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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a Jan 31. 2024

편지 열여섯,

-'불멸'이 된 밀란 쿤데라-

    



위트릴로,

소박하지만 우아한 거실이었습니다. 멘델스존 바이올린협주곡 e단조 64번 곡이 흘러나오고 있었지요. 그 장중한 테이블에 나는 정치계 고위급 간부의 부처와 함께 있었습니다. 제 옆자리에는 점잖은 콧수염을 기른 남편도 있었지요. 물론, 현실 속의 제겐 남편이 없었지만요. 남편과 그쪽 부인이 잠시 자리를 비운 틈이었습니다. 고위급 간부인 남자는 갑자기 제 옆자리에 앉더니 귓속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따로 만나요! 내가 당신이 있는 곳으로 가겠어요. 언제 만날까요?”

나는 동그랗게 커진 눈동자로 창문만 바라보았습니다. 누리끼리한 남자의 치아, 금테 안경 안으로 희번덕이는 눈을 차마 마주할 수가 없었지요. 남자의 코가 내 귓불에 닿자 베르사체 향수가 물씬 풍겨왔습니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참 곤혹스러운 순간이었거든요. 남자의 제의를 무시하면, 남편이 곤란을 받을 게 뻔하고(있지도 않은 남편이지만), 그 은밀하기 짝이 없는 말을 받아들인다면, 영락없이 함정에 빠지게 되겠지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신라 시대 왕관 같이 멋들어진 고딕 성당을 내려다보고만 있었습니다.

그곳은 필시 유럽이었지만, 다음 순간 저는 알아차렸습니다. 그곳이 로스앤젤레스라는 사실을요! 다음 순간, 나는 ‘하와이안 드림’이라는 소설을 읽은 다음 엄청난 충격으로 연락하지 않는 하와이에 거주하는 딸을 떠올렸습니다. 이왕 이렇게 해외로 나온 김에 딸을 만나고 가야겠다고 생각했지요. 그 순간, 웬일인지 엉큼한 남자와 남자의 아내는 사라지고, 저는 현실로는 있지 않는 남편과 단둘이만 남았습니다. 남편한테 딸을 만난 다음 귀국하겠다고 하니, 그는 흔쾌히 그러라고 했습니다. 택시를 타면 여기서 어느 정도 걸릴지 물어보자 남편은 말했습니다.


 

“얼마 안 걸려. 한 십오 분.”


그 말에 적이 안심이 되어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렇게 막 나서려던 차에 누군가 나한테 물었습니다. 그치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요.


 

“당신, 이름이 뭐예요?”

나는 조금 망설였습니다. 여러 이름이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본명, 필명, 예명, 미국식 이름, 무엇을 대야 할까? 하지만 그렇게 삼 초간 머뭇거리던 나는 기어이 이름 하나를 기억해냈습니다.


 

“저요? 아녜스예요. 아녜스.”


 

위트릴로,

이 이상한 꿈은 뒤죽박죽이어서 전혀 연관성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뿌리를 두고 있는 결정적인 단서가 있습니다. 바로 ‘아녜스’이지요.


 

아녜스라는 여자를 만나게 된 것은 불과 이틀 전입니다. 이 여자가 등장하는 소설 ‘불멸’을 빌려온 것이 오월이었지요. 그러니, 한 두어 달 정도 아녜스는 서랍장 속에 갇혀 지냈습니다. 왜 하필이면 ‘불멸’을 집어 들었을까요? 같이 빌려온 책들과 불멸은 전혀 연관성이 없었습니다. 조던 B. 피터슨의 ‘12가지 인생의 법칙’은 호프집에서 맥주 거품을 입가에 묻히면서 떠들어대는 인지 행동주의자의 궤변이었습니다. 소피스트적 해결책이긴 했지만, 우둔한 저는 혹할 수가 없었습니다. 유명한 것이 꼭 훌륭한 것은 아니듯이 말이지요.


 

저는 어떤 마음으로 밀란 쿤데라의 소설을 학교 도서관 서가에서 끄집어 들었을까요? 이유를 알 수 없는 이유로 그렇게 ‘불멸’을 가지고 왔습니다. 다른 여러 일들을 해결해야 한다는 핑계로 이틀 전에 겨우 책을 읽기 시작해서 어제, 다 읽었지요.


 

아녜스는 재능이 뛰어나지만, 유명해지기를 바라지 않는 여자입니다. 평범하게 회사 생활을 하며 변호사인 남편 사이에 딸 하나를 두고 있지요. 아버지가 오로지 아녜스한테만 유산을 남겼기에 그녀는 그 돈으로 스위스에 혼자 정착하려고 합니다. 평온하고 무탈한 결혼생활, 다정하고 헌신적인 남편, 그리고 똑똑하게 제 앞가림을 하는 딸. 무엇이 문제일까요? 아녜스는 다만, 고독을 그리워했습니다. 교수였던 아버지가 늘 고독을 꿈꿔왔듯이요. 밀란 쿤데라의 소설 속 주인공들이 주로 그렇듯 아녜스도 몰래 만나는 남자가 있습니다. 일 년에 두어 번 정도이지만,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는 채였지요. 나중에 소설 속의 주인공들은 얽히고설켜서 모르는 사이에 지인 관계였던 것이 밝혀집니다만! 어쨌든 인간은 한 치 앞을 모르니까요. 고독을 사랑한 아녜스는 교통사고를 당해서 현장에서 죽고 맙니다. 그리고 이승과 단절된 또 다른 고독의 상태가 되지요.


 

반면, 아녜스의 동생 로라는 엄청난 ‘불멸’을 꿈꿉니다. 치열하고 열정적인 사랑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지요. 그것이 세속적인 ‘불멸’이라고 확신합니다. 로라한테 삶은 육체의 향연이고, 병들고 나이 들고 죽는 것은 두려움 자체이지요. 언젠가 애인과 결별하던 때 로라는 언니 내외한테 죽음을 무기로 쓴 적이 있을 정도입니다. 로라의 열정은 언니의 사망 후 확연히 드러나게 되지요. 그는 형부와 결혼하고 아이를 낳게 됩니다. 이제, 로라의 ‘불멸’에 대한 열정은 자신의 DNA를 가진 아이한테로 옮겨가게 됩니다.


 

위트릴로,

밀란 쿤데라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스물세 살 적입니다. 그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책 한 권을 들고 여행을 떠났지요. 허무와 절망의 감정으로 사로잡히던 그때, 그 책은 신기하게도 내게 속삭여왔습니다. 사비나처럼 해봐. 질펀한 사랑 행위를 하고 나서 바로 남자를 차버릴 정도의 당당함 말이야!

그렇게 사비나를 닮고 싶었지만, 그렇게 되지 못했습니다. 제대로 사랑을 알아차릴 수도 없고, 그러니 사랑이 무엇인지 잘 모르면서 지독하게 아파만 했지요. 아름다운 사랑으로 꾸준히 마음을 나눌 이는 세상에,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내가 사비나가 된 게 아니라 세상이 사비나가 되어 나를 차기만 했습니다.


 

그 이후 오랫동안 밀란 쿤데라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 알싸한 이십 대의 추억 속에서 그는 ‘농담’처럼 ‘소설의 기술’ 속에서 나지막한 음성으로 내가 쓰는 글들을 보며 고개를 가로젓고 있었지요. 이틀 전에야 비로소 알았습니다. 그가 올해 7월 11일, 파리에서 세상과 이별했다는 사실을요. 한동안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빌었습니다. 이미 불멸의 세계에서 호탕하게 웃고 있을 그에게 허공을 메우듯 양손을 흔들었습니다.


 

소설 ‘불멸’에서 괴테 주위를 맴도는 여인 베티나가 나옵니다. 베티나는 괴테를 흠모함으로써 자신도 더불어 유명해지기를 바랬지요. 정작 괴테는 베티나를 대할 때, 엄격한 선 이상을 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오히려 괴테가 마지막까지 정열을 바친 여자는 74세 때, 19살인 울리케 폰 레베초프였지요. 그녀한테 청혼하지만 받아들여지지 못하지요. 불멸은 꺼지지 않는 불꽃이고, 인간들은 그 불꽃이 작품의 영감을 일으키는 연인이나 작품, 인기나 명예에 있다고 착각하지요.  

위트릴로,

이제는 밀란 쿤데라의 소설을 읽어도 아프지 않습니다. 그만큼 제가 자란 것이겠지요. 섣불리 소설 속의 인물한테 초점을 맞춰서 모델링 하지도 않습니다. 꿈은 저한테 그 사실을 알려준 것인지도 모릅니다. ‘불멸’에 등장하는 하늘나라에서 산책하는 괴테와 헤밍웨이처럼, 또 지금 그대를 만난 것처럼, 제가 밀란 쿤데라를 만나면 뭐라고 말을 걸까요?


 

당신의 작품은 무거운 삶이 가벼운 농담이 될 수 있다는 엄청난 거짓을 믿게 만든 무거운 책입니다. 제 삶 속에 파고든 당신과 마음을 나누고 싶습니다.


 

제 말에, 갓 돌아가신 그분이 너털웃음으로 답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허어! 그, 농담도 잘 하시군요! 그래, 나처럼 구십을 넘기면 내 책에 대해 다시 말해보도록 하시오.” 


 


-2023. 7. 29. 시아-
    





 * 이 편지는 어머니에 대한 양가감정을 극복하고 만성 알코올 중독으로부터 해방한 모리스 위트릴로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경계성 인격장애’인 구순이 넘은 제 어머니와 연관되어 치유와 관련한 체험을 공감해줄 위트릴로한테 띄우는 간곡한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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