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을 되찾는 두 번째 인생
내가 태어나 처음 마셔본 술은 맥주였다.
젊은 날의 여름, 대학 시절의 상징처럼 펍에서 생맥주 500ml를 들이켜던 순간의 기분은 지금도 또렷하다.
한두 번 마셨던 소주와 데킬라의 독한 느낌은 오래도록 나를 피하게 만들었다.
그래서였을까.
도수가 낮고, 시원하게 목을 타고 내려가는 맥주는 언제나 나와 잘 맞았다.
그저 맥주가 좋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 세상에 맥주가 라거만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건,
불과 몇 년 전. 비어소믈리에 공부를 시작하면서였다.
그 전까지 나는 라거밖에 몰랐고, 라거만 좋아했으며, 라거가 맥주의 전부인 줄 알았다.
그러니까 나는 맥주가 좋았던 게 아니라, 라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나는 늘 도전정신이 강했고, 인생에 대해 욕심도 많은 사람이었다.
제법 안정적으로 살 수도 있었지만, 28살에 유학길에 올랐다.
스웨덴에서 기후변화 석사를 마치고, 알래스카로 넘어가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나는 한국인 최초로 알래스카에서 기후변화를 전공한 사람이다.
커리어적으로는 하나씩 이루었지만, 그만큼 내 인생의 다른 챕터들은 늦어지기 시작했다.
결혼도, 출산도, 복직도 늘 한 템포씩 뒤에 있었다.
게다가 난임까지 겪으며 아이를 갖는 데에도 몇 년의 어둡고 힘든 시간을 지나야 했다.
그렇게 어렵게 얻은 아이들이었지만, 내 삶은 내가 기대했던 것처럼 즐겁기만 하진 않았다.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출근했고,퇴근하면 부모님과 아이들이 “기다렸어요”라는 눈빛으로 나를 맞았다.
출근보다 더 무서운 ‘집으로의 출근’이 시작되는 시간이었다.
수익의 많은 부분은 아이를 돌봐주는 친정 부모님께 드렸고, 나는 ‘직장인’으로서도, ‘엄마’로서도 계속 부족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능률은 떨어지고, 연구자로서의 나를 믿는 마음도 점점 작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물었다.
“ChatGPT라는 거 들어봤어?” “당신 전공도 한번 물어봐 봐.”
장난처럼 던진 그 말이 내 삶의 방향을 바꾸었다.
내가 청춘을 바쳐 연구해온 분야의 지식이 그 컴퓨터 화면 안에 단 2분 만에 펼쳐지고 있었다.
머릿속이 텅 비는 느낌이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나는 곧, 인공지능에 밀릴 연구자가 되겠구나.’
지금껏 딸의 미래를 기대하며 희생하고 계시는 부모님, 아등바등 사는 아내를 그저 응원하고 있는 남편, 내 품에서 자라는 아이들, 그리고 누구보다 나 자신에게 미안했다.
그래서 멈추기로 했다.
그토록 붙잡고 있던 ‘증명’과 ‘성과’를 내려놓기로 했다.
딸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지금 이 순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에게 더 나은 온기를 주기로 했다.
그리고 다시 묻기 시작했다.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건 무엇일까?’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경험은 어떤 것일까?’
그때 떠오른 것은 감각이었다.
오감, 그리고 육감.
그 감각을 통해 내가 가장 나다웠던 순간은 바로 맥주를 마실 때였다.
라거밖에 모르던 시절이지만, 그 잔을 입에 댈 때,
향이 피어나고, 탄산이 터지고, 목으로 넘어갈 때의 온도와 여운이 내 안의 감각을 깨워주는 기분이었다.
그 순간들이, 내 감정의 잔해를 붙잡아주었다.
그래서 나는 맥주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게 바로, 비어소믈리에로서
나의 두 번째 인생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이 글은 브런치북 시리즈 「나는 비어소믈리에가 되기로 했다」 중
1편 / 왜 나는 맥주를 공부하게 되었는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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