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 知 (알 지) 垠 (언덕 은)
내 이름은 아빠의 엄마가 지었다.
정확히는, 신과 은밀히 내통한다는 효자동 작명소 남자에게, 아빠의 엄마가 큰돈을 주고 지어 왔다.
70년대 강남에서 왜 효자동까지 가서 이름을 지어 왔는지 알고 보니 나름 집안 전통이 있어서 이다.
'벽봉', '이벽봉'이었던 작은 아버지의 이름을 '이○준'이라고 개명을 해준 계기로 우리 집 이름은 죄다 효자동 작명소에서 지어왔다. '이벽봉'에서 '이○준'이 되신 후로 작은 아버지 인생은 제대로 펼쳐졌다.
과연 소문난 효자동 작명소가 아닐 수 없다. 초자연적인 힘이 있다고 믿을 수밖에 없으므로 적잖은 금액의 거래가 오갔다.
그런 효자동 작명소에서 내린 이름이 '지은'이다.
현명하고 덕망이 높은 사람이 되라고 나는 몇십 년을 지은이라 불렸다.
예정대로라면 나는 지적 능력이 충만하고, 윤리적 이상을 실현해 나가는 인격적 능력을 갖춰야 한다.
도대체 언제 현명하고 덕망이 높은 사람이 되는지는 듣지 못했다고 한다. 아빠의 엄마는 작명소 남자에게 돈을 조금 더 얹어 줬어야 했다. 본인이 작명한 아이가 언제 현명해지는지, 당최 현명해지기는 하는지 그때 다짐을 받았어야 한다.
지금이라도 알고 싶어 찾아봤다, 신과 은밀히 내통한다는 그 효자동 작명소 남자. 하지만 신과 은밀히 내통한다는 그 남자도, 효자동 작명소도 흔적도 없다. 하긴 그렇게 영엄하다면 이미 애저녁에 노가 나서 프랜차이즈에 분점, 지점, 해외 지사까지 차렸겠지.
어딘가에 있을 작명소 남자, 아직 지혜롭고 덕망을 떨치고픈 나에 대한 나의 기대에 대해, 일말의 책임을 묻고 싶다.
나는 이지은이다.
성도 대한민국에 가장 많은 성씨 중에 하나이고, 이름마저도 흔하디 흔하다. 브런치 작가님들도 십 수명인 것으로 알고 있다.
초등학교 때는 한 반에 지은이가 4명인 적도 있었다. 김지은, 한지은, 박지은, 정지은... 그나마 한 반에 성씨까지 같은 아이가 없었던 것은 학교의 속 깊은 배려였나 보다.
지은이만 있음 그나마 다행이다. 지연, 지현, 지윤, 지인... 비슷한 음절까지 합치면 여간 헷갈리는 게 아니다.
게다가 고학년이 되면서부터는 국어시간엔 그렇게 다들 지은이의 의도나, 지은이의 관점, 지은이의 생각을 궁금해한다.
“지은아, 선생님이 묻잖아”
“지은아, 너 의도가 뭐냐시는데”
"지은이의 생각은 지은이가 알겠지”
본의 아니게 국어시간은 예습도 확실히 해야 하고, 수업시간엔 더 집중을 해야 했다. 내 이름이 '방정식'이나 '미적분'이 아님을 그나마 다행으로 여겨야 했을까.
그 많은 지은이 중에 유난히 튀지 않는 지은이였다. 그러는 와중에도 내 나중에 크면, 반드시 온 세상 이지은 중에 제일 유명한 지은이가 되리라, 어린 마음에 굳은 다짐 한 적도 있다.
그럴 수 있지 않은가, 어린 치기에.
그런 때 있지 않은가, 자기에게 무한 관대할 때...
... 아이유가 나왔다.
이번 생은 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