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휴직. 이거 보통이 아니구나?
많은 여성들이 아이를 낳고 육아 휴직을 했을 때 빨리 복직하고 싶어 한다는 말을 여기저기서 많이 들었다. 집에서 말 못 하는 아기를 돌보고 키우는 것이 직장을 다니면서 일하는 것보다 더 힘들다는 이야기였다.
직장에서 근무할 때에도 선배들 중 몇 명도 출산을 앞둔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속으로는 '진짜 그럴까? 아기 보는 것보다 일하는 게 더 힘들지 않나?'라고 생각하며 반신반의했었다. 그런데 정말로 내가 복직을 빨리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당사자가 되었다.
복직을 빨리 하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했던 것은 아이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아직 태어난 지 30일이 채 되지 않은 신생아인 아들을 키우는게 여간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당연한 소리였다. 태어나서 나도 엄마 노릇을 해보지 않은 첫 아이의 초보 엄마였으니까.
나는 모유수유에 대해 준비와 공부가 부족했던 탓인지 생각보다 모유수유하는 게 너무너무 힘들었다. 산후조리원에서 지내는 동안 모유수유를 하네 못하네 하면서 남편을 붙들고 하루 걸러 엉엉 울면서 지냈다. 내 스스로가 힘들다고 모유수유를 포기하면 우리 아기한테 못할 짓을 하는 것 마냥 너무 미안하기도 했지만 처음 겪어보는 가슴 불편감과 통증에 몸서리치기도 했었다. 끝없는 내적 갈등 속에서 신생아 기간 동안만이라도 모유수유를 해야겠다는 일념하에 억지로 모유수유를 해낸 뒤 나는 단유 후 아이한테 분유 수유를 시작하고 할만큼 했다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모유수유 에피소드가 마무리되면서 그다음 등장한 것은 바로 수면 교육. 결론적으로는 지금은 수면교육을 포기한 엄마가 되었지만 산후조리원 퇴소 후 집에 돌아와서부터는 아이한테 수면교육을 행한다고 친정 엄마와 대판 싸우기도 했다. 아직 어리고 어린 아기를 안아서 재워야 한다는 친정 엄마와 그렇게 안아 재워버릇하면 나중에 더 커서도 안아 재워야 한다며 울어도 안아주지 않고 눕혀 재워야 한다는 어설픈 나의 의견이 반복적으로 부딪혔다. 결국 친정 엄마는 주 양육자인 나의 의견을 존중해주기로 하면서 갈등은 사그라들었다. 사실 지금도 그렇지만 영유아 아들을 육아하면서 제일 어려운 건 재우는 일인 것 같다.
수면 교육 관련 책이나 여러 매체에서는 아기가 졸릴 타이밍을 맞춰 잘 재우면 된다는데 그 타이밍이 언제인지도 잘 모르겠고, 아이가 우는 게 배고파서 우는 울음인지, 졸려서 우는 울음인지도 모르니 나도 답답했다. 아이가 낮잠에서 깨면 또 다음 낮잠을 또 준비해야 한다는 두려움이 밀려오기도 했었다. 아이는 너무 예쁘지만 의사소통도 안될뿐더러 이때에는 아기와의 교감도 잘 되지 않는 시기였기에 더 힘든 것 같았다.
어느 엄마나 마찬가지겠지만 첫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은 맨 땅에 헤딩이라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모든 게 서툴다. 사실 나는 출산 전 여러 이유로 인해 친정 부모님과 살림을 합쳐 친정 엄마의 도움을 받고 있지만 그래도 나 혼자 나름대로 고충이 있긴 했다. 내가 잘 모른다고 친정 엄마가 100% 다 정답을 알고 도와주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이런 하루하루를 겪으며 왜 선배들이 육아 휴직을 하며 빨리 복직을 하고 싶어 했는지 알겠다 싶었다. 아이는 말도 안 통해, 하루 종일 잠자다 배고프다고 울고, 졸리다고 울고, 기저귀가 축축하다고 울고 하는 것이 짧은 시간 내 몇 번이고 반복되고 밤에는 잠도 푹 못 자기 때문에 너무 피곤했다. 조리원에 있을 때가 천국이라는 말은 이래서 생겨났구나 하면서 체감하기도 했다.
이렇게 아기를 키우는 게 힘들어서 복직을 빨리 하고 싶은 것도 있었지만, 나는 사실 나의 새로운 역할인 '엄마'라는 자아가 낯설어서 그런 것이기도 했다.
여태껏 살아오면서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며느리, 어느 직장의 구성원으로만 살아왔는데 이제 어느 생명의 '엄마'라는 것이 생소했다. 그리고 육아휴직을 하는 동안에는 경제활동을 하지 않아 내가 스스로 돈을 버는 사람이 아니라는 '공허함'을 느꼈다.
비록 직장에서 매달 소정의 육아휴직 급여가 나오지만 그걸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매우 소정의 금액이었기 때문이었다. 직장으로 출퇴근을 하면서 월급을 받는 행위가 없어지니 생산적인 활동을 하지 못하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현재 나의 상황으로서 이 생산적이지 못하다는 시간을 어떻게 사고 전환을 할 것인가에 대해 찬찬히 고민했다.
첫째. 나는 위대한 '엄마'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계속해서 되뇌었다. 새 생명을 탄생시키고 기르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이냐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우리 엄마가 나를 이렇게 멋진 사람으로 키워냈듯이 나도 내 아들을 멋지게 기르고 키워내는데 절대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보다 더 큰 생산적인 활동은 없다고 생각을 바꿨다. 이렇게 생각을 바꾸고 나니 훨씬 마음이 가벼워졌다. 세상에 태어나 나라는 사람이 전부인 우리 아들을 길러내는 이 시간이 정말 최고로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시간인 것이다.
둘째. 육아 휴직을 하는 동안 책을 많이 읽기로 목표를 정했다. 프리랜서나 각종 직종에 따라 집에서 갓난아기를 키우며 경제활동을 하는 엄마들도 있겠지만 나는 집에서 경제 활동을 하기엔 어려운 직종이다. 다른 온라인 부업들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독서에 집중해 보기로 했다.
사실 틈만 나면 핸드폰을 보거나,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보거나 하면서 쉬는 시간이 많았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며 쉬면 정말 편하지만 눈도 아프고 공허한 그 뒤끝이 달갑지는 않았다.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영상을 통해 내게 도움이 되지 않는 알맹이 없는 내용을 보며 시간을 보내는 나를 상상하면 스스로 바보같고 안타까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차라리 책을 읽고 짧게나마 어떤 생각을 했는지 기록을 해보기로 했다.
많이 읽는다는 것을 목표로 했지만 구체적인 숫자는 정하지 않았다. 쉽게 표현해서 '많이 읽기'이지 틈날 때마다 독서를 해보기'로 목표를 삼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육아휴직 하는 동안에는 거창한 목표는 없다. 아들 잘 키워내고 책을 많이 읽는 것이 휴직기간의 내 목표이다.
'복직을 빨리 하고 싶다'라는 생각은 아들이 2개월이 될 때까지 종종 생각했었다. 하지만 3개월이 되고 4개월이 되고 점점 시간이 지나니 아들과 교감을 어느 정도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나를 보고 빵긋빵긋 웃는 그 미소를 보고 있노라면 괜히 아들에게 미안해졌다. 이렇게 '이쁜 너를 두고 어떻게 회사에 나가 일을 하겠어'라며 복직을 생각했던 내가 너무하다 싶었다. 지금은 아들이 7개월이 되었다. 서로 합을 맞춰가는 법도 어느 정도 터득한 것만 같다. 사실 나만 잘하면 되는 것인데 내가 아들을 낳기는 했어도 다루고 키우는 법을 몰랐으니 그 과정에서 생겼던 답답함과 힘듦이 나를 복직의 세계로 종용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한다.
이제는 생각이 살짝 바뀌었다. 올해 11월이면 나는 복직을 해야 한다. 휴직 후 8개월의 시간이 흘렀으니 전체 휴직 기간 중 절반이 지나가고 이제 7개월의 시간이 남았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나와 아들의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 몸은 고될지라도 소중한 이 시간을 좀 길게 보내고 싶다. 육아휴직이 천천히 끝나기만을, 복직하는 순간이 천천히 오기만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