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서평
시련은 왜 존재할까? 신은 왜 시련을 만든 것일까? 시련이 없다면 우리는 더 행복하지 않을까?
나는 답을 알고 있다. 시련은 우리를 성장시키기 위해서 존재한다.
“위선자! 말은 쉽지. 네가 진짜 힘든 일을 안 겪어봐서 그렇다.”
라며 듣기 좋은 말만 하는 나를 책망해도 좋다. 정말 힘든 사람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정말 말도 안 되는 힘든 시련을 겪고 나서 나와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가져왔다. 추가로 부끄럽지만 나의 경험도 보태었다.
나치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1940년대 아우슈비츠 수용소, 사람들은 화물처럼 실려와 일렬로 줄을 서 있었다. 그 일렬로 서있던 화물들은 관리자의 손가락 하나에 의해서 왼쪽 혹은 오른쪽으로 분류되고 있었다. 그들 중 90%가 왼쪽으로 분류되었고 왼쪽 사람들은 수용소 안 대중목욕탕으로 옮겨졌다. 그들에게는 비누가 하나씩 주어졌고 그 비누를 챙긴 채 목욕탕 안으로 빼곡히 들어갔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다 담으면 목욕을 어떻게 하냐는 불만 섞인 목소리를 뒤로한 채 문은 닫혔고, 샤워기에선 물 대신 가스가 흘러나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그들이 받았던 비누의 재료가 되었다.
빅터 프랭클은 최대한 민첩하게 보였고, 다행스럽게도 오른쪽으로 분류되었다. 오른쪽으로 분류된 이들에게는 정말로 목욕을 할 기회가 주어졌다. 그전에 2분의 시간이 먼저 주어졌다. 그 2분 안에 그들은 가지고 있던 물건과 옷을 모두 훌러덩 벗어야 했다. 빅터 프랭클은 그 당시 일생에 걸쳐 연구하고 집필한 과학책 원고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용감하게도 과학책 원고를 보존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의 간곡한 부탁은 오히려 간수들에게 유희가 되었다.
그들은 곧바로 다른 장소로 이동해 몸에 난 털이란 털은 모조리 다 깎아야 했다. 그렇게 그들은 털 한오라기 없이 벌거벗은 몸뚱이만 가지게 되었다. 그동안 살아왔던 삶과 현재를 이어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돈도 명예도, 사회적 지위도, 심지어는 일생에 걸친 원고까지도 모두 박탈당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유리조각을 주워 최대한 깔끔하게 면도를 하는 것뿐이었다. 조금이라도 젊어 보이도록, 조금이라도 쓸모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이후로는 그가 지내온 처절한 삶과 그가 지켜본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제시된다. 그 끔찍한 삶 속에서 누군가는 내려놓았고, 누군가는 악착같이 살아남았다. 살아남는다는 것은 단순히 하루를 연명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들은 정신적으로 살아남았다. 수용소는 신체적으로나 지적으로 원시적인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영적인 곳으로 마음을 옮겼다.
그는 척박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스스로가 어떤 사람으로 남을지는 순전히 자신의 마음(자유의사)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얻었다. 그는 시련을 통해 내면을 다듬었고, 영적 가치를 얻었다. 이를 바탕으로 살아갈 이유를 간직했다. 그는 아내를 생각하며 버텼고, 못다 쓴 원고를 완성하고자 했다. 그는 결국 살아남았고, 시련을 바탕으로 ‘로고 테라피’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그에게 시련은 무의미한 고난이 아닌 내면을 성장시킨 기회였다.
우리는 시련을 그저 힘들고 나를 갉아먹는다고만 생각한다. 얼른 이 시련에서 도망치고 싶은 생각뿐이다. 나 역시도 비슷한 경험을 했던 때가 있다. 열아홉, 수능이 끝나고 재수를 마음먹었다. 1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열심히 수험 준비를 했었다. 그 과정이 얼마나 지치고 힘들었는지 주말에 식당에서 밥을 먹다 우연히 보게 된 ‘6시 내 고향’마저도 마치 ‘무한도전’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끔찍한 사실은 나의 목을 죄듯 다가오는 디데이에 대한 압박감이었다. 스스로가 부족한 점을 알기에 이 끔찍한 수험생활이 반복되어도 좋으니 그냥 차라리 이대로 영영 시간이 멈췄으면 하고 빌었던 적도 있다. 그러한 과정을 거치다 보니 마지막 즈음에 몸도 마음도 흐트러졌는지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고 그 결과 실제 수능에서도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를 얻었다. 결과가 원망스럽지는 않았다. 단지 실력이 아닌 행운을 기대한 나 자신에게 조금 많이 분했다.
그 뼈아픈 노력 속에서 나는 입시에는 실패했지만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에 대해서 배웠다. 옆에 의지할 사람이 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원하는 것을 위해서 얼마나 노력해야 하는지,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치열한지, 실패로부터 다시 일어나는 방법까지. 내게 재수를 후회하냐고 묻는다면 단연코 말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 재수를 통해서 시련을 견디는 법을 배웠고, 내면적으로 많이 성장했다. 다른 힘들 일을 할 때마다, 힘들었던 재수 시절을 기특하게 견딘 나 자신을 생각했다.
버려지는 경험은 없다. 재수 이후 항상 가슴에 새기던 말이다. 나는 언제나 다짐했다. 꼭 악착같이 성장해서 성공하고야 말겠다고. 반드시 크게 성공해서 내가 겪은 시련 덕에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하겠다고. 빅터 프랭클도 비슷한 말을 했다.
“그대의 경험, 이 세상 어떤 권력자도 빼앗지 못하리!”
우리가 겪었던 고통들은 과거로 흘러가 잃어버린 게 아니다. 우리가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조각가이고 우리의 내면은 석고 덩어리이다. 처음에는 단지 뭉텅이일 뿐이다. 우리는 시련이라는 조각칼을 쥐고 석고 덩어리를 깎는다. 그 과정은 굉장히 힘들고 얼마나 오래 걸릴지 알 수도 없다. 힘들다고 조각칼을 내팽개쳐버리면 영원히 조각상을 완성할 수 없다. 그렇다고 석고 덩어리를 험하게 다루면 조각상이 부서진다. 조각칼을 다루는 건 결국 조각가의 손에 달려있다. 부디 예쁜 조각상을 완성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