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름 속의 나
〈흐름 속의 나〉
그는 오래도록
운명을 거부하며 살아왔다.
자신이 태어난 곳,
자신이 가진 이름,
자신에게 주어진 상처.
그는 말했다.
“나는 정해진 길을 걷지 않겠다.”
그래서 그는 떠났고,
흔적을 지웠고,
자신을 바꾸려 했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멀리 가도
그 길은
그를 따라왔다.
그가 외면한 이름은
다른 사람의 입에서 다시 불렸고,
그가 지운 기억은
꿈속에서 다시 피어났다.
그는 지쳤다.
운명은
그를 쫓는 것이 아니라,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오래된 마을로 돌아왔다.
그가 떠났던 곳,
그가 지우려 했던 자리.
그는 그곳에서
자신이 남긴 편지를 발견했다.
어린 시절의 글씨로
짧게 적혀 있었다.
“나는 언젠가
이 길을 다시 걸을 거야.
그게 나니까.”
그는 멈췄다.
그 편지는
그가 거부했던 운명이 아니라,
그가 선택했던 자신이었다.
그는 처음으로
운명을 받아들였다.
그건 굴복이 아니라,
이해였다.
그는 말했다.
“운명이 정해져 있다면
나는 그 안에서
나를 완성하겠다.”
그 순간,
그 길은
더 이상 벽이 아니었고,
그의 존재는
흐름 속에서
조용히 단단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