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때문에? 내 덕분에?
"조 깜찍한 게, 지 언니 숙제를 야물딱지게 해 놓고 새초롬히 그러고 앉아있더라니까"
엄마는 만나는 사람마나 붙들고 내 얘기를 했다.
나는 그 일대 조무래기들 사이에서 나름 똘똘한 체를 하고 몇 년을 잘 보냈다. 그렇게 '야물딱지고' '깜찍'하던 나는 2년 후 "쟤가 제 언니처럼 그 학교에 가야 하는데 그냥 똑 떨어졌어"라는 말을 듣고 앉아있어야 했다.
그 동네에 유일한, 아니 그 동네뿐 아니라 그 일대 반경 몇십 킬로 안에 유일한 사립국민학교인 D학교에 그만 똑 떨어진 것이다. 초등학교 일학년 나이의 아이를 대상으로 도대체 무슨 시험을 봤는지, 내가 도대체 어떻게 치렀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하루아침에 그냥 '똑 떨어진' 아이가 되어 있었다.
훗날 엄마에게 엄마 그때 거기 D국민학교 시험에 나 왜 떨어졌었을까? 하고 물었다. 엄마가 아주 무심하게...
"시험? 시험은 무슨. 엄마가 그때는 다 뺑뺑이 였어. 잘 나오라고 세게 돌렸는데 그게 글쎄 꽝이 나왔지 뭐야. 입으로 바람이라도 불어 더 돌아가게 했으면 좋겠는데 다들 눈을 부릅뜨고 보고 있잖냐"
제 예쁜 언니가 예쁜 교복을 입고 잘만 다니던 사립 D국민학교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똑' 떨어진 나는 그 동네 얘들이 다 가는 일반 공립학교에 입학을 했다.
1980년 초 아직 추운 3월이었다. 입학하는 날은 너무 또렷이 기억이 난다. 머리는 양 갈래로 나누고 알사탕 같은 빨간 머리끈으로 양쪽 상단 사분의 일 쪽씩 단단히 묶었다. 스타킹 안에 내복을 구겨 입고 빨간 모직 주름치마도 입었다. 문제는 반소매 모피 쪼끼이다. 진짜 모피였는지 인조였는지는 모르겠다. 상관없다. 아무든 누가 봐도 모피인 조끼를 입고 운동장에 줄을 서 있었다. 국민학교 1학년과 모피 조끼란... 그 차림새란 눈에 안 뜨일래야 안 뜨일 수가 없는 데다 멧돼지 코 같은 큰 니콘 수동카메라를 든 할아버지는 자꾸 나를 불렀다. 여기보라고. 지은아, 지은아, 부를 때마다 나만 혼자 카메라를 힐끔힐끔 보고, 주위에 다른 모든 사람은 다 나를 보고 있던 것 같다. 카메라 렌즈보다 사람들의 눈이 더 커 보였다.
몇 달 후 엄마는 만나는 사람마다 "쟤 때문에 바로 강남으로 이사했잖아, 쟤가 그 사립국민학교 '똑' 떨어지는 바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