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너를 잊을 수 있을까

by 코알라

태희가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택시를 타고 온다더니 정말 빨리도 도착했다. 태희는 방 안에 망연자실 앉아서 눈이 벌게진 은서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야?”

“무무가... 죽었어.”


은서는 다시 울컥한 마음이 올라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혼자 있을 때보다 태희와 함께 있으니 오히려 더 서러운 마음이 들었다. 무무의 죽음을 함께 아파하고 슬퍼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실컷 울어도 가장 잘 이해해 줄 사람이었다. 태희는 은서가 담요로 곱게 싸놓은 무무를 내려다보았다. 담요 속에 고요히 누워 있는 무무가 죽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태희는 서서히 감정이 북받쳐 올라오기 시작했다.


“무무 봐도 돼요?”

“응”


태희는 조심히 담요를 풀어 잠자는 듯이 누워있는 무무를 살펴보았다. 오랜만에 보는 무무였는데, 태희가 오면 벌떡 일어나 반갑게 다가와 주었던 무무였는데 이렇게 누워만 있는 모습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좀 더 쓰다듬어 줄걸, 좀 더 자주 보러 와줄걸 하고 후회만 계속 늘어갔다. 미안한 마음이 자꾸 눈물로 솟아났다. 태희는 눈물이 자꾸 흘러내렸지만 눈물을 닦지는 않았다. 차갑게 식은 무무의 이곳저곳을 만져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만져 주면 좋아했던 무무의 정수리, 촉촉하게 젖어 있던 무무의 코, 만져줄 때마다 더 긁어달라며 비비대던 볼, 절대 허락지 않았던 무무의 앞발. 딱딱하게 굳어 있었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무무를 쓰다듬고 또 쓰다듬어 주었다. 지금 만져주고 나면 이젠 앞으로 만져주지 못할 아이였다. 눈물이 계속 차올라 무무를 또렷이 보지 못해서 자꾸 속이 상했다.

충분히 무무를 만져주었다고 생각이 들어 다시 담요를 덮어주었다. 아직도 울음을 그치지 못하고 있는 은서 옆으로 가서 은서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한 번도 엄마의 눈물을 본 적이 없던 태희였기에 가슴 한쪽이 더 짠한 느낌이 들었다. 엄마가 진정이 될 때까지 등을 어루만져주며 옆에 가만히 서 있었다.


태희가 등을 어루만져주자 조금씩 감정을 추스르기 시작한 은서는 울음 끝에 작은 한숨을 토했다. 가슴이 아프고 답답한 마음이 조금 덜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숨을 툭 뱉어내니 조금은 진정이 되는 것 같았다. 이제 태희가 왔으니 무무를 어떻게 할지 이야기를 해봐야 했다.


“무무를 엄마 혼자 묻을 수는 없어서 불렀어. 너도 작별인사를 해야 할 것 같았거든.”

“안 그래도 택시 타고 오면서 엄마 목소리가 심상치 않아 혹시나 무무가 죽지 않았을까 짐작했어.”


사실 은서와 태희는 무무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앞으로 무무가 죽게 되면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가끔 나누기도 했었다. 화장을 할 것인가, 묻을 것인가를 두고 고민을 했는데 둘은 화장보다는 무무가 죽은 후에도 추억하고 찾을 수 있도록 묻어주고 싶다는 것에 동의했었다. 그리고 무무가 살면서 가장 자유롭고 행복했던 곳에 묻히게 해주고 싶었다. 그곳은 은서와 태희가 함께 살던 시골마을이었다. 무무가 좋아했던 시골집 담장 위처럼 넓은 들판을 바라보는 그곳. 그곳이라면 무무의 영혼이 편히 안식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은서는 무무를 싼 담요를 종이상자에 담았다. 태희가 그 상자를 조심히 안아 들고 은서와 함께 예전에 살던 마을을 찾았다. 마을의 작은 뒷산이어서 사람도 많이 찾아오지 않는 한적한 곳이었다. 밭으로도 쓰이지 않는 구석 한편에 무무가 묻힐 곳을 파기 시작했다. 땅은 부드러웠고 무무가 묻혀있기에 꽤나 안정적으로 보였다. 시간이 지나면 풀씨들이 찾아와 이 땅에도 뿌리를 박고 자라날 것이다. 그러면 작은 풀벌레들도 찾아올 것이고, 작은 짐승들도 지나갈 것이다. 해와 나무와 바람이 함께 하는 동네 작은 뒷산에서 한때 뛰어다니고, 헤매고 다녔던 수많은 길들을 추억하며 이곳에서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은서와 태희는 무무를 묻은 그곳에서 수많은 생각들을 하다가 무무와 인사를 하고 그곳을 떠났다.






“무무가 죽었다고?”


14년을 함께 살았던 무무를 아는 이들은 주변에 많았다. 뒤늦게 무무의 죽음을 알게 된 지인들은 안타깝기도 하고 위로를 해주고 싶기도 한 마음에 자꾸 무무의 이야기를 꺼냈다. 하지만 은서는 아직 무무의 이름만 들어도 눈물이 났다. 다른 주제의 이야기로 넘어가 주길 기다리며 고개만 끄덕이고는 이내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려버리기 일쑤였다.

은서에게 가장 힘든 건 일상을 사는 일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머리맡에서 밥을 줄 때까지 울던 기억이 생각이 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올려다본 깜깜한 아파트 창문 너머로 어둠 속에서 기다릴 무무를 생각하고는 웃으며 발길을 서둘렀던 그때가 또 떠올랐다.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를 때마다 문을 열면 무무가 문 앞에 서서 야옹 대고 있는 모습이 아른거렸다. 무무에게서 빠진 털 때문에 외출할 때마다 옷에 묻은 털을 돌돌이로 떼던 일상이 오히려 그립기도 했다. 요가를 하려고 매트를 펴면 마치 자기 자리인양 천연덕스럽게 찾아와 앉아있던 무무가 생각이 났다. 집에 있는 순간은 무무가 순간순간 떠올라 차라리 이사를 갈까 생각을 하기도 했다. 매 순간 또 매일매일 무무가 없다는 사실이 문득문득 생각이 나면 가슴이 짜르르 해지며 울컥 눈물이 났다. 무무를 잊는다는 것이 가능할까 싶은 날들이었다.


그렇게 무무를 잃은 아픔이 계속되는 날들이었지만 은서는 잊히지 않는 무무를 애써 잊으려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함께 살았던 시간만큼 무무를 기억해 주고 싶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무무는 추억이 되어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무무에게 내가 너를 기억하고 있으니 니가 살았던 시간은 멋진 날들이었다고 얘기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은서는 앞으로는 어떠한 고양이도, 어떠한 반려동물도 키우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면 귀엽고 함께하면 행복한 귀한 생명들이 언젠가는 나보다 먼저 떠날 아이들이기에 그들을 또 잃게 되는 날 지금처럼 힘든 감정을 또 겪어야 할 생각을 하니 다시는 못할 짓 같았다.

속상하지만 일상은 어떻게든 이어진다. 무무를 잃은 슬픔이 몇 달째 은서를 떠나지 못하고 있음에도 하루는 어김없이 시작되고 문득 소중해지는 시간들이 또다시 생기기도 한다. 지금은 생각만 해도 나는 눈물이 시간이라는 기적과 만나 웃음으로 변해갈 거라는 것을 안다. 이렇게 기억으로 무무는 계속 은서와 태희와 함께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흐르는 눈물은 무무에게 주는 이별 선물쯤으로 여기기로 했다. 은서의 선물이 무무에게 잘 도착했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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