 이유식만 먹다 처음 아이스크림을 먹었을 때 아이들은 꼭 일순간 멍해진다. 입을 활짝 벌리는데 그 표정이 웃는 건지, 소리치는 건지, 화가 난 건지 구분이 안 될 때도 있다.
‘이게 대체 뭐야!’ 속 루아도 그렇다. 아빠가 파스넷으로 추정되는 검은 필기구로 루아의 인중과 턱에 바다 사자같은 수염을 그린다. 루아는 “이게 뭐야 또~”라고 푸념하면서도 아빠에게 잡혀있다가, 방에 가서 거울을 확인하고 돌아온다. 렌즈 배율을 제대로 맞추지 않은 듯 뭉개지는 저화질 화면 속에서 루아가 “이게 대체 뭐~~~야!!”라고 소리치며 미끄러지듯 달려온다. 거실에서 방, 다시 거실로 오는 루아의 동선과 카메라 구도가 재밌다. 빨개진 얼굴도.
5. 3일 만에 본 엄마 19초 / @ggb.sia
이제는 어린 시절을 지나온 지 오래돼서, 아이도 양가감정을 갖거나 감정을 숨길 수 있다는 걸 잊어버렸던 것 같다. 그래서 이런 장면을 볼 때 아이의 감정 그대로 보기보단, 멜로 영화 속 성인의 감정선을 투영해 해석하게 되나 보다. 이런 말을 했더니, 엄마가 자신도 어릴 엄마를 시골에 맡겨놓은 외할머니가 다시 찾아왔을 때 이불을 덮고 숨었던 기억이 있다고 말해주었다.
6. 80s 디스코 47초 / @neptunianglitterball
미키마우스에서 실사판 앨리스의 하트 여왕으로 조금씩 변해가며 등장하는 탈 쓴 사람이 제 공간 가운데서 어정쩡하게 춤을 춘다. 릴스 내내 그가 뭘 하려는 건지 불분명하다. 집을 자랑하는 건가? 이 릴스는 하나의 영상이라기보다는 핀터레스트의 유사 이미지 모음 같기도 하다. 이처럼 다수의 AI 영상들은 상황이나 이야기에 대한 뚜렷한 계획 없이 생성된다. 저런 공간, 인물, 소품을 마련해놓고, 제대로 ‘뽕을 뽑아’ 활용해보려는 인간 제작자의 아쉬움이 느껴지지 않는 영상이다. 나는 AI 영상들을 보며 고속 터미널이나 남대문 시장의 풍만한 자재들을 떠올린다. 물질이, 질감이 넘쳐 흐른다. 하이라이트, 글리터, 스팽글은 선명도나 노이즈를 올려놓은 것처럼 일률적으로 자글거리며, 원근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 탓에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 장면들은 평면적인 달력 그림으로도 보인다. 하지만 이건 큰 결점이 되지 않는다. 일관성이나 물리 법칙이 지켜지지 않아서 더욱 꿈 같다. 그런데, 80년대 미국이나 이탈리아 디스코 문화를 겪어본 적이 없는 내가 이 릴스를 내 유년이 반영된 꿈의 한 장면으로 생각하는 것이 의아해진다. 혹자는 sns가 발달하며 온 세계의 문화가 동시대적으로 유통되고 있음을 걱정하지만, 이미 내가 태어났던 20세기 후반부터 쭉 그래왔던 것 같다. 그리고 생성형 AI는 우리의 ‘드림코어’ 즉, 노스탤지어의 외연을 지나치게 넓히고 있다.
7. 쓰레기 집 27초 / @voidstomper
요즘 나는 강당이나 대극장에 가면 물결치듯 우글대는 사람들 앉은 뒤통수에 감탄을 한다. ‘고깃집 볶음밥 같은 제니 코첼라 관중’이나 ‘도둑 촬영’을 했다는 <쉬리>를 부러워하기도 했다. 영화를 찍고 나서 공간과 사람을 자꾸 돈으로 환산해보는 부작용을 얻은 탓이다. 인터넷 무료 소스처럼 수많은 사람들이라니! 실사 영상이 아닌 AI가 생성해내는 군중들도 눈여겨 봐왔는데, 그 개체들에게선 어떤 통제된 율동감이 느껴지곤 했다. 그게 이질감을 자아내기도 하지만, trashcore, 예를 들자면 좀비 영화 같은 이 릴스엔 어울린다. @voidstomper는 생성형 AI의 인해전술을 통해 ‘소리 없는 아우성’의 풍경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voidstomper의 피드를 내리다 보면 마트, 창고 같은 공간 안에 시체인가 마네킹인가 ‘리얼돌’인가 싶은 것들이 쌓여 있는 릴스들도 보인다. 마네킹, 자동인형, 폐허는 20세기 초현실주의자들이 집착했던 소재들이다. 거기에 또, 신자유주의를 ‘재치’ 있게 비꼬는 사진작가 ‘데이비드 라샤펠’의 감성도 한 스푼 들어가 있다. 21세기 미술에서 거의 활약하지 못하고 장르성 짙은 게임이나 호러 영화 속에 녹아들어 명맥을 유지하던 초현실주의가 생성형 AI를 통해 봉인해제 된 것만 같다.
다만 이 릴스들을 만든 AI가 어떤 것들을 먹고 자랐을까 하는 찜찜함이 남는다. 수용소나 감옥,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에서와 같은 대피소 영상을 학습했을까? 인구 밀도가 높은 한국의 수도권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보며 공간에 대한 상상력을 키운 내가 캐치 하지 못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10. 엄마의 재혼 주선 40초 / @queenriha__
“엄마 나중에 엄마 배에서 애기가 또 태어나면 그, 이제 결혼하지마 아빠랑. 다른 멋있는 삼촌이랑 한 번 더 결혼해서…” 릴스 속 아이 리하가 말한다. 리하를 보며 내 어린 시절의 불안을 떠올렸다. 나는 오이디푸스랄지 엘렉트라 콤플렉스 같은 애착들을 진지하게 믿진 않는다. 그런 건 오히려 30대 이상 기혼자들에게서 발현되는 것 같고, 예민한 어린 애들의 공포는 본능이라기보다는 문화적 산물이라고 본다. 그들은 ‘부모님이 죽을지’, ‘가족이 깨질지’ 하는 불안을 품고 있다고 느낀다. 나의 경우엔 그림책 『바람이 멈출 때』와 엄마의 ‘야매’ 죽음 교육, 드라마 <조강지처 클럽>(2007)을 거치며 걱정이 시작됐는데, 한 번 시작되자 <아일랜드>(2005)에 등장하는 부모 없는 성인들조차 내 마음을 울렁울렁 건드렸다. 죽음과 윤회와 천국과 소멸에 대해 생각했다. ‘천국에서 영원히 함께 하는 우리 가족’이 그때 내 타협점이었다. 그리고 부모는 그럼으로써 신뢰를 느낄만한 대상이 아니라 각각 연약한 존재, 바람을 피울 수 있는 위험한 존재가 됐다. 리하의 저 말은 가정 붕괴에 대한 두려움을 표현하고 있지만, 엄마와 자신의 다음 생에서의 거취에 대한 상상이진 않을까 생각해본다.
■ 릴스 링크
비둘기 인형 뽑기 https://www.instagram.com/reel/DPDw72aEm6T/
따듯해진 털털이 https://www.instagram.com/reel/DMT5STIyId1/
울음 참는 여자 https://www.instagram.com/reel/DSZUqKGjanr/
이게 대체 뭐야! https://www.instagram.com/reel/DRo7rNJEdWg/
3일 만에 본 엄마 https://www.instagram.com/reel/DSSNzsDEbfR/
80s 디스코 https://www.instagram.com/reel/DRNFe2_iUdF/
쓰레기 집 https://www.instagram.com/reel/DQetoLHjc-w/
성모상, 봉춤, 리코더 https://www.instagram.com/reel/DOn0W-nEqsV/
거대 일본 탈 https://www.instagram.com/reel/DN-d8vrEqre/
엄마의 재혼 주선 https://www.instagram.com/reel/DQwQlquE85d/
*울음 참는 여자는 ‘특정 타겟에는 부적절하니 로그인을 하라’고 뜹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