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첫만남

by 코알라

은서는 한참을 울다가 조금씩 진정하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울고만 있을 수 없었다. 무무의 사체가 부패하기 전 해야 할 일들을 해야 했다. 그리고 무무의 죽음을 알려야 할 또 다른 가족에게 알려야 했다. 바로 태희였다. 우는 목소리로 통화를 했다간 오는 동안 아이가 울 수도 있어서 무무의 죽음을 집에 와서 확인하게 하고 싶었다. 애써 슬픈 목소리를 지웠지만 태희와 통화하는 내내 은서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훨씬 가라앉아 있었기 때문에 조금은 짐작을 했을 것 같았다. 은서와 태희는 은서가 이혼을 한 뒤 무무와 오랫동안 세 가족으로 단란하게 살았다. 서로에게 각별한 사이였기 때문에 무무의 죽음은 은서만큼이나 태희에게도 큰 충격일 것이다. 전화를 끊고 나니 무무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자꾸 추억으로 몰려오기 시작했다.




처음 무무가 우리 집에 입양을 온 이유는 태희 때문이었다. 은서가 이혼을 하기 전이었는데 맞벌이 가정에 외동으로 자라던 태희는 엄마에게 동생을 낳아달라는 요구를 멈추지 않았다. 그런 태희에게 은서는 생기지 않는 동생보다 차라리 형제처럼 또는 친구처럼 지낼 반려동물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마침 고양이를 입양할 기회가 생겼다. 태희가 8살이었다. 집에 고양이가 생긴다는 생각에 태희는 무작정 좋아했지만 사실 생명에 대한 책임감을 갖기에는 아직 어린 나이임이 틀림없었다. 태희는 고양이가 입양을 오면 씻기고, 먹이고, 화장실 관리도 다 하겠다고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에게 책임을 떠넘기기 시작했다. 결국 고양이에 대한 관리는 자연스럽게 은서의 책임으로 돌아왔다. 어쩌면 그런 것을 기대한 것이 아직 어린 태희에게는 무리수였다는 것을 알기에 은서는 기꺼이 그 일을 해냈다. 번거로운 일이었지만 오히려 밥을 주고, 화장실을 치워주다 보니 무무에게 가장 사랑받는 집사가 되어 있었다. 은서는 조금씩 무무로 인해서 행복해져 갔다.


무무는 처음엔 길고양이였다. 어쩌다 사람 손에 키워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함께 살면서 무무의 영특함을 경험할수록 은서는 무무가 스스로 집사를 선택해서 집고양이가 되었을 것이라 짐작하게 되었다. 무무는 입양을 와서도 온 마음을 다해 집사를 신뢰하고 사랑하고 있음을 표현했다. 꾹꾹이를 하고, 무릎에 와서 잠들고, 정수리를 들이밀면서 애교를 부리기도 했다. 처음 올 때부터 제법 덩치가 큰 고양이었지만 사냥놀이를 할 때면 그렇게 날쌜 수가 없었다. 매일 벽에다가 사냥감을 흔들면서 무무의 점프 기록을 남기기도 했는데 갈수록 민첩해지는 무무를 보며 은서와 태희는 함께 감탄하기도 했다. 잠을 자는 동안은 어찌나 천사 같던지 항상 똑같은 모습으로 자고 있지만 매일 다른 귀여운 모습을 발견한 듯 무무의 자는 모습을 자꾸 사진으로 찍었다.

무무는 나이가 들도록 몸집이 8kg가량 됨에도 불구하고 은서 무릎에 와서 앉는 걸 좋아했다. 앉아서 컴퓨터 작업을 하고 있으면 조용히 옆에 와서 가르릉 가르릉 거리다가 은서가 쓰다듬어주면 잠시 망설이듯 이리저리 재보고는 무릎에 와서 앉았다. 하도 덩치가 커서 그럴 때마다 잠시 곤란하기는 해도 ‘요 녀석이 할아버지가 되어도 어리광을 부리네’하며 귀여운 마음에 냉큼 팔을 벌려 무릎에 앉혀주었다. 사실 무무는 처음부터 무릎에 앉는 것을 좋아했었다. 무무가 입양되어 처음 집에 적응을 하던 시절에도 은서가 책상 앞에 앉아 있으면 옆으로 와서 무릎에 앉을 기회만 기다렸었다. 그때도 덩치는 컸지만 그나마 지금보다는 조금 작았던 때라 기꺼이 무릎을 내주었다. 하지만 한 자세로 7, 8kg 정도 나가는 아이를 다리 위에 올려놓고 있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었다. 다리가 저려오고 자세를 바꾸고 싶은 순간이 오기 때문이었다. 자세를 바꾸고 다시 오라고 하면 본 척 만 척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버렸는데 그럴 때마다 은서는 무무가 무릎에 앉는 것이 좋아서 오는 것인지 아니면 ‘난 널 좋아해’ 하는 특별한 마음 표현이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무무와의 관계가 신뢰로 이어지고 서로가 서로에게 특별한 사이가 되어갈 무렵 은서네 가족 모두에게 특별한 변화가 시작되었다. 시골로 이사를 가게 되었던 것이다. 무무에겐 이제 마당냥이로서의 삶이 시작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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