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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청아 Oct 12. 2022

20대 청년들에게.

살고 싶다는 농담 - 허지웅

 - 고맙다고 말하고 살기

굉장히 쉬운 일인데 실천하기는 어렵다. 나는 뭐가 그리 아까워서 고맙다는 말을 아끼고 사는 걸까. 받은 감사를 모조리, 또 그대로 토해내는 일도 아니다.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형식적인 고맙다는 말 말고 애쓴 마음에 보답하는 말이면 된다. 정작 나는 그토록 고맙다는 말을 기다렸으면서, 고맙다는 말을 듣고 난 후의 뿌듯함을 왜 나눠주진 못했을까.


20대에 당신의 책을 만날 수 있어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당신이 겪은 시행착오를 제가 겪지 않도록 마음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맙다고 말하면서 살겠습니다. 또 전하고 살겠습니다. 더 많은 청년들이 당신의 메시지를 받고 일어설 수 있도록. 우리가 오래전에 자전거를 타며 배운 2가지, ‘도움을 받는다는 것’과 ‘혼자 중심을 잡는다는 것’을 평생에 걸쳐, 반복할 수 있도록.



살고 싶다는 농담 | 허지웅 저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08월 12일


내가 아는 허지웅은 시니컬의 대명사였다. 그 사람에 대해서 아는 거라곤 티비에 가끔 나온 단편적인 정보밖에 없었으나, 이미 내게 허지웅은 시니컬, 시니컬은 허지웅이었다. 그에게선 차갑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다. 그에게 가까이 가면 옳은 말이지만, 정곡이 찔려 듣기는 싫은 말만 할 것 같아 멀리하고 싶었다.


허지웅은 도움받기를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인생은 처절히 혼자 사는 것이고, 버텨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릴 적 부모가 이혼해 등록금이며, 생활비며, 집세까지 혼자 내며 고시원 생활을 했던 그였다. 스무 살, 혼자 서울에 대학교를 다니며 하루에 알바를 3개씩 했다. 술만 마시면 화가 나서 고시원 바닥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덥고 습한 여름밤, 하나로마트 앞에서 그는 자존심도 버린 채, 술기운을 빌려 아버지께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가 교수로 다니고 있는 학교에서 자녀의 등록금이 지원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긴 통화 연결음 끝에 아버지가 전화를 받았고, 그는 주절주절 사정을 빌었다. 누구도 눈물 없이 들을 수 없었던 그 이야기 끝에 돌아온 아버지의 대답은 “등록금을 줄 수 없다”였다. 그는 고시원 방으로 돌아가 기절해 잠들었다.

다음날 새벽에, 그는 맹세했다.

나는 혼자다. 도와줄 사람이 없다. 나는 부모도 없고 친척도 없고 선배도 없다. 혼자서 해내지 못하면 그냥 끝이다. 우습게 보여도 그냥 끝이다. 내게 두 번째 기회 같은 건 없다.

그 후로는 딱히 별 문제가 없었다. 그저 고시원 밥통에 항상 차있는 쌀밥을 챙겨, 옆 방 아저씨가 내놓은 짜장 그릇에 밥을 비벼먹었다. 그냥 그렇게 살았다.


그에겐 더 이상 창피할 게 없었고, 모든 것은 생존의 문제였다. 악착같이 살아남았고, 버텨냈다. 그리고 성공했다. 그의 저서《버티는 삶에 관하여》의 제목만 보더라도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보인다. 그러던 그에게 또다시 시련이 찾아온다. 2018년 악성 림프종 진단을 받게 되었다. 백혈병으로 분류되는 혈액암의 한 종류였다. 특정 부위에 암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온몸에 퍼져있었다.


그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는 책에 처참하게 묘사되어있다. 일부만 묘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글자만으로 아픔이 전해온다. 구글에 허지웅을 검색하면 머리카락은 물론 눈썹까지 다 빠진 그의 사진이 나온다. 그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미어지지만,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머리털과 눈썹이 사라진 건 고통 축에도 끼지 못했다. 단 하루만 통증 없이 잘 수 있다면 평생 머리털과 눈썹이 없어도 상관없었다.


고통의 나날 속, 그는 어느 날 밤 죽기로 결심한다. 집은 엄마에게, 현금은 동생에게 남긴다고 간단하게 유서를 쓰고, 해골이 크게 그려져 있던 마약성 진통제와 수면제를 모두 먹었다. 그는 죽었다. 죽은 줄 알았다. 꿈인지 아닌지 구분조차 가지 않았다. 위액조차 나오지 않을 때까지 오래, 모든 것을 토해냈다. 운이 좋게도(?) 그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는 그 꿈인지 생신지 몰랐던 시간 안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찾았다. 그는 살기로 결심했다. 그는 반드시 살기로 결심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누군가는 그가 그날 밤에 했던 선택을 하려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그는 살기로 결정하라고 말한다. 


물론 여러분의 고통을 알 수도 없고, 측정할 수도 없지만 살기로 결정하라고. 죽지 못해 절망과 비탄속에서 겨우 겨우 하루를 넘기는 것이 아닌, 자신의 의지에 따라 살기로 결정하라고. 물론 그가 살기로 결정한 이후로 병과 싸우는 것이 거짓말처럼 수월해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전처럼 절망적이지는 않았다.


그 밤을 겪어낸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가장 어둡고 깊었던 그 밤을 버티고 몇 개월이 지났다. 놀랍게도 아프기 전보다 훨씬 건강하다. 얼마 전 그런 생각을 했다. 가장 힘들었던 그날 밤을 버티지 못했다면 나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나는 왜 가족에게, 친구들에게 옆에 있어달라고 말하지 못했나. 말했다면 그 밤이 그렇게까지 깊고 위태로웠을까. 나는 언제나 뭐든 혼자 힘으로 고아처럼 살아남아 버텼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껴왔다. 그러나 나는 동시에 누구에게도 도와달라는 말을 할 수 없는 멍청이가 되고 말았다. 그런 인간은 도무지 아무짝에도 쓸데가 없는 것이다. 그런 인간은 오래 버틸 수 없다. 오래 버티지 못한다면, 삶으로 증명해내고 싶은 것이 있어도 증명해낼 수 없다.


그가 책에 남긴 수많은 메시지 중 나는 딱 두 가지 만을 여러분께 전하고자 한다.

하나는 도움받기, 남은 하나는 피해의식 가지지 않기다.


인생은 처절히 혼자라며, 한평생 버티는 삶을 살아온 그가 20대 청년에게 가장 해주고 싶었던 말은 더불어 살라는 말이었다. 자신과 같은 시행착오를 겪지 말라고. 버틴다는 것이 혼자서 영영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잘 안다고 한다. 그렇기에 당신 옆에 누군가 있다면, 그 사람은 조금도 당연하지 않다는 걸 알았으면 한다. 우리는 모두 동지가 필요하다. 이 글을 보는 당신이 불행하거나 외롭지 않기를 바란다.


피해의식은 괴물이다. 정확히는 피해의식은 괴물을 만든다. 내 불행한 처지를 생각할수록, 남들에게 이해받아야만 하는 사연을 스스로 부여한다. 사연이 나의 책임을 대신 져주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불행과 함께 살 수 있는 논리를 만들어야 한다.


허지웅의 경우에는 다음과 같은 사고방식이었다.

"상처는 상처고 인생은 인생이다." <버티는 삶에 관하여> - 허지웅

사건과 자신을 분리시켜주는 그 말은 정말 허지웅을 별 일 없이 '잘' 살게 해 주었다. 그가 혈액암에 걸리기 이전에도 그는 그 말을 애용했고, 이후에도 애용했다. '별 일'없이 잘 살게 해 준 것이 아닌, 별 일 없이 '잘' 살게 해 주었다.


나의 경우에는 마음이 어수선한 새벽마다 무작정 걸었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걸었다. 지도도 보지 않고, 발길이 닿는 대로 족족 걷기만 했다. 생각이 정리될 때까지 어딘지도 모른 채로, 처음 가보는 길을 걸었다. 


한참을 걷다가 '아, 이제 더 가면 집에 못 돌아가겠다'라는 생각이 들 때쯤 다시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내가 걱정하던 문제보다, 집을 못 돌아가는 문제가 더 컸다.


올 때는 카카오 맵을 켜고 돌아왔다. 길치라서 카카오 맵이 없으면 집에 돌아갈 수 없었다. 갈 때는 아무렇게나 가더라도, 카카오 맵을 켜고 제자리로 다시 잘 돌아오기만 하면 됐다. 내 집은 그 사이 어디론가 도망가지 않았다. 제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그거면 충분했다.


삶은 불행과 행복이 공존하는 것이다. 불행이 없으면 행복도 없다. 모든 이들이 그렇게 말한다. "네가 아직 진짜 불행을 못 겪어봐서 그런 거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겐 죽음의 수용소,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빅터 프랭클도 같은 말을 했다고 전해주고 싶다. 


"너보다 더 힘든 사람 많으니까 참고 견뎌" 따위의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니다. 당신이 처한 상황을 내가 측정할 수도, 측정해서도 안된다. 다만 "문제와 당신을 분리시켜 피해의식과 결별하고 남과 더불어 살아라"라고 말하고 싶다. 상황에 등 떠밀려 아무 선택권도 없었다는 듯 살아가는 것이 아닌, 스스로의 의지로 살아갔으면 한다. 오직 그것만이 삶에 평온을 가져다줄 수 있다.


책에는 미처 소개하지 못한 다른 메시지들도 많이 담겨있다. 꼭 읽어봤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좋은 책을 내준 허지웅에게 다시 한번 감사를 표한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 아우슈비츠 이야기 - 죽도록 힘들 때, 남몰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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