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카메론 미첼, 2006
"<숏버스>는 섹스에 대한 영화가 아니라 관계에 대한 영화다. 이 영화에서 섹스는 한 사람의 삶의 궤적과 방식을 표현하는 언어일 뿐이다. 유년 시절, 성 역할에 대한 견해, 또는 애인에게 이용당한 상처나 정치적 견해까지도 그 사람의 섹스에 영향을 끼친다. <헤드윅)의 언어가 음악이라면 <솟버스>에서는 섹스다."
- 존 카메론 미첼
<숏버스>의 지독한(?) 성적인 묘사만 배제한다면 이 영화는 세계 유수 영화제의 상들을 휩쓸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첫 씬의 자위 장면을 무사히(?) 넘기기만 했다면, 영화를 끝까지 관람한 사람이 더 많았을 지도 모른다.
당시에 영화는 국내에서 개봉관을 잡지 못했지만, 영화진흥 위원회에서는 따로 영화제를 마련해서 이 영화를
홍보하고 관객에게 공개했었다. 단, 영상물 등급 위원회는 <숏버스>를 "일반상영관 상영제한가"(사실상 개봉 불가) 판정을 내렸다. 이런 한국의 검열 사정을 들은 존 카메론 미첼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숏버스>의 무제한 불법 다운로드를 장려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만큼 이 영화를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관람하기를 바랬고, 덕분에 나도 그의 관대한 배려에 영화를 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전에 봤던 <헤드윅>도 관객에게는 좋은 반응이 있었지만, <숏버스> 또한 여러 이슈의 중심에 선 작품이었고 보기에 불편할 정도로 과격한 성묘사가 있다고 들어서 선뜻 손이 가지 않는 작품이었는데 존카메론 미첼 감독과 씨네 21과의 인터뷰를 읽고 마음이 180도 바뀌었다. 영화를 관람하니 영등위와 영진위의 갈등이 우습게만 보인다.
섹스가 키워드인 이 영화의 가장 큰 모순이겠지만 섹스를 제외하면,
<숏버스>는 <헤드윅>처럼 소수자들의 소통과 상처, 그리고 마음을 치유하는 주제를 그려내고 있다.
무슨 이유인지 한없이 우울해보이고 자신의 자살 영화를 준비 중인 남자, 제대로된 오르가즘을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성상담가,자신의 본명을 절대 밝히지 않는 여자.
스쿨버스 문화를 가진 미국에서 '숏버스'라는 말은 일반적인 버스를 타고 등교할 수 없는 장애를 가진 학생들을 통칭하는 어딘가 모자라고 남들과 다른 이들을 놀리는 은어다. 하지만 감독은 이들을 두고 "축복받은 소수자들"이라 지칭하며 영화 내내 따뜻한 손길과 생명을 부여한다. 감독은 여전히 멋진 음악과 소수자들을 다정하게 바라보며 말한다.
"그래, 뭐가 문제야? 나한테 다 얘기해 봐."
그래서 이 영화를 난잡하고 저질인 영화로 간단히 무시해버릴 수 없는 것이다.
모두가 알고 있고 겪고 있지만 왠지 금기시되는 소재를 이렇게 멋지고 따뜻한 영화로 만들 수 있는 것도 대단하지 않나? 사실 헤드윅을 보고 기대했던 것보다 와닿지 않았었는데 숏버스를 보고 나니 헤드윅이 얼마나 멋졌는지 새삼 실감이 난다. 너무 깊고 아파서 손도 대지 못하는 상처에 대고 입김을 "호~"하고 불어주는 감독.
너무 따뜻해서 가슴을 뜨겁게 만들어주는 존 카메론 미첼.
아무래도 나 이 감독한테 완전 반했나보다...
영화를 추천하기에는 나의 성 정체성을 의심받기에 다분하지만 편견없이 영화를 볼 수 있다면,
감독과 배우의 연기에 빠져들 수 있다고 생각이 든다.
**<숏버스>의 배우들 모두 감독이 오디션을 통해 선발했다. 하지만 연기가 초짜인 사람들치고는 연기를 너무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