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리와 방법론 찾기①

moziri 창작론

by 정신차려 moziri

*2026년 1월 15일 게시한 글입니다.

*<2025 숏폼 베스트10>의 분석 파트가 방대해진 김에 <모든 인간의 일기장이 공평하게 보존된다면>과 <울타리와 방법론 찾기>로 나눠 업로드합니다. 전자는 계획대로 릴스 분석에 집중하고 있으나, 후자는 창작자인 저에 대한 글에 가깝습니다. 어떤 소재로 글을 써도 어느샌가 계속 미술 이야기로 새고 있었습니다. 2022년 8월부터 계속 그래왔습니다. 자소서에, 대본에, 에세이에, 오만 곳에 미술 얘기를 써댔으나 완결지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불안하겠습니까?! 첫사랑의 유령처럼 미술이 계속 제 등에 업혀 있습니다. '영화를 만드는 지금의 나'를 정당화하려는 불안이 영향을 미쳐, 계속 미술을 흉 보기도 했습니다. 해서 아예 '창작론'이라는 허울 아래 지속적으로 미련을 발사해보려(?) 합니다. 그러면서 미술 공부도 꾸준히 하구요.



창작하기 가혹한 난세다. 뭔가를 하려다가도 맥이 탁 풀려버려, 그만 드러누워 핸드폰이나 보게 되는 시절이다. 열심히 만들어봤자 돈도 못 벌고 실생활에 쓸모도 없는 ‘예쁜 쓰레기’라며 자타의 작업물을 싸잡아 비관하던 미대생들에겐 부글대는 열패감이라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비관하다간 영영 에너지를 잃을지도 모른다. 창작자들은 ‘AI로 딸깍’하면 되는 걸 왜 고생해서 쓰고 그리느냐는 사람들의 악의 없는 질문에 벙찌면서도, 문제 제기는커녕 분노와 슬픔도 잃은 채 AI의 무허가 저작물 침탈이라는 ‘뉴노멀’에 익숙해져 간다. 지브리 풍 프로필이 유행한 지 10개월이 되어간다.


한편으로는, ‘감식안’을 지닌 소비자로서의 지위는 격상되는 흐름이 느껴진다. ‘레트로’로도 분류된 적 없는 오래된 영화, 과도하게 ‘네오’하고 ‘힙스터’ 취향이라 아이돌 앨범에서 존재감을 발휘하던 디자인 포스터들이 다 함께 ‘미감이 좋다’는 칭찬을 듣기 시작했다. 부정적이거나 전위적인 구석이 있으면 매몰차게 외면하던 대중에게, ‘예쁘다’는 인준을 받은 것일까? 혹은 감식안의 상대적 희소성을 내세우고 싶은 조급한 소비자가 과대표 되는 걸까? 어쨌든, 그러한 칭찬이 감독에게마저 쓰이고 있었다. 그 영화의 미적 형식을 ‘센스’로 환원하고, 또 그 ‘센스’를 감독의 취향으로 넘겨짚는 태도로써, 한 편의 영화를 ‘미적 소비재’로 축소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핀터레스트의 핀이 된 영화는 영화사나 당대 사회적 맥락에서 고려될 확률이 적다. 나는 결국, 이것은 소비와 수집 행위이지, 감상과 아카이빙이 되기엔 모자라다고 본다.


또한, ‘조회수’, ‘좋아요’, ‘수익’과 같은 지표에 준거하여 창작물의 가치를 판단하는 말들이 늘었다. AI 생성 영상, 브이로그, 정보전달, 공연 실황 등의 각종 영상, 영화, 방송국 예능, 작가가 만든 미술품까지 플랫폼이라는 거대한 매대에 함께 진열됐기 때문이다. 수익 구조가 비슷해졌다고, 동일 선상에서 가치를 평가해야 하는 건 아닐 것이다. 메이저 PD부터 경제적으로 고립되어있는 신진 예술가들까지 하나 같이 뉴미디어를 대하는 태도가 ‘상대적 박탈감’인 것은 이상한 일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에 염증을 느끼는 내가 있다. 일반화하듯 글을 열었지만, 사실 이 글은 나의 욕망을 이해하고 불안을 쫓으려고 쓰였다. 지난번 글에서 릴스 84개를 굳이 베스트 10으로 줄 세운 이유는 내가 나의 기준으로 정렬하지 않으면 압도당하고 마는 사람이라서다. 매일 새것에 매료되는 어린이처럼, 반짝이는 창작물을 보면 나는 내 것을 찢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조금이라도 내 것과 비슷해 보이면 ‘도플갱어’라도 발견한 듯 과도하게 동일시했고, 너무 늦게 태어나는 바람에 미술사에 얹을 게 없을 거라고 슬퍼했다. 이미지 생성형 AI의 발전을 목격하면선 정말 이제 죽을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돌아보건대 나는 늘 울타리 안에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는 안정을 느꼈다. 각종 어린이 미술대회와 예중-예고-미대 입시라는 제도를 거치면서 거의 매일 시험을 치고, 그림 백 여장이 A, B, C, D 등급별로 놓여있는 교실에서 평가받았다. 부모님 연배의 선생님들께서 내게 주셨던 애정과 인정이 소심한 ‘아웃사이더’였던 나의 사회성 발달을 돕기도 했다. 입시 평가에서 작동되는 창의력과 그렇지 못한 창의력의 분류에 대한 분노 또한 창작의 강력한 동기가 됐다. 이처럼, 타인에게 자주 괴짜 혹은 자유주의자로 오해받는 나는 실은 자유로운 상태를 바란 적이 없었다. 울타리 안에 있으면서 반항하면 불안을 잠재울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대학교 2학년이 끝날 무렵의 나는, 내가 졸업 후 진입해야 할 ‘컨템포러리 아트(동시대 미술)’라는 울타리가 부실하다고 의심하고 있었다. 그는 지나치게 관대하여 온갖 것들을 품었다. 회화 같고, 공예 같고, 사회실험 같고, 인테리어 같고, 영화 같고, 다큐멘터리 같고, 기록물 같고, 게임 같고, 저널리즘 같고, 건축 같고, 춤 같은 것들이 다 미술이라는 인준을 받고 오합지졸처럼 모여있었다. 그것들이 왜 미술인지 나는 납득할 수 없었다. 그래서 미술도 미워하고, 작품도 작가도 미워했다. ‘실생활적 쓸모가 없고, 자폐적이고, 반골적 뉘앙스를 풍긴다고 그게 다 미술인가?’ 푸념했다.


그로부터 7년간 페인터(painter)로써 슬럼프를 겪는 한편, 서사의 세계로 옮겨가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내내 최승자 시인의 「내 청춘의 영원한」과 같은 상태였다. (초짜라고 무시 받는 게) 괴롭고 (별종 취급받아서) 외롭고 (진절머리나던 미술이) 그리웠다! 그런데 계속 대본을 쓰다가 작년에 처음 영화 두 편을 만들어본 일이 어떤 분기점이 됐다. ‘내가 독립할 시기를 놓친 자식처럼 제도를 붙들고 날 안심시켜 달라고, 분별력을 좀 가져달라고 징징대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다. 첫 번째로, 내가 본 영화 하는 이들이 제도권의 인준보다는 동료집단에의 소속감을 우선시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둘째로, ‘영화 만들기’란 나 자신의 울타리를 세우길 요구하는 활동이었다. 포착·재현·재구성을 다 해야 했고, 뇌와 손과 몸까지 나를 전인적으로 써가면서, 또한 남을 작동시켜야 했다. 대본을 적을 땐 내가 살면서 포착한 것 중, 남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어 조바심 났던 기억들을 추린다. 그 기억들에 통용되는 인간 행동의 규칙을 발견하고 이를 ‘가설’로 정리한다. ‘가설’이 입증되도록 대본을 쓴다. 비평에선 ‘가설(논지)’ 아래 논거들을 조직한다면, 대본에선 대사와 행동이 그 ‘가설’을 가리키도록, ‘암묵지’가 전달되도록 에둘러 표현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대본 작법과의 타협이나 서투름, 무지, 편향 때문에 이야기가 제멋대로 튀어 나가기도 한다. 그러면 다시 잡아 온다. 또 튄다. 또 잡아 온다. 즉, 대본은 기억의 재현이 아니라 재구성된 현실이다. 대본 집필이 내겐 곧 이론을 시뮬레이션하는 ‘사고 실험’이었다.

안무를 위한 자신의 실험을 갇힌 공간에서 행한다는 것은, 그리고 스스로 그것을 철학하는 공간과 동등하게 생각한다는 것은 나우먼이 자신의 스튜디오를 두뇌 속의 공간으로 재구성했다는 것을 드러낸다.
(『코레오그래피란 무엇인가』, 안드레 레페키)


연습실과 촬영장에선 타인들이 침투하기 시작한다. 그럼으로써 현실의 재구성이 가속된다. 감독으로서 나는 내가 쓴 대본이라는 ‘매뉴얼’이 ‘발화효과행위’를 낼 수 있도록 환경을 조직하고 타인에게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 연출 방식, 연습 방식, 촬영 방식, 인원 구성, 일정 등 모든 게 환경이 되며 이때 무엇보다도 좋은 대본은 그 자체로 좋은 환경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감독은 그런 환경에서 태어난 일시적인 집단에 책임을 져야 한다. 나는 신뢰할 만한 책임자는 되지 못했다. 그렇지만 늘 그래왔듯 관찰은 할 수 있었다. 새로운 인간 행동의 규칙을! 그러니 영화는 내게 ‘사고 실험’이자, 실천이다. 거기서 시작해 다시 생각하고 글을 적고 다음 대본을 쓴다. 실천이 다시 ‘사고 실험’의 자양분이 된다. 이 순환이 영화를 통해 내가 얻은 새로운 ‘울타리’이고, 앞으로도 삶을 살아가는 방식으로 택하고 싶다는 게 지금의 마음이다.


다시 회화로 돌아와 보자. 물론 회화에서도 포착·재현·재구성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페인터로서 내가 포착했던 건 나의 내면이었다. 감정과 불안이라는 추상적인 것들을 얼굴, 조각, 물건, 풍경이라는 구체적인 이미지의 재현을 통해 표현했었다. 그리고 그 표현은 상당히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나는 내 감정과 불안을 관람자에게 발송하는 그러한 일방향 소통이 불만족스러웠다. 어느 시점부터는 내가 회화를 해나가며 성장할 수 없을 거라 전망했다. ‘훌륭한 자기 유폐자’는 더 이상 내 꿈이 아니었다. 다만 나는 여기에 회화라는 매체의 특성이 영향을 미쳤다고 봤으나, 내가 회화를 대하는 방식의 문제였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자기 자신의 울타리를 세울 수 있다면 그게 곧 창작의 동력이 될 거란 점이다. ‘크리에이터’라는 명칭의 등장 이후 재구성을 거치지 않은 포착과 재현이 창작과 혼동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콘텐츠를 소비하고, 창작품을 수집하는 데서 나아가 울타리를 세우고 방법론을 만들어낼 줄 안다면 낙담하지 않고 창작을 지속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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