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화 마당냥이는 아무나 꿈꿀 수 있는 게 아니야
무무와 함께 살았던 첫 1년은 아파트에서 살았다. 은서는 아파트 생활을 썩 좋아하지 않았다. 그녀의 꿈은 시골에서 사는 것이었는데 그것이 어렵다면 태희의 어린 시절이나마 시골에서 보내게 해주리라 마음먹었었다. 마침 원하던 곳에 빈집을 찾았고 곧바로 이사를 했다. 은서가 시골에서의 생활을 바랐던 이유는 여러가지였다. 어릴 때부터 비염으로 고생이 많았던 은서는 공기 좋은 시골생활이 도시의 생활보다 좋은 일일 거라고 믿고 있었다. 또한 무무와 살면서 동물 털 알레르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무무와 생활공간을 따로 쓰는 일은 중요한 일이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무무에게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좁은 아파트보다는 자유롭게 넓은 마당을 누비고 다닐 수 있는 시골이 더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커져갔던 것도 있었다. 넓은 마당은 고양이에게 숨을 곳도 많고, 올라갈 공간도 많았다. 자유롭게 마당을 누비고 살 무무의 모습이 아른거려 당장 이사를 갈수밖에 없었다. 이사를 간 당일, 이사를 마치고 무무를 데려와 넓은 마당에 내려놓았다.
"자, 이제 맘껏 뛰어봐."
은서는 당장 무무가 마당을 가로질러 뛰어다닐 거라고 믿지는 않았지만 조금은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무무는 가만히 서서 주변을 살펴보고 경계를 할 뿐 움직일 생각도 하지 않았다. 마당 한편에 무무의 밥그릇을 놓아주고, 무무가 좋아하던 스크래쳐를 옆에 두었다. 항상 가지고 놀던 놀잇감도 두어서 낯선 환경이지만 낯설어하지 않도록 나름의 배려를 했다. 하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금세 익숙해지지는 않았다. 어둠이 내리고 잠이 들면서 낯선 바깥에서 잘 무무가 걱정이 되었지만 곧 적응할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우리는 잠이 들었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 무무는 사라지고 없었다.
태희는 무무가 사라지자 울면서 무무를 찾았다. 마당 구석구석을 찾아보았지만 무무는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바깥으로 나간 것 같은데 바깥은 온통 넓은 논밭이어서 무무를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배가 고프면 찾아오지 않을까 싶어 밥그릇에 계속 사료를 채워놓았다. 하지만 다음날도 밥그릇 속 사료는 줄어들지 않았다. 무무를 영영 잃어버린 것이면 어쩌나 걱정도 되고 속상했지만 달리 찾을 방도가 없었다. 무무가 무사히 돌아오기만 기다리며 그렇게 하룻밤이 또 지나갔다.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 마당에서 태희가 바쁘게 엄마를 찾았다. 무무가 있다는 것이다.
"엄마, 무무가 저 위에 있어. 데려와야 하는데 어떻게 데려오지?"
무무는 집 뒤쪽에 있는 대나무밭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대나무밭으로 가는 길이 절벽처럼 매우 가팔라 설마 그쪽으로 갔으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 의외로 그곳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이곳저곳을 호기심을 갖고 탐색하며 다니다 조금 배가 고파졌는지 스스로 모습을 드러낸 참이었다. 태희의 걱정과는 다르게 무무는 그 높은 곳에서 스스로 잘 내려왔고 천연덕스럽게 자신의 사료를 먹기 시작했다. 은서는 그저 다시 돌아와 준 무무에게 반갑고 감사할 뿐이었다.
그렇게 무무의 시골생활은 시작되었다. 조금씩 사냥 본능이 깨어나기 시작했는지 어느 날 아침엔 댓돌 위에 죽은 쥐가 놓여있기도 했다. 어느날은 높은 담장 위에 올라 넓은 들판을 바라보는 무무를 목격하기도 했다. 그런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기대했던 시골 생활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무무는 그 담장 위에 올라가는 것을 좋아했는데 나중에는 태희도 같이 올라가 나란히 무무와 앉아있기도 했다. 무무와 태희가 담장에 나란히 앉아서 지는 해를 바라보는 모습은 평생 잊지 못할 순간이 되기도 했다.
시골생활이 익숙해질 무렵, 은서와 태희는 저녁을 먹고 난 이후 동네 산책을 시작했다. 당시 퇴근을 조금 빨리하던 은서는 저녁을 먹고 나도 해가 떨어지지 않은 것을 보고 산책하기 딱 좋은 때라고 생각했다. 태희와 대문을 나서려는 그때 무무가 보였다.
"무무야, 산책 갈래?"
고양이가 사람말을 알아들을 리 없지만 신기하게도 무무는 대문을 나서는 우리를 보며 같이 따라나섰다. 천천히 은서와 태희가 걷는 대로 따라오기 시작했다. 무무는 산책을 하는 동안 주변을 조금씩 둘러보았다. 그러다가 차가 지나가면 후다닥 풀숲으로 숨어서 지나가기를 기다리기도 했다. 무무가 숨어 있는 것을 보고 은서는 조금 기다렸다가 차가 지나가면 다시 걷기 시작했는데 그러면 다시 무무도 따라왔다. 꼬리를 곧게 세우고 좌우로 살랑대며 걷는 무무의 모습은 매우 당당해 보였다. 움직이는 것에 반응하고 주변을 경계하며 은서와 태희를 놓치지 않는 무무의 모습은 관찰하는 재미가 있었다. 그날 이후 매일의 산책길에는 무무가 따라나섰다. 산책코스는 항상 달랐지만 무무는 어디든 잘 따라다녔다. 산책길을 끝까지 같이 할 때도 있었지만 무무는 호기심이 끌리는 곳에서는 한참 동안을 혼자서 놀면서 주변을 탐색했다. 그럴 땐 무무를 혼자 남겨두고 오기도 했었는데 그렇게 해도 알아서 집을 잘 찾아서 왔다. 무무와 같이 산책을 하는 일은 무무의 걸음 속도를 맞춰주는 일이기도 했는데 은서와 태희의 걸음보다 더 느리고 느긋하다보니 결국 나중에는 혼자서 집에 돌아오는 일이 많았다. 그렇게 온동네를 돌아다니며 영역을 넓혀나간 탓인지 어디를 가더라도 헤매지 않고 무사히 집에 돌아온 무무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시골생활은 항상 여유롭고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가끔 담을 넘어 들어오는 길고양이들과 맞서기도 했다. 그럴때마다 무무는 매우 앙칼지게 그들과 싸웠는데 가끔 밖에 나가서도 싸우고 왔는지 얼굴에 상처가 나있는 모습을 발견할 때도 있었다. 어느 날은 새벽 무렵 무무와 다른 길고양이들이 서로 앵앵대며 다투는 요란한 소리가 들려 자다가 일어나 동네를 헤매고 다닌 적도 있었다. 무무는 우리 생각보다 강했고 그래서 얻어터지고 오더라도 항상 이기고 돌아오는 것 같았다. 그 많던 길고양이들이 조금씩 안보이는 것을 보면서 그럴거라고 짐작했다. 그러다 보니 점점 동네에서 무무를 아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원래 사람을 잘 따르는 고양이였던 무무는 아무나 손만 내밀면 가서 정수리를 들이밀고 비벼댔다. 은서는 자신의 고양이가 모두에게 사랑받는 것이 좋기는 하지만 자신에게만 하는 애정표현을 남들에게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살짝 질투가 나기도 했었다. 그런 은서의 마음을 아는지 무무는 퇴근하고 돌아오는 은서를 보면 각별히 반겼다. 은서가 타고 오는 차소리를 구분하는 듯 마을 입구에서부터 은서의 차소리가 들리면 마치 자신이 치타인양 멀리서부터 맹렬히 달려왔다. 무무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멀리 떨어져있어도 구분할 수 있었고, 미처 은서가 돌아오는 차소리를 듣지 못했어도 '무무야!' 하고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싶으면 어김없이 우다다다 뛰어와서 은서와 태희를 맞이해 주었다.
은서는 시골에서 살면서 무무만 키운 것은 아니었다. 집에 개도 들이고, 닭도 키웠다. 시골에 살면 마당에 개가 있어야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 은서였기 때문이었다. 이사를 오고 근처에 있는 오일장에 가서 직접 데려온 아이였다. 작은 상자안에서 꼬물꼬물 움직이던 녀석은 무늬가 호랑이 무늬와 비슷해서 특별히 눈에 띄었다. 태희는 그녀석에게 깜순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무무가 먼저 들어와서 주인 노릇을 해서인지 모르겠지만 깜순이는 처음부터 무무와 친했다. 오히려 무무가 귀찮아하며 깜순이를 피해 다녔다. 깜순이가 자꾸 무무에게 올라타고 안겨 구르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깜순이는 매우 혈기왕성해서 풀어놓고 키우기 힘이 들었다. 덕분에 오히려 무무가 활개를 치고 다닐 수 있었다. 무무는 키우던 닭들에게도 무심했다. 사냥 본능이 있는 고양이라서 자칫 닭들이 물려 죽을까봐 조금 걱정을 했는데 무무는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자신이 사냥해야 할 것은 오로지 쥐뿐이라고 여기는 것 같았다. 은서와 태희는 그런 무무를 굉장히 똑똑한 고양이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다녔다. 그렇게 똑똑하기 때문에 사람과 같이 산책도 하고, 다른 동물들과도 적당히 선을 지킬 줄 알았으며, 자신의 역할도 스스로 잘 찾았고, 게다가 시골생활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거라고 말이다. 시골에서의 생활은 은서와 태희에게 그리고 무무에게도 그렇게 행복한 시간이었음이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