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

감정을 저장하는 향기 도서관

by 윤사랑

<감정을 저장하는 향기 도서관>


도시의 중심에는

지도에도 없는 도서관이 있다.

책은 없다.

대출도 없다.

그곳은 감정을 저장하는 향기 도서관이다.


사람들은

말로 표현하지 못한 감정을 맡기러 온다.


기쁨은 시트러스,

슬픔은 라벤더,

그리움은 이끼,

죄책감은 타버린 나무 냄새.


향기는 병에 담겨

감정의 이름과 날짜가 붙는다.


“첫사랑의 마지막 인사 / 2021.03.14”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울지 못한 날 / 2019.11.02”


도서관 관리인 ‘나’는

감정을 분류하고 보관하는 일을 한다.

나는 감정을 읽지 않는다.

그저 맡고, 정리하고, 보관한다.


하지만 어느 날,

한 병이 깨졌다.

향기는 퍼졌고,

나는 그 감정을 느꼈다.


복숭아꽃과 젖은 흙,

그리고 아주 약한 체온의 흔적.


그것은

내가 맡긴 적 없는 향이었다.

나는 병의 라벨을 본다.

“그녀가 떠난 날 / 2017.05.09”


그건

내 기억이었다.

나는 그날을

잊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누군가가

내 감정을 대신 맡긴 것이다.

나는 도서관의 깊은 층으로 내려간다.


그곳에는

내 이름이 붙은 병들이

조용히 숨 쉬고 있다.


“혼자 남겨진 밤 / 2018.01.01”

“사랑을 말하지 못한 순간 / 2020.06.27”


나는 깨닫는다.

감정은

잊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맡겨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향기는

언젠가

다시 나를 찾아온다.


나는

그 병을 다시 닫는다.


그리고

그녀의 향을

도서관 가장 깊은 서가에

조용히

보관한다.

작가의 이전글존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