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간호사의 근로일지
평일 데이 근무를 하던 날.
응급실에는 이미 적잖은 숫자의 환자들이 진료를 받고 있었다.
어떤 70대의 할머니가 119 대원들과 함께 이동 침상으로 실려 들어왔다. 그런데 할머니의 외모가 심상치 않다. 특히 머리에 둘둘 둘려있는 보자기가 시선을 강탈했다.
이 날 할머니는 머리를 볶기 위해 동네 미용실을 갔다고 한다. 할머니들이 다니는 미용실 특징 중 하나가 머리카락을 빠마 롯드에 말아놓고 기다리는 시간 동안 자유롭게 미용실 밖을 드나들 수 있다는 점 아닌가. 아마 할머니도 빠마 롯드를 머리에 말고 수건과 보자기를 둘둘 두른 채 잠시 미용실 밖으로 외출을 했던 것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어지러움이 심하게 찾아왔다고 했다. 너무 심했던 나머지 혼자 119에 전화를 해 응급실까지 들어오게 된 것이었다. 다행히 기억을 잃거나 하는 등의 실신 증상은 없었고 의식은 명료했다. 할머니 옆에는 보호자가 없었지만 다행히도 할머니의 딸이 연락이 되었다며 응급실로 곧장 오고 있다고 했다.
응급의학과 의사가 할머니에게 문진을 한 뒤 처방이 내려졌다. 기본적인 수액 처방과 피검사와 엑스레이, 그리고 뇌를 확인하는 CT가 처방이 났다. 처방을 확인한 뒤 후배 간호사는 필요한 물품들을 챙겨 할머니에게 간호 처치를 하러 갔다. 다행히 할머니의 따님 되는 중년의 여자 보호자도 곧 도착했다.
보통 응급실에서 환자들은 수액을 맞고 피검사를 하는 처치가 끝난 뒤 영상검사를 진행하게 된다. 환자가 침상에서 대기하는 동안 간호사들은 환자들의 중증도와 상태에 따라 각종 엑스레이와 CT검사의 순서를 정해 조무기사에게 알려준다. 조무기사는 배정된 순서에 따라 환자들을 처방에 맞게 엑스레이실과 CT실에 환자를 이송해 검사를 진행하고 다시 응급실 내 배정된 침상으로 환자를 모셔온다.
할머니도 앞서 말한 순서대로 팔에 수액을 맞으며 피검사를 진행한 상태였다. 이제 남은 처치는 뇌 CT와 엑스레이 검사였다. 그런데 불현듯 내 눈에 들어오는 할머니 머리에 둘려있는 보자기.
뇌 CT를 찍으려면 머리에 장신구가 아무것도 없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 환자들이 뇌 CT가 처방이 난다면 머리핀을 제거하고 검사실로 보낸다. 그래서 이번 글의 주인공인 할머니도 뇌 CT를 찍으려면 빠마 롯드를 빼내야만 했다.
나는 일단 할머니와 보호자인 딸에게 설명을 하러 갔다. 소중한 시간과 돈을 들여 말아 놓은 빠마지만 지금은 이것들을 다 제거해야 한다고, 그래야 머리 상태를 보는 검사를 할 수 있다고 말이다. 다행히 할머니와 딸은 큰 저항 없이 바로 수긍을 했다. 그런데 도대체 이 빠마 롯드들이 몇 개나 되는 건지.. 보호자 한 명이서 하기에는 조금 손이 부족해 보였다.
나는 그래서 바로 장갑을 꼈다. 할머니의 빠마 롯드를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머리를 예쁘게 롯드에 마는 게 아니라 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니까 어렵지 않은 일이기도 하고 할머니의 검사가 지체되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나는 할머니의 머리에 빼곡히 말린 롯드를 풀면서 말했다. 이거 다 아까워서 어쩌냐고. 기껏 말아놨는데 머리 이상하게 되면 어쩌냐고. 할머니는 머리는 그냥 다시 하면 된다며 조금 쑥스러운지 허허 웃으시며 대답했다. 나는 미용실 사장님이 할머니가 지금 응급실 온 거 아시냐고 물었다. 그제야 할머니와 딸은 미용실에 전화해야겠다고 했다. 할머니의 머리카락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되자 빠마약의 냄새가 강하게 코를 찔렀다.
축축한 할머니의 머리를 그냥 둘 수 없기에 없는 수건 대신 응급실에서 사용하는 베개 커버를 가져와 머리를 대충이라도 닦으라고 보호자에게 건네줬다. 할머니의 머리 상태는 조금 진정이 되었고 곧이어 조무기사의 도움으로 뇌 CT를 진행하러 검사실로 들어갔다가 나왔다.
할머니는 다행히 검사 결과 상에서 큰 이상 없이 귀가가 결정되어 딸과 함께 응급실을 떠났다. 내 인생에서 응급실 근무하며 머리 빠마를 풀러 보기는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기에 영영 잊을 수 없는 이야기가 되었다. 할머니는 머리를 언제 다시 하러 갔을까? 예쁘게 다시 잘 볶으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