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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은 Jul 13. 2021

쌍문동 산악기

온 동네가 함께 키우는 아이들

 

험준한 산 앞에서, 그 높이에 기죽지 않기가 쉽지 않다. 뒤돌아서고 싶고, 멈추고 싶은데 사방이 산맥이란 걸 알게 될 즈음에야 그 산을 타는 게 낫겠다 한다.

이럴 바에야 하고 싶은 걸 하며 오르는 게 낫겠다 싶다. 늦다, 턱도 없다. 그래도 올라가야지. 오르지 않고는 내려갈 곳도 없다.




응답하라 1988 덕선이가 살던 쌍문동은 쌍문동 어디께인지 모르지만, 내가 살던 1970년 후반 쌍문동은 산꼭대기 바로 아래 얹혀 있었다. 광산슈퍼 오거리에서 내가 살던 쌍문동 골목을 가려면, 마을버스가 어느 지점부터 가파른 오르막길을 쉼 없이 올라야 한다.

기사 아저씨가 악셀레타에서 잠시라도 발을 떼서 엔진이 꼴딱거리면 순간, 같이 숨이 멈추고 차가 뒤로 구를까 심장이 쫀쫀해진다. 내 뒤통수가 내 꼬리뼈보다 한참 뒤에 가 붙으면 누구든 불안할 터다.


 올라가는 길은 마을버스를 타지만 내려갈 때는 집골목 끝에서 아래 큰길까지 한 번에 냅다 뛴다. 이 내리막길은, 함 뛰어봐? 마음 먹고 내달리면 내 의지대로 멈출 수가 없다.

 지면의 각도 때문에 출발부터 본의 아니게 까치발로 요이땅한다. 가속도가 붙은 두발이 언덕 밑단에 가서야 지면과 수평이 되고, 그제서야 비로소 멈춘다. 내 발이 제풀에 멈출 때까지 내 앞짱구를 선두로 내 어깨, 팔, 배, 엉덩이, 다리, 발들이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우르르 딸려가는 꼴이다.

 1학년 때 강남으로 이사 와서 운동회 때도, 얼음땡 할 때에 술래가 되어도 여유 있었던 이유는 앞에 있는 놈 하나 냅다 잡아버리면 되니까. 내가 왜 빠르지? 생각해 보면 그 원천은 어린 내가 살던 그 쌍문동 내리막길 덕분이다. 이제 나는 한강 남쪽 정글짐 위에서 날아다렸고, 철봉에 한 다리 걸고 빙글빙글 돌다가 통닭인 양 종일 거꾸로 매달려 있었고, 고무줄놀이에 나랑 편짜려고 모르던 얘도 슬금슬금 다가왔다. 난 강남 얘들 놀이에 금방 섞였고, 금방 따라잡았다.

 쌍문동 그 골목은 마을버스가 다니는 오르막 이쪽 끝에서 내리막길이 시작되는 반대쪽 끝 양쪽으로 반듯하고 정갈한 단독주택들이 누가 더 클 것 없이 자박자박 자리했다. 장미나무와 화분과 장독으로 아기자기 꾸민 마당이 있고 넓진 않아도 온 가족이 한꺼번에 앉을 수 있는 창문이 큰 거실이 있었다.  


 그 골목 아이들은 우리 언니만 빼고 모두 다 나와 같은 국민학교를 다녔다. 대부분 두 명 정도 형제자매가 있었던 것 같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 나라 정책이 아주 잘 시행되고 있는 골목이다.

 골목 안에는 항상 아이들이 있었다. 대문도 다 열려 있어서 누가 마당에서 놀고 있으면, 내가 들어갈까? 네가 나올래? 같이 놀면 된다. 노느라 시간이 없었다. 노느라 매일 바빴다. 아이들과 빨대 끝을 앞니로 물고 쭉 잡아당기면 단맛이 나는 아폴로로 아빠 담배 피우는 흉내도 내고, 벽돌 조각을 돌로 부순 고춧가루로 풀 김치도 담그고, 벽돌 고춧가루에 물을 부어 고추장도 쑤었다.

 

 어느 해 여름엔 아빠가 마당에 튜브 수영장을 만들어 주셨다. 무릎까지 물을 채울 수 있는 마당을 꽉 채울 만큼 큰 12인용 수영장이었다. 낡은 자전거 펌프로 부풀려진 튜브 수영장에서 우린 여름 내내 더 바빠졌다. 아마 내 어깨도 같이 한껏 부풀어서 수영장 위에 동동 떠다녔을 것이다. 며칠이고 놀다 놀다 물이 노래져서 물을 갈아야 할 때가 더 재미있다.  


 물을 채운 수영장은 돌덩이보다 무겁다. 들어서 물을 비워낼 수는 없다. 수영장 한쪽 벽에 철퍼덕 앉아 벽을 내리깔면 그쪽으로 물이 댐 터지듯 빠져나온다. 물이 쏟아질 것을 이미 알았으면서도 꺄아아 소리소리를 지른다. 우리가 앉은 쪽으로 물이 막 쏟아져 나오면서 진흙 마당은 또 다른 놀이터가 된다. 물이 빠진 튜브 수영장 바닥은 노리끼리하니 비누를 칠한 듯 미끄덩거린다. 그런 날은 튜브 수영장이 반나절 정도 미끄럼틀이 된다. 아이들과 미끄덩 미끄덩 까르르 까르르 온몸으로 논다.

 그해 여름 우리 집 대문과 수도꼭지는 닫힐 새가 없었다.

놀다가 누구 집에 가도 그 집 엄마가 계셔서 일단 어디든 들어가면 밥은 먹고 나왔다. 집에 있는 것도 다 가지고 나와서 같이 나눠 먹었다. 누구는 막 만들어 아직 덜 딱딱한 콩장도 가지고 나오고, 누구는 지금 막 긁어 돌돌 말린 따뜻한 누룽지도 가지고 나왔다. 내 별명은 생쥐였다. 집 냉장고에서 오만 거 다 가지고 내어가서 먹는다고.

 하지만 이런 거로 혼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누구도 이렇다 할 장난감 하나 없으니, 어느 집에 놀러 가도 누구 것이 부러운 적이 없다. 누가 더 잘 살지도, 누가 더 못 살지도 않았다.

그 골목 아이들은 더운 여름에도 추운 겨울에도 한결같이 노는 본분을 잘 지켰고, 그 골목 어른들은, 여름엔 얘들 더울까 바가지로 물을 뿌려 대문 밖 땅을 식혔고, 겨울이면 얘들 미끄러질까 대문밖에 연탄재를 뿌렸다.

갈색 머리 예쁜 우리 언니를 내 어린 쌍문동 언덕 그 골목에서 본 기억은 별로 없다. 언니는 벌써 산을 타고 있었을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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