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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은 Jul 13. 2021

언니 극복기

나 혼자만의 싸움



유별나다 했다. 언니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언니는 말이 두 살 연상이지 월령으로는 일 년 남짓 차이 난다. 언니는 머릿결도 곱고 그 머리칼 한 올 한 올 다른 갈색 입힌 듯 오묘하고 얼굴도 갸름하니 예쁜 데다 공부는 물론 운동도 잘하고 누가 대충 보더라도 모범생이다.


나는 반곱슬에 모질이 억세고 까맣다 못해 푸른빛이 도는 데다 얼굴은 딱 조막만한 알감자 같은 게, 안경잽이에 공부도 대충 하더랬다. 누가 얼핏 보더라도 천방지축이었다. 체격만 좀 좋아서 둘이 서 있으면 누가 언니고 누가 동생인지 헷갈렸을 법했다.

어릴 땐 도무지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몰랐다. 하고 싶은것이 이렇게나 많은데 어찌 공부까지 하라는 건지 몰랐다. 노는 시간도 늘 모자라서 하루가 아까웠다. 공부를 안 해도 점수가 곧잘 나오니 이만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아니 숙제제출일도 시험날자도 사실 언제였는지 몰랐던 게다. 그냥 그날 학교에 갔는데 시험을 보면 그 시점에 아는 만큼 쓰고 나왔을 것이다. 숙제는 너무 심심하면 그 때 했다. 말만 좀 많아 버스 운전기사 아저씨랑 누가 저렇게 떠드나 보면 그게 나였고, 물에 빠져도 입만 동동 뜰거라 했다. 매번 '아이고 얘야 네가 맘 잡고 공부만 하면 너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겠다' 그런 소리를 들었다. 그냥 그 말만 믿고 살았다. 아 나는 마음만 먹으면 되는구나. 뭐 언젠가 마음먹으면 되지.

언니랑 늘 비교가 되는 이유는 외모나 모범생과 열등생의 차이도 있었겠지만 사실 내가 언니를 따라잡으려고 하는 이상한 근성 때문이었다. 언니가 옷을 사면 나도 똑같은 걸 사야 했고, 언니가 뭘 받으면 나도 그걸, 그 이상을 받아야 했다.

그 시작은, 언젠가 기억도 안 나는 내 아주 어린 밤, 언니가 울며불며 공책을 벅벅 지우는 기억에서부터이다. 언니는 눈물인지, 콧물인지, 지우개 가루인지 온 얼굴에 범벅을 하고 열심히 지우개를 잡고 밀어댔다. 쓱싹쓱싹 앞뒤로 리드미컬하게 지우면 더 잘 지워질 것 같은데 미련스럽게 그렇게 밀기만 하더랬다.


내가 지우면 더 잘 지울 것도 같다. 언니가 문지를수록 갱지로 만든 회색 공책도 못 생겨지며 울고. 언니는 그걸 보고 더 울다 울다 예쁜 얼굴이 나보다 더 못 생겨지고... 그즈음 되면 내가 잘못한 건지 공책이나 지우개가 잘못한 건지 좀 헷갈린다.


엄마가 나설 차례다. 

"야야 이걸 찢자. 이 장을 찢어 버리고 다시 해라"

흥분한 언니를 달래며 지우개 가루와 눈물 콧물이 범벅된 페이지를 훑어보며 말했다.  

“어머, 이것 좀 봐, 다 맞았네”

이번엔 나를 보며 외친다. 2학년이던 언니 숙제를 아직 학교도 안 들어간 두 살 어린 동생이 제법 다 맞게 숙제를 했다며 신기해했다. 그 숙제가 국어였는지 산수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국어든 산수든 국민학교 2학년 숙제가 뭐 그리 어려웠으랴만 그땐 학원도, 선행도, 문제지도 없던 터라 어른들이 좀 신기해하기는 했던가 보다.


언니 숙제를 왜 네가 했냐며 흘겨보던 날 선 눈들이 둥글게 내려가고, 밉살스러운 말들이 쏟아져 나오던 입꼬리들이 올라갔다. 언니한테 미안하려고 최대한 슬프게 내려가 있던 내 두 눈도 순간 힘이 들어가며 더 커지고 반짝여진 것 같다.

그날 이후부터 나는 언니를 어떤 넘어야 하는 경쟁상대로 여겼던 것 같다. 언니를 이기면 내가 받을 수 있는 극한의 찬사를 받을 수 있으니. 내 근육은 정신적인 근육이든 신체적인 근육이든, 신경이든 핏줄이든 암튼 언니를 염두에 두고 비정상적으로 발달되어 나갔다.


나 혼자만의 싸움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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