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 릴스가 이룩한 '정체성 평등'
*2026년 1월 17일에 게시한 글입니다.
*직전에 올렸던 글, <2025 숏폼 베스트10>의 분석 파트가 길어져서 따로 분리하였습니다.
모든 인간의 일기장이 공평하게 보존된다면
몇 세기 후, 지구 혹은 우주 어딘가에서 우리 후손들은 몇백만 테라바이트의 글, 사진, 영상, 메시지 중 무엇을 사료로 선별하여 연구할까? 오만가지 아름다운 얼굴, 몸, 풍경, 동물들과 일상의 조잡함, 재치, 삶의 비참함과 진수들이 유튜브, 인스타그램, X, chatgpt의 데이터로 냉동인간처럼 보존돼 있을 텐데 말이다. 공적인 사건이 아닌 일상이, 인간 다수의 일기장이 기록된다는 것이 다시금 나는 놀랍다. 지금의 인터넷을 보면, 국적·인종·젠더·섹슈얼리티의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받으려는 ‘인정 투쟁’이 완수된 상태로도 보인다. 콘텐츠의 내용뿐 아니라 ‘좋아요’, ‘조회수’, ‘수익’과 같은 지표의 면에서도 그렇다. 게시글 없이 ‘좋아요’ 1.5만 대의 릴스 대여섯 개만 올라와 있는 계정이 늘어났다. 예전엔 추천 탭에서 인상 깊게 본 계정을 팔로우했다면, 지금은 팔로우를 하지 않아도 추천 탭을 표류하다 보면 곧 다시 만날 수 있다. 그러니 작금을 ‘포화 상태’라 느끼고 불안해하는 것엔, 결과주의와 능력주의적 사고에 사로잡혔다거나, 올드미디어가 자신의 이권을 잃기 두려워하는 상태라는 오해가 붙는다. 하지만 이 불안은, 재구성을 거치지 않은 포착과 재현이 창작과 혼동되고, 모두가 한 매대에 올려져 상품으로 평가받고 있는 환경에서 온다.
내가 나라는 이유로 죄가 되고 / 내가 나라는 이유로 벌을 받는 / 문제투성이 세상에 하나의 오답으로 남아 // 내가 나라는 이유로 지워지고 / 나라는 이유로 사라지는 / 티 없이 맑은 시대에 / 새까만 얼룩을 남겨 / 나를 지키는 사람 (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뮤지컬 <레드북>)
지금의 ‘정체성 평등’이 조성된 첫 번째 요인으로 메타의 정책을 꼽아볼 수 있다. 코로나 이전 인스타그램은 셀피 게시글 중심으로 ‘갓생’이 브랜딩 되는 공간이었고, ‘인스스’와 ‘인플루언서’ 중심의 위계가 존재했다. 그러다 2020년 8월, 메타는 틱톡을 견제하며 ‘릴스’를 도입했고, 2024년 4월에는 ‘내가 만들거나 의미 있게 개선되지 않은’ 재업로드 콘텐츠가 추천 탭에서 제외되도록 알고리즘 방향을 변경했다. 그러면서 지금의 ‘정체성 평등’이 이루어졌다. 도입 후 얼마간 릴스는 댄스, 아이돌, 유튜브 스트리밍 혹은 TV 방송 클립 위주였다. 개인적으로는 2023년 초, 넷플릭스가 <더 글로리> 예고편으로 두 인물의 대화 장면 전체를 공개한 후 드라마 클립들이 많아졌었던 현상, 이수지와 주현영의 <더 글로리> 패러디 이후 추천 탭에 snl 클립이 엄청 돌았던 것, 2023년 중순 통인 시장 데이트 클립으로 <하트시그널4>에 시청자들이 유입됐던 게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24년 7월에 앱을 삭제했다가 25년 9월에 앱을 다시 깔았을 때, 추천 탭에 뜬 ‘릴스’들은 다소 ‘마이너’하다고 볼 수도 있는 다양한 정체성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중 나는 ‘마이너함’에 주목하는데, 두 번째 요인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인스타그램 여성 유저들의 이용 패턴 변화가 두 번째 요인이다. 태초에 X와 다음 여초 카페 게시글 캡처본들이 인스타그램 추천 탭을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커뮤니티를 하든, 하지 않든 20대부터 30대에 이르는 대다수 여성 유저들은 비슷한 말투와 감수성을 공유하고 있다. ‘젠지’(Z세대,MZ의 끝자락)의 언어다. 여기엔 한국 여성 소설가들의 문체, 자유주의 페미니즘적 문제의식, ‘퀴어 프렌들리’한 태도를 위시한 ‘공정 감각’이 혼합돼 있다. 그러면서 여전히 ‘맘카페(2000-2010년대의)’ 특유의 둥글둥글한 수동공격성을 내재하기도 하며,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조심시키고, ‘공정’으로 검열하는, 실은 근본주의에 가까운 면모도 늘 작동 중이다. 그러니까 이들은 늘 자아 분열을 겪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본계정’ 그리고 사회적 관계 안에서는 사무적인 ‘쿠션어’를 사용하며 수동공격을 주고받고, ‘비계’ 혹은 ‘친친’(‘카카오톡 멀티프로필’도 여기에 속할 수 있겠다)에서는 과격한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도덕’과 ‘공정’으로 내집단을 통제하려 한다. 그리고 나아가 자신의 이러한 분열을 의식한다. ‘본계정’이 발산의 창구가 될 수 없음을 알고, ‘비계’가 공적인 공간에 등장하면 안 된다는 ‘규칙’을 안다. 여성 각각이 자기연민과-자기학대-자학개그의 스펙트럼 어딘가에 위치한다. 문제는 그들 머릿속의 ‘공적 공간’이 지나치게 넓다는 점, 그리고 그 공간의 경계 판단이 자의적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난 변화의 조짐을 ‘릴스’에서 봤다. 코미디언, 작가, 예술가, 연구자들은 ‘자기객관화’, ‘메타 인지’를 자원으로써 활용해 왔는데, 어느 순간 sns 여성 유저에게도 그것이 콘텐츠를 만들어낼 자원이 되었다. ‘도파민’이라는 면죄부가 생겼기 때문이다. 2010년대 중반, 사람들은 과격한 스트리머나 ‘먹방’을 보고 ‘길티 플레저’라고 했다. 지금은 자기 자신의 서사에 대해서도 ‘도파민 썰’이라고 설명한다.
‘도파민’이 불러온 여성의 자기 개방
2024년 6월, 예전부터 여초 커뮤니티 댓글 창에서 자주 접했던 단어가 갑자기 칼럼을 비롯한 오만 곳에서 쓰이기 시작했다. 정유미가 스케치 코미디 영상으로 유행시킨 ‘남미새’ 말이다. 래디컬 페미니즘 커뮤니티에서 쓰이던 ‘흉자’, ‘명예 한남’의 덜 구조적인 버전이며, 여성 간 의리를 지키지 않고 여성의 ‘주체성’을 포기하는(것처럼 보이는) 여성에 대한 ‘도덕’적 검열, 이성애 연애 자체를 ‘허물’로 보는 ‘4B운동’(비연애,비섹스,비혼,비출산)적 인식도 담겨있다. 기성세대 여성들은 남자와 연애와 결혼을 사랑하는 일이 자신들의 정체성이었고, 그 임무를 얼마나 잘 완수했느냐에 따라 여성들 간 위계를 만들어왔다. 이는 여전히 유효하기도 한데, 재미있는 건 8090년대생 기혼 여성들이 구사하는 자학개그들이다. 과거 엄마들이 주로 모이던 ‘맘카페’에서 수동공격성을 억누른 둥글둥글한(♥, ~~^^, 고급진, 우아한) 의사소통법이 통용됐다면, 이들은 훨씬 과격하고 웃기다.
한 유저는 ‘엄마하고 남편한테 돌봄 받는 게 적성에 맞지만, 자식 키워야 돼서 적성 포기한 사람.’(@_hyesam_)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이 엄마들은 결혼과 임신과 출산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다만 전통적인 ‘휴머니즘’ 정서 아래 아기 영상이나 남편과 아이의 도시락을 싸는 영상에 과잉 감상적인 자막을 달지 않고, 자녀들을 ‘자식새끼’로 낮춰 부르며, 스스로에게 ‘아들맘’, ‘젊줌마’, ‘임밍아웃’, ‘경단녀’, ‘남미새’ 등의 단어를 사용한다. 또한, 가족의 얼굴이나 집안 풍경이 관찰 예능처럼 노출되는 것에 거리낌이 없어졌다. 이들이 주로 시청하는 TV·ott 콘텐츠가 과거 ‘휴머니즘’ 드라마에서 ‘관찰 예능’으로 옮겨가면서 자기 계정의 ‘톤앤매너’를 ‘가족시트콤’으로 상정하고 있는 것도 같다. 실제로 ‘홈캠’ 녹화본을 릴스로 제작하는 경우도 많다. ‘가족시트콤’에 위배 될 수 있다고 판단한 영상에는 어김없이 ‘메타적’ 코멘트를 단다. 아이에게 바이올린 교습을 시키거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장면에 ‘중산층 된 거 같구 기뻐요’라는 첨언을 하는 식이다.
한편, ‘수동적인 여성상’을 극대화한 ‘에겐녀’, ‘여자력’, ‘갸루’, ‘번따 필승룩’, ‘여자의 악마’ 같은 표현들도 있다. 특히 ‘에겐녀’와 ‘테토녀’ 프레임은 ‘남미새’의 부정적인 어감을 상쇄해주는 의의가 있었다. 한국뿐 아니라 다양한 국적의 여성상이 ‘갸루’, ‘중녀’, ‘중티’, ‘왕홍 메이크업’ 인지되기도 했다. 또, 특정 콘텐츠들이 ‘여자력’, ‘여자의 악마’ 같은 단어를 써 가며 동성을 성적으로 묘사하고 칭찬하는 점이 흥미롭다. 하지만 그것은 ‘영포티’, ‘개저씨’ 남성의 시각을 학습하거나 전유하려는 의도도 아니고, 그렇다고 동성에 대한 성애적·정서적 사랑을 솔직하게 표현하려는 것도 아닌 듯 보인다. 예전부터 ‘여돌’을 추앙하면서 희롱하고, 동시에 이들을 보듬는 인격적인 자리에 자신을 위치시키는 자칭 ‘여미새’들을 보며 느꼈다. 그들은 과한 태도로 여성 신체에 탐닉하며 ‘나르시시즘’을 충족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고 보니 인간관계, 연애, ‘섹슈얼리티’와 관련된 단어 비중이 크다. 신경증 환자의 자기 인식적 표현들도 연애의 맥락에서 사용되곤 한다. ‘멘헤라’와 ‘정병’이 ‘정병 연애’, ‘정병 발사’, ‘정밍아웃(정신병 커밍아웃)’으로 활용되는 식이다. 정확하게 병리적으로 쓰이는 건 아니고, ‘망사(망한 사랑)’, ‘사랑은 자해다’, ‘한 처먹음’처럼 애정 관계 안에서 자신이나 상대의 기행, 돌발 행동이나 ‘불건강한 애착’을 자조하는 표현에 가깝다. 여기서 포인트는 이들이 미성숙한 사랑을 했다는 점이 아니라, 자신의 사랑을 망했다고 말할 줄 안다는 것이다. 중독자와 정신질환자에게 병식이 있듯, 연애와 관계에 대한 병식도 있다. 남성과의 연애에서 통제 문제나 신체적·성적 폭력 행위에 연루되었던 여성들은 ‘전남친’에 대해 ‘똥차’라는 말로 뭉뚱그리고 기억을 묻어두거나 ‘피해자’로서 분노하는 방식으로밖에 관계를 회고할 수 없어진다. 연애까지 가지 않더라도, 교제하기 전 성관계를 했는데 ‘썸붕’이 났다고 가정해보자. 이 여성이 ‘불발된 마음이었다.’, ‘실패한 관계였다.’라는 식으로 겸허히 자신의 일을 받아들이긴 어려울 것이다. 이럴 때 ‘망사’, ‘정병 연애’같은 표현들은 자신이 무언가 상실했고, 피해 입었다는 감정에만 빠지지 않은 채로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도록 돕는다. 보는 사람 입장에서도 이혼 전문 변호사들의 치정극, ‘멜로 드라마틱’한 인스타툰과 달리 여성들이 직접 자기 서사를 구성하고 있다는 안도감이 든다.
현재 인스타그램 속 여성들은 이처럼 ‘자기객관화’와 ‘자학개그’에 능숙하다. 과거에도 자신이 ‘된장녀’라고 농담하는 여성은 있었다. 또한, ‘골드미스’, ‘까도녀’, ‘쎈언니’라는, 보다 긍정적인 단어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여성을 바라보는 남성의 시각이었다. 그 시절의 ‘알파걸(성녀)’과 ‘꽃뱀(창녀)’ 프레임처럼 현재도 이분법적인 프레임은 있다. 테토와 에겐 말이다. ‘여자력’이라는 말이 쓰여도 되는 걸까 의아해질 때도 있고, ‘테토녀'라는 말이 묘하게 '남자는 다 애야', '남편은 큰 아들이야.'하던 옛 언니들의 씁쓸한 농담과 겹칠 때도 있다. 하지만 그 프레임조차 여성의 시각에 가깝고, 그 점이 중요하다. 지금 여성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훨씬 더 과격하게 표현하고,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