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룩스 이야기 24] 감옥에 간 자유

by 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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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 간 자유


시아



자유가 갇혔다. 법도 갇혔다. 상식과 양심도 갇혔다. 대신 활개를 치는 것은 부정과 야심과 탄압이다. 슬프고 막막한 채 지냈다. 아침마다 즐기던 클래식 방송도 멈췄다. 곤두세워 듣는 것은 시국의 흐름을 낚아챈 유튜브 방송이 전부였다. 지금은 전시였고, 지금이 계엄사태였다. 도저히 일상을 태연하게 보낼 수가 없었다.

공수처의 만행으로 대통령이 구치소에 자진해서 간 1월 15일, 오십 대 김씨는 분신을 시도했고, 육 일이 지난 뒤 숨지고 말았다. 구속영장이 나온 1월 19일에는 수십 명이 서부지법 안으로 들어가 울분을 토했다. 이 모든 것을 그저 유튜브 방송으로 지켜보았을 뿐이지만, 멀찍이 있지 않았다. 한파가 몰아치던 날씨에 한데에서 웅크리며 밤샘 집회하던 현장에 나가지도 못했지만, 외면하고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온 신경이 그쪽으로 쏠려 있었다. 구치소로 가기 직전에 보도된 대통령의 편지에 묻어난 절절한 마음을 칼럼으로 옮겨 적기도 했다. 이 칼럼은 신문사의 취지와 맞지 않는다며 거부당했다. 신문사의 편집국장 겸 발행인은 사실과 다르다는 이유로 트집을 잡았다. 색깔이 다르기 때문이 아니냐는 내 말에 그는 그렇기도 하다고 했지만, 사실은 그게 삭제 사유의 전부였다. 별 알려지지 않고 창간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인터넷 신문이었지만, 작년 11월부터 매주 칼럼을 게재해오고 있었다. 공정성에 어긋나는 곳에 있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곧바로 그 신문사와 인연을 끊었다. 언론은 객관적이고 형평성 있는 보도라는 사명을 잃은 지 오래다. 새빨간 거짓말로 둔갑을 한 글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절망 끝에서 희망을 찾는다는 말, 의지를 내어 낙관하라는 말이 있지만, 잘 통하지 않는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면 간밤 사이 또 어떤 기막힌 일들이 있었는지 촉각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 분노가 끓어오르는 이들은 법원으로 들어갔고, 사람이 죽었다. 감정조절을 잘하지 못해서라고, 폭도들의 난동이라고 일방적으로 치부해버리는 이들도 있다. 대통령이 옥에 갇힌 것과 자신의 행복은 별개라고 여기는 이들도 있다. 부정선거는 음모일 뿐이고, 부정선거 카르텔은 망상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다. 12월 3일 계엄 당시 한‧미 공조 작전으로 선관위 연수원에서 검거한 중국 국적 간첩 99명을 거짓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 것인가?


명백히 알 수는 없지만, 이것 하나는 분명하다. 이 땅의 대통령이 지금 감옥에 있다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던 대통령이 갇혔으니, 이는 곧 자유가 갇힌 것이다. 대통령의 죄는 내란죄가 삭제된 내란 수괴다.

이런 말도 되지 않은 사실을 두고 나는 망연자실했다. 잘못을 범하지 않아도 감옥에 갈 수 있는 세상, 부정을 파헤치면 보복당하는 세상, 다수가 밀어붙이면 불의가 이뤄지는 세상이 두렵고 슬펐다.


무엇 하나 손에 잡히지 않는 요즘이지만, 겨우 한 권 읽은 책이 있다.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이다. 프롤로그에 성경 잠언 26장 4절에서 5절의 말씀이 적혀있다.


-미련한 자의 어리석은 소리에 대꾸하지 말아라. 너도 같은 사람이 되리라

-미련한 자의 어리석은 소리엔 같은 말로 대꾸해 주어라. 그래야 지혜로운 체하지 못한다.


조지 오웰이 통일노동자당 의용군에 입대해서 스페인 내전에서 참가하고 겪은 것을 쓴 책이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모든 의용군이 위계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원칙으로 삼았다. 물론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은 알았다. 그러나 명령도 뒷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내리는 것이 아니라, 동지가 동지에게 하는 것임을 인식했다. 장교도 있고 하사관도 있었으나,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군사적 계급은 없었다. 계급 명칭도, 계급장도, 뒤꿈치를 소리 나게 붙이며 경례를 하는 일도 없었다. 의용군 내에서 일시적이나마, 계급 없는 사회의 산 표본을 만들어보려 했던 것이다. 물론 완전한 평등은 없었다. 그러나 평등의 수준은 내가 그때까지 보아온 모든 것 이상이었고, 또 내가 전시에 가능하리라고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민음사, 41쪽).”


후반부에 이르러 통일노동자당은 테러 조직으로 선포되고, 조지 오웰은 아슬아슬하게 프랑스로 탈출해서 목숨을 건진다. 조지 오웰은 처음에 스페인 세르베레로 올 때, 부르주아처럼 보이면 안 되었지만, 이제 다시 돌아갈 때는 부르주아처럼 보여야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며 뒤바뀐 세상사를 적어놓았다. 그가 속했던 측에서 보자면, 민족주의자는 파시즘이다. 프랑코 지지자 쪽에서 보자면, 조지 오웰은 위험한 트로츠키주의자였다.


조지 오웰은 자신이 적진을 향해 수류탄을 던진 뒤 상대의 비명을 들었을 때, 가엾은 녀석이라고 혼잣말하면서 막연한 슬픔을 느꼈다고 써놓았다. 이념은 행동을 지배하지만, 인간 자체를 지배할 수는 없다. 올바르고 합리적인 가치 판단을 하게 되면, 그릇된 이념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자유민주주의를 ‘막연하게’ 폄하했던 내 오래된 어리석음을 뉘우친다. 언뜻 보면 모두가 평등하게 나누는 ‘공산주의’가 행복할 것 같지만, 사상누각에 불과한 것을 ‘막연하게’만 여겼던 내 우둔함도 뉘우친다. 이도 저도 보기 싫으니 선거 따위는 사실 필요하지 않다며 ‘막연하게’ 아나키즘을 동경했던 내 허세도 뉘우친다.


이대로라면, 자유민주주의를 바로 세울 수 없어서 기어코 행동에 나선 대통령이 아직 감옥에 있다. 검찰이 구속 기간 연장 신청을 했지만, 1월 24일, 서울중앙지법은 이를 불허했다. 검찰은 결정 난 지 4시간 만에 또다시 구속 기간 연장을 신청한 상태다. 아직 공방은 이어지고 있고, 정의실현은 아득한 것 같기만 하다. 최근 김진홍 목사는 윤 대통령의 부탁으로 추천 구절을 적은 성경을 보내주었다고 한다. ‘카탈로니아 찬가’을 쓰면서 조지 오웰은 성경을 제대로 봤던 걸까? 보고도 이렇게 인용한 걸까? 이 책을 번역한 정영목의 안목으로 해석한 글일까? 이도 저도 다 섬뜩하다. 잠언답지 않다. 미련한 자의 어리석은 소리에는 대꾸도 말고, 대꾸하려거든 같은 말로 해주라고? 그래야 지혜로운 체하지 못한다고?


대한성서공회의 개역 개정 성경에는 잠언 26장 4절과 5절이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미련한 자의 어리석은 것을 따라 대답하지 말라 두렵건대 너도 그와 같을까 하노라.

미련한 자에게는 그의 어리석음을 따라 대답하라 두렵건대 그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길까 하노라.”


어리석은 것을 따라서 대답하지 말되, 어리석은 자의 마음 높이에 어쩔 수 없이 맞춰서 답하라는 말씀이다. 다만, 나도 같이 미련할 것을 두려워하고, 그가 자신을 지혜롭게 여길 수 있다는 사실을 경계하라는 말씀이다. 이 구절의 조지 오웰식 번역은 단연코 오류다. 똑같이 갚아주며 수류탄을 던지고 나서 막연하게 슬퍼하라는 것이 아니라 현명하게 어리석음을 간파하며 그 속에 빠지지 말라는 뜻이다. 잠언 말씀에 비추어 보건대, 대통령이 표방한 대로 ‘유혈사태’는 피하되 공정은 되찾아야 한다.


짙은 어둠의 터널 끝에 존재하고 있는 빛을 떠올려본다. 모든 것에 갇힌 듯해서 참담한 마음을 햇빛에 말려본다. 이런 험난한 시국에 사랑을 말할 수 있을까? 지금이야말로 ‘사랑’을 말할 때다. 나라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나를 사랑해야만 순리대로 흐를 수 있다. 결국, 사랑이 사랑을 불러올 것이다.










* 호모 룩스(HOMO LUX)는 빛으로서의 인간을 일컫습니다. 라틴어로 인간이라는 ‘호모(HOMO)’와 빛인 ‘룩스(LUX)’가 결합한 단어입니다.

* ‘호모룩스 이야기’는 치유와 결합한 시사와 심리, 예술과 문화에 대한 에세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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