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간호사의 근로일지
모든 사람들이 위급한 일이 생겨 병원에 찾게 되면 제일 먼저 찾는 곳은 응급실이다.
단순히 손가락을 베어 오는 사람부터, 심폐소생술이 필요한 심장마비 환자까지 다양한 환자들이 방문한다.
응급실을 방문하는 환자들을 보면 곁에 가족이나 친구 등 누군가가 같이 내원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주 호소(chief complain)가 경미한 증상 때문에 오는 것이라면 (예를 들어 칼에 손가락을 베였다든지, 단순히 열이 난다는지 등) 환자들이 보호자 없이 혼자 내원하는 경우가 많지만, 혼자 외출했을 때 우연찮게 교통사고가 난다던가 심장마비가 발생하는 등의 사고도 생겨 응급실에 방문하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 신분증이 없다면 매우 난감하다.
보호자 없는 상태에서 신분증까지 없다면 불의의 사고가 생겨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119 대원들에 의해 응급실에 방문하게 된 경우, 신분증이 없으면 접수가 지연될 뿐 아니라, 신원 파악이 되지 않는다. 또한 보호자를 찾는데 어려움이 생기고 의료진들이 보호자에게 설명이 필요하거나 동의가 필요한 상황 등이 발생하면 진료가 차질이 생길 수 있다.
신원 파악이 되지 않는 사람을 내가 근무하는 병원에서는 성별에 따라 ‘미상남’이나 ‘미상녀’로 접수한다. 그리고 외모적으로 나이가 몇 살인지 짐작해서 20대, 30대, 40대 등으로 접수한다. (예를 들어, 신원 파악되지 않는 60대로 보이는 여자 환자라면 원무과에서 ‘미상녀(F/63)’으로 전산에 접수된다)
요즘 사람들은 ‘경찰의 도움으로 지문 채취해서 신원을 파악할 수 있지 않아요?’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경찰의 도움으로 신원미상 환자의 지문을 채취해 신원을 파악하는 일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한창 의료진들의 진료가 진행되는 틈에 경찰을 불러 지문을 채취하는 일은 쉽지 않을뿐더러, 경찰이 지문을 채취해 간다 하더라도 신원을 파악하는 것이 그리 신속하게 진행되지 않았다.
어느 나이트 근무였던 날. 응급실로 출근하니 이미 이브닝 번 동료들의 CPR(심폐소생술)이 한창 이루어지고 있었다.
아직 인수인계를 받기 전이었기 때문에 어떤 환자인지 궁금해서 미리 컴퓨터로 전산을 확인하니 CPR을 진행하고 있던 환자의 이름은 ‘미상남’이었다.
저녁 8시가 넘은 시간에 교통사고로 발생한 CPR 건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지인도 없이 혼자 있던 상황이었고, 그의 소지품에는 신분증이 없었다고 했다.
나는 그날 CPR 환자를 인수인계받아 담당해야 했던 업무였기에, 부서 내 전체 인수인계가 끝나자마자 소생실로 들어가 이브닝 번 간호사로부터 CPR 환자를 인계받았다.
보통의 경우, CPR을 진행할 때 오랜 시간 심폐소생술을 해도 환자의 소생 가능성이 없다면 응급의학과 당직 교수가 보호자들한테 상태를 설명하고 보호자들이 심폐소생술을 중단하겠다고 하면 CPR은 끝이 난다.
하지만 이미 그 환자는 오랜 시간 CPR을 진행했지만 한 번도 심장이 돌아오지 않았던 상태였다. 내가 인수인계를 받자마자 마침 당직 응급의학과 교수님은 소생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여 심폐소생술을 끝내고 사망선고를 했다.
이제 사망한 환자를 장례식장 영안실로 안내해야 하는데, 신원을 알지 못하니 보호자도 찾을 수 없는 상태. 결국 응급의학과 당직 의사들은 경찰에 연락하여 신원 파악 요청을 했다. 사망한 환자의 몸에 있던 온갖 의료장비들을 제거하고 정리하면서 보니 그 '미상남' 환자는 일용직을 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곧이어 인근 경찰서에서 경찰들이 응급실로 와서 사망한 환자의 지문을 채취해 갔다.
미상남의 신원이 파악될 때까지는 함부로 장례식장이나 영안실로 보낼 수 없었다.
몇 시간 후, ‘미상남’의 신원이 밝혀졌지만, 연락할 가족들은 아무도 없는 상태라고 경찰은 전해왔다.
의료진의 결정으로 일단 신원이 밝혀진 '미상남' 환자는 본원 장례식장에 전화하여 '사망하신 상태이나 연고자라 없으니 일단 영안실로 모셔달라'라고 전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영안실 직원이 '미상남' 환자를 장례식장으로 모시고 갔다.
그분을 보며 그의 죽음을 슬퍼할 가족이 없는 것도 불쌍했지만, 만약 내 가족이 그런 일을 당했는데 신원 파악이 늦어져 한참 뒤에야 끔찍한 소식을 전해 듣는다면 어떨까 상상을 해봤더니 너무 무서웠다.
그래서 나는 가족들에게 항상 ‘꼭 신분증을 가지고 외출하라’고 당부한다. 그러면 무슨 일이 생긴다 해도 가족들에게 연락이 되는 시간은 지문 채취해서 신원 파악하는 시간보다 빠르지 않을까 싶다.
만약 현대 과학 기술이 더 발달한다면 신분증이 없이 생체정보만으로 신원 파악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더 줄어들 수 있을까 하고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그게 가능하다면 이런 위급한 상황에 좋을 수 있겠지만, 어찌 보면 우리의 개인정보를 쉽게 노출될 수 있는 위험성이 있으니 양면의 칼날이지 않은가 싶다.
어쨌든 항상 나는 내 가족에게, 특히 부모님에게 ‘외출 시 신분증 소지’의 중요성을 매일 강조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