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

감정을 훔치는 향기 밀수꾼

by 윤사랑

〈감정을 훔치는 향기 밀수꾼〉


그는 향기 밀수꾼이다.

하지만 향수를 훔치는 게 아니다.

감정을 훔친다.


이 세계에서는

감정이 향기로 저장된다.

사람들은 중요한 순간을

향기 병에 담아 보관한다.


기쁨은 시트러스,

슬픔은 라벤더,

그리움은 이끼,

죄책감은 타버린 나무 냄새.


향기 저장소는

기억의 금고다.

감정은 상품이 되었고,

향기는 통화가 되었다.


그는

사람들이 맡긴 감정을

몰래 빼돌린다.


“첫사랑의 설렘 / 2022.04.11”

“아버지의 마지막 포옹 / 2019.12.30”


그는 그 향기를

시장에 판다.

부자들은

남의 감정을 사서

자신의 삶에 채운다.


“나는 사랑을 해본 적 없지만,

그 향기를 맡으면

사랑이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어요.”


그는 묻는다.

감정은 누구의 것인가?

기억은

소유될 수 있는가?


어느 날,

그는 한 병을 훔친다.

“그녀가 떠난 날 / 2021.06.17”


그 향기는

복숭아꽃과 젖은 흙,

그리고 아주 약한 체온의 흔적.


그는 그 향을 맡는다.

그리고

울었다.


그 감정은

그의 것이었다.


누군가가

그의 기억을

먼저 훔쳐

보관한 것이다.


그는 깨달았다.

감정은

훔쳐질 수 있지만,

진짜 기억은

향기 속에

자신을 숨기고 있다.


그는

향기 밀수를 그만둔다.


그리고

자신의 감정을

다시

찾기 시작한다.

작가의 이전글향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