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뜻하지 않은 이별

by 코알라

“태희야, 지금 어디야?”

“응, 엄마. 나 지금 센터인데, 왜?”


밤 9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태희는 이제 막 동아리 모임이 끝나던 차였다. 집에 가려고 센터 건물에서 나오다가 엄마에게서 온 전화를 보고 왠지 싸한 기분이 들었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일까? 태희는 반사적으로 얼른 통화버튼을 눌렀다.


엄마는 오늘 지인들과 1박 2일 동안 울산 여행을 갔다 돌아오기로 한 날이었다. 남들처럼 매일 통화하는 모녀지간도 아닌데, 이 밤에 이렇게 전화가 오니 뭔가 중요한 일이 있는 것 같았다. 여행하면서 재미있는 일이 있었나? 아니면 안 좋은 일이 있었나? 하지만 엄마의 전화 목소리는 분명 즐거운 목소리는 아니었다. 태희는 엄마가 집에 언제 도착하셨는지 궁금해졌다. 뭔가 안 좋은 일이 있어 일찍 오신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언제 도착했어?"

"방금"


다행히 여행은 즐거우셨나 보다. 내친김에 여행은 어떠셨는지 묻고 싶었지만 차마 물어볼 수가 없었다. 그러기에는 엄마의 목소리가 낮고 우울했다.


“지금 집으로 와줄 수 있어?”

“왜?”

“집에 오면 얘기해줄게.”

“지금 택시 타고 집에 갈게요.”


'내일 쉬겠다고 하길 잘했네.'

태희는 직장이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하고 나서 자취를 시작했다. 집에서 출근을 하려면 1시간이 넘게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 시간에 엄마 집에 가면 자고 오든지, 늦더라도 돌아오든지 해야 하는데 출근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조금 난감했을 것 같았다. 다행히 지난주 주말근무를 하고 대체휴일로 내일 쉬겠다고 해두었던 터라 고민도 없이 당장 가겠다고 이야기할 수 있었다. 전화를 끊고 태희는 생각이 복잡해졌다. 엄마와 자신 사이에 일어날 안 좋은 일은 그다지 많지 않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결국은 한 가지 이유로만 결론이 났다. '무무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긴 건가?' 자꾸만 안 좋은 예감만 들어 다른 생각을 하려고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딸과의 전화를 끊고 은서는 다시 온몸의 힘이 빠져 털썩 주저앉았다. 전화통화로 속상한 마음을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는데 아무래도 온통 티를 냈던 것 같기도 하다. 태희가 무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집에 오는 내내 울면서 올까 봐 미리 얘기하지 않았다. 애써 밝은 목소리를 낼 필요는 없었지만 이렇게 낮은 목소리로 딸과 통화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목소리는 가라앉았지만 이상하게도 울음은 나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평소에 무무가 죽으면 어떨지 계속 생각해오며 스스로 마인드 컨트롤을 해서인 게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정말로 그랬다. 무무의 죽은 모습을 보며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지만 눈물은 나지 않았다. 울산여행에서 돌아와 현관문을 열면서 ‘무무야’라고 부를 때부터 심장은 이미 덜컥 내려앉았다. 정적은 무겁게 방에 가라앉아 있었고, 응당 들려야 할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은서는 불을 켜볼 생각도 없이 자꾸 무무를 불렀다. 혹시라도 잠에 깊이 들었있던 무무가 구석에서 부스스 나타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돌아오는 소리는 없었다. 은서는 허겁지겁 방의 불을 켜고 무무를 찾았다. 무무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올여름 유난히 시원한 구석만 찾아다니던 녀석이 좋아하던 그 자리에서 배를 깔고 잠들어 있었다. 아니, 잠이 든 듯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눈으로 보고 있는 사실이 사실인 것 같지 않아 다시 한번 무무를 불렀다. 무무는 역시나 꼼짝도 하지 않았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