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남은 너

“이별은 끝이 아니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by kj

프롤로그
어느 날, 너는 이불 위에 조용히 꼼지락대며 내게 왔어. 그렇게 우리 둘의 이야기가 시작됐어. 너무 작고 연약했던 너를 품에 안고 느낀 그 첫 떨림을 나는 아직도 기억해. 처음엔 누나가 지어준 '사랑이'라는 이름이 낯설었지만, 곧 그 이름만큼 따뜻하고 순한 네 마음을 알게 됐어. 그리고 그 이름은 어느새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단어가 됐단다

1장 – 너를 처음 만났던 날

그날 나는 집에 없었어.
엄마와 누나가 유기견 구조 활동을 하시는 분에게 연락을 받고
작고 어린 강아지 한 마리를 데려오셨다고 했다.

집에 돌아와 문을 열었을 때,
낯선 기척 대신 아주 조용한 움직임이 느껴졌어.
방으로 들어가보니, 이불 위에
너무 작고 말간 아기 강아지 한 마리가
몸을 말고 꼼지락대고 있었지.

바로 너였어, 사랑아.

어떤 소리도 내지 않았고,
나를 경계하는 기색도 없었어.
하지만 그 조용한 기척은
낯설기보단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것처럼
이상하게 익숙했어.

엄마가 “누나가 이름 지었어. '김사랑'이래”라고 말했을 때,
나는 고개를 끄덕였어.
‘사랑’이라는 단어가 이상하게
너한테 너무 잘 어울렸거든.
무슨 사연이 있었든
앞으로는 그 이름처럼만 살았으면 좋겠다고
조용히 마음속으로 생각했어.

그때는 몰랐지.
그 조용한 이불 위의 네가
내 인생의 중심이 될 줄은.

2장 – 우리가 함께한 시간들

사랑아,
너와 함께한 시간은 생각보다 길었고,
그보다 훨씬 더 빠르게 지나갔지.
그 많은 날들 중,
딱 하루만 고르라 해도
도무지 하나를 선택할 수 없을 만큼
너와의 모든 하루는 특별했어.

넌 무척 조용한 아이였어.
애교가 많거나, 누군가의 무릎에 올라타는 일은 거의 없었지.
대신 너는... 네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했어.
내가 울고 있으면,
조용히 다가와 눈에 후- 하고 바람을 불어주던 그 순간들.
소리 없이 다가와 옆에 앉아
가만히 바라봐주던 너의 눈.
그 눈을 볼 때면
내 슬픔이 작아지는 것 같았어.

밖에 다녀오면 누구보다 격하게 반겨줬지.
꼬리를 흔드는 게 아니라,
온몸이 흔들릴 만큼 기뻐해줬어.
그리고 나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히 네 자리로 가서 몸을 웅크리고 누웠지.
참, 사랑이답다 싶었어.
조용하고 깊은 아이.

네가 가장 좋아하던 건
작은 초록색 축구공이었지.
초록 바탕에 검정 포인트가 박힌
그 공을 보고선
눈빛이 달라졌어.
네가 몇 안 되게 아이처럼 변하는 순간이었거든.
그 공을 물고 와서 나를 빤히 보던 너, 기억나?
“놀자”라는 말은 하지 않아도
네 표정 하나로 다 전해졌어.

사진으로 남은 것보다,
내 기억 속 네 모습이 더 선명한 게 신기해.
네가 웃을 때,
살짝 올라가던 입꼬리.
살랑살랑 흔들리던 꼬리.
가끔 귀찮다는 듯 눈 흘기던 너의 표정까지.

그 모든 게, 지금도 내 안에 살아 있어.

사랑아,
사람들은 “강아지와 보낸 시간은 짧다”고들 말하지.
근데 아니야.
너와 보낸 그 시간은
내 인생 전체를 따뜻하게 만든 시간이었어.
너와 함께한 순간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지금도 사람으로 남아 있을 수 있어.

네가 없었더라면
나는 지금보다 훨씬 어두운 사람이 되었을지도 몰라.

너는 단지 강아지가 아니라,
내 곁에 조용히 앉아 있던
하나의 따뜻한 우주였어.

3장 – 이별을 준비하지 못한 시간

처음엔 그냥,
조금 피곤한가 보다 했어.
식욕이 떨어지고
누워 있는 시간이 늘어나긴 했지만
‘우리 사랑이는 원래 조용한 아이라 그런 거겠지’
하고 넘겼어.
지금 생각하면 그게 얼마나 어리석고 무심했던 건지…
그땐 정말 몰랐어, 사랑아.

엄마가
“사랑이 얼굴이 많이 아파보이지 않아?” 하고 말했을 때,
나는
“무슨 소리야, 얼마나 귀엽고 똘망똘망한데”
라고 대답했어.
그 말이 지금도 귓가에 남아,
계속 날 찌르듯 돌아와.

병원에서 네 상태를 들었을 때,
나는 숨이 막혔어.
수술도, 항암도 어렵다고,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고 했지.
그 순간 나는,
세상이 조용히 꺼지는 소리를 들었어.
그리고 한 발 늦은 후회들이
밀물처럼 들이닥쳤어.

사랑아…
왜 그땐 더 많이 안아주지 않았을까.
왜 더 많이 들여다보지 못했을까.
왜 더 일찍 알아채지 못했을까…

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
너답게.
아프다고 투정도,
불안하다고 징징대지도 않았어.
그저 조용히,
예전처럼 조용히 나를 바라봤어.
그러니까 나는 더 아팠어.
넌 나를 걱정하고 있었는데,
나는 그제야 비로소 너를 들여다봤거든.

병원에서 치료를 받지 않기로 한 결정은
힘들었지만… 어쩌면 너와 나 둘 다
조용히 서로를 받아들이는 방식이었는지도 몰라.

그날 이후,
나는 너를 볼때마다 네 숨소리를 가장 먼저 확인했어.
조금이라도 네가 평온해 보이면
그걸로 안도했고,
눈빛이 흐려져 있으면
속으로 무너졌어.

너는,
그 모든 순간에도
나를 안심시키듯
눈을 맞춰주고
가끔 꼬리를 흔들었고
작은 숨소리로 대답해줬지.

네 마지막 산책날, 바람은 불었지만 따뜻한
햇살이 참 좋았어.
그 따뜻한 빛 속에서
넌 나를 바라보며 웃었고
나는 그 미소를 잊지 않으려
애써 눈을 부릅떴어.
그날이 마지막이 될 거라고는 정말 상상도 못했어.
꽃이 더 피면 또 오자고 너와 약속했고
너는 당연히, 내일도 내 옆에 있을 줄 알았어.

그래서 더 아팠어.

사랑아,
나는 아직도 그때를 떠올리면
심장이 조용히 저려와.
그 고요함 속에 깃든 이별의 기운을
나는 끝까지 눈치채지 못했고
사실은… 애써 외면했는지도 몰라.

나는 이별을 준비한 적 없어.
아니,
아무리 시간이 주어졌어도
준비할 수 없었을 거야.
왜냐하면
너는 ‘이별’이라는 말로
끝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으니까.

4장 – 너를 보내던 날의 기억

2025년 3월 25일.
오후 10시경.

나는 그때,
너를 잃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건 너를 떠나보내는 순간이었어.
아직도 ‘죽음’이라는 말은
너한테 쓰고 싶지 않아.
그건 너무 딱딱하고 차가운 말이잖아.
너는 그보다 훨씬 따뜻하고,
훨씬 섬세한 존재였으니까.

그날도 너는 조용했어.
끝까지, 끝까지...
네 방식대로.
힘들다고 소리내지도 않고
떠나간다고 눈을 피하지도 않고
마지막까지...
가만히, 내 곁에 있어줬어.

나는 계속 너를 쓰다듬었고
계속 너를 불렀고
계속 기도했어.
혹시라도 조금 더 머물러주지 않을까 싶어서
기도처럼 말을 걸었어.
“사랑아, 괜찮아... 괜찮아... 오빠가 있잖아.”

하지만 사랑아,
너는 이미 조금씩
가벼워지고 있었던 것 같아.
마치...
내가 더는 너를 아프게 하지 못하도록
스스로 준비하고 있었던 것처럼.

그 순간 나는 깨달았어.
이제 내가 너를 잡는 손을
놓아야 한다는 걸.
그게…
네가 아픔 없이 떠날 수 있도록
내가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사랑이라는 걸.

사랑아,
네 마지막 숨결을 느꼈던 그 밤,
나는 너를 꼭 안고 있었어.
지금도 내 팔 안에 있던 네 체온을 기억해.
묵직하면서도 정겨운 너의 몸무게..
천천히 식어가던 너의 온기.

나는 너를 보내고도
너를 계속 불렀어.
정말로 믿기지 않았거든.
몇 분 전까지 내 품에 안겨 숨 쉬던 네가
그렇게 조용히 멈춰버릴 수 있다는 게.

그날 이후
나는 무언가가 비어버린 사람이 되었어.
아무리 해도 채워지지 않는 자리를 품고 살아가야 한다는 걸
조금씩, 아주 조금씩 받아들이게 되었지.

그리고 사랑아,
너를 떠나보내고 난 후—
나는 마지막 인사를 전하지 못한 내 마음을 담아
너의 발에 붉은 실을 감아줬어.
그 실에 내 머리카락을 함께 묶었어.
끊어지지 않도록.
영원히 연결되어 있도록.

그건 오빠의 약속이야.
끝난 게 아니라
다시 만날 때까지 잠시 너를 보내는 거라고.
우린 반드시 다시 만나.
그 실이 너와 나를 잊지 않게 해줄 테니까.

5장 – 사랑이 없는 세상을 살아낸다는 것

새벽에 눈을 떠
네가 없다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할 때,
그 순간이 하루 중 가장 힘들었어.
몸은 일어나지만 마음은 움직이지 않았고,
일어나자마자 느끼는 건 ‘허전함’이 아니라
상실감이었어.

사랑아,
너 없이 맞는 나날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목에 걸려 있던 너의 털로 만든 목걸이를
몇 번이나 만지작거렸는지 몰라.
입술을 붙여 속삭였어.
“사랑해. 사랑해.”
그 말을 하지 않으면
숨이 막힐 것 같았거든.

사람들은 말하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지는 건
‘너 없는 삶’이 아니라
너를 그리워하는 내 모습이었어.

그리움은 어느새
내 일상에 녹아 있었고
나는 매일 너를 향한 편지를 쓰기 시작했어.
그 편지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늘로 향한다고 믿었어.
편지를 쓰는 시간만큼은
네가 옆에 앉아 내 말을 듣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누군가는 지나쳤을지 모를 작은 구름,
너의 털결과 닮은 무늬 하나에도
나는 숨이 턱 막히곤 했어.
너와 함께한 장난들,
늘 너를 맞이하던 주말,
네가 좋아하던 간식,
모든 것이 조용히 나를 흔들었지.

하지만 사랑아,
나는 조금씩
내 그리움에도 리듬이 생긴다는 걸 알게 됐어.
처음엔 쏟아지듯 아팠던 감정이
조금씩…
조용히 스며드는 감정이 되었어.
울음을 참고 참다가,
아주 가끔 웃을 수 있는 날도 생겼고
네 사진을 보다 “예쁘다” 하고
눈물 없이 말할 수 있게 된 순간도 있었어.

그건 너를 잊은 게 아니라,
너를 내 안에 조용히 자리잡게 한 거야.

그리고 한 가지 더—
나는 너의 이름으로
기부를 했어.
네가 쓰던 방석과 담요,
남은 간식들을
가여운 친구들에게 전했어.
기부자의 이름은 ‘김사랑’.
너는 떠났지만
여전히 누군가를 도와주는 아이야.

사랑아,
이 세상에 너는 없지만
내 삶에 너는 있어.
앞으로도 계속 있을 거야.
나는 매일 네 생각을 하며 살아가고 있어.
그게 내가 너를 사랑했던 방식이고,
앞으로도 사랑할 방식이야.

6장 –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으니까

사랑아,
나는 너를 보내는 순간부터
다시 만날 날만을 기다리기 시작했어.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분명히 그날이 올 거라고,
나는 단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어.

밤하늘을 올려다볼 때마다
저 구름 어디쯤엔
너의 발자국이 새겨져 있을 것 같았고,
너무 보고 싶어 눈 감고 중얼거릴 때면
정말로 옆에 와 있는 것 같았어.

너와 나,
이미 헤어진 사이라 말하지 않을게.
우린 단지
서로의 세상이 다를 뿐이야.
하늘과 땅,
그 차이 하나만 있는 거야.

나는 믿어.
언젠가,
내가 이 생을 다 살아낸 어느 날
너는 예전처럼
꼬리를 살랑이며
나를 향해 달려올 거라고.

그때 나는
먼저 달려가
너를 안고
말할 거야.

“울애기, 잘 있었어?
많이 기다렸지…
이젠 정말 잘할게.”

사랑아,
그날을 기다리며
나는 오늘도 살아.
네가 걱정하지 않도록,
네가 자랑스러워할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어.

그리고 매주 토요일,
나는 너를 만나러 가.
사진 속 네 얼굴을 마주하며
웃고, 울고,
다시 사랑하고 돌아와.
그 시간은 내가 세상과 연결된 유일한 창이자
하늘과 맞닿는 문이야.

그 문 너머엔
언젠가 네가 나를 마중 나올 거야.

그러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줘.
조금만 더.

나는 매일
너와 다시 만나는 날을 향해
한 걸음씩 가까워지고 있어.

그게 내 삶의 의미고,
내가 이 세상에 남아 있는 이유야.

7장 –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남은 너

사랑아,
너는 이제 더 이상 내 곁에 없지만
널 부르는 이 이름은
여전히 내 삶 곳곳에 살아 있어.

김사랑.
처음엔 네게 어울릴까 망설였던 이 이름이
이젠 내 하루를 살아가게 만드는
기도 같은 이름이 되었어.

네가 남기고 간 건 물건이 아니야.
사진도, 장난감도, 네 털이 담긴 목걸이도 아니야.
가장 크게 남은 건
사랑이라는 감정 그 자체야.

사랑이 너를 통해
나는 어떤 슬픔도 피하지 않고 마주할 수 있게 되었고,
어떤 하루도 ‘그냥’ 지나치지 않게 되었어.
너와 함께한 12년은
단순히 반려견과의 시간이 아니라
내가 한 사람으로 깊어지고, 단단해지고,
부드러워진 시간이었어.

나는 여전히 울애기를 보고 싶어하고,
너를 그리워하고,
가끔은 여전히 서러워서 울기도 해.
하지만 그 눈물 속에는
이제 아픔뿐만 아니라
고마움도 함께 흘러.

왜냐하면 나는 알아.
네가 내게 얼마나 큰 사랑이었는지.
그리고 그 사랑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사랑이라는 이름,
그건 이제 단지 너를 부르는 소리가 아니라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되었어.

사랑이,
넌 지금도 내 삶에 있어.
마음 속 중심에 조용히 앉아 있어.
그리고 앞으로 내가 살아가는 모든 시간 위에
늘 네 이름을 덧입히며 살아갈 거야.

그래서,
이 이야기는 ‘끝’이 아니야.
그저
너라는 존재가
내 안에서 영원히 시작되는 순간일 뿐이야.

에필로그

널 보내고 나서야 사랑이 무엇인지, 정말 알게 됐어. 이 세상에서 가장 순수하고 뜨거운 감정이었단 걸.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사랑아… 그때까지 꼭, 웃으며 기다려줘. 오빠가 한아름 사랑을 안고 갈게.

사랑해, 김사랑.

“우리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매주 토요일, 우리는 여전히 만나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