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보상을 받고 싶은 날에는 자기 전에 밤을 깐다.이대로 하루를 마감하기에 아쉬운 날, 밤을 냄비 가득 쪄서 리틀 포레스트를 틀어놓고 그걸 다 까고 나면 하루 임무를 완수한 느낌이 든다. 나에겐 거창한 마인드 테라피보다 밤까기가 더 효과적인 힐링이다.
한창 인생의 암흑기를 달리던 21살 가을, 금요일 저녁이 되면 밤 한 봉지를 쪘다. 그리고 모두가 잠들면 밤 냄비를 방에 가져와 책상에 놓고, <리틀 포레스트>를 세팅한 뒤 주구장창 밤을 깠다. 이건 명백하게 노동이 아닌 힐링이므로, 천천히, 버리는 살이 없게 조심히 밤을 까야 한다. 보통 까다보면 영화가 끝나는데, 그럼 <카모메 식당>, <남극의 쉐프>와 같은 리틀 포레스트 류의 영화를 다시 세팅하고 밤을 계속 깐다. 그렇게 밤을 다 까면, 사람들이 깨지 않게 밤 껍질과 깐 밤을 정리하고 잘 준비를 한다. 같은 자세로 오래 칼을 쥐어 얼얼해진 손가락을 안고 잠자리에 들 때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뭘 해도 쉽게 마음이 채워지지 않던 시절, 야밤의 밤까기는 내가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선물이자 위로였다. 아마 그 해에 깐 밤을 다 합하면 못해도 100알은 넘을 것이다.
밤을 다 깠을 때의 성취감도 좋지만, 나는 밤을 까는 과정을 참 좋아한다. 찜기에서 막 꺼낸 밤의 따뜻한 감촉과 촉촉하게 젖은 밤의 갈색, 속살이 다치지 않게 조심조심 밤 까기에 몰두하는 순간과, 스탠드 불빛만 있는 어두운 방에서 잔잔하게 영화가 흐르는 가운데, 사각사각 밤 까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고요한 시간들이 좋다. 마치 시중의 맛밤처럼 밤이 잘 까졌을 때의 쾌감과, 국그릇 한가득 밤을 쌓아 식탁에 올려두고는 오래 힘을 주어 잘 움직이지 않는 오른손을 쥐락펴락 하며 잠자리에 들 때의 충만함이 좋다. 어쩌면 나는, 단순히 밤까기를 좋아했다기 보다는 여러가지에 곤두서있던 일상에서 벗어나 단순한 무언가에,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에 몰두할 수 있는 그 시간을 좋아했을지도 모른다.
오늘도 밤을 깠다. 가스레인지도, 큰 냄비도 없는 기숙사에서, 미니 찜기로 조촐하게 8알을 쪄서 깠지만, 오랜만에 밤을 까니 한 냄비 가득한 밤을 까던 때가 떠올라 즐거웠다.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 밤을 내가 다 먹어야 한다는 것. 야밤의 밤까기 활동의 묘미는 누군가 내가 깐 밤을 홀라당 먹어버리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새벽녘 밤까기에 지쳐 잠들었다가 늦잠을 자고 일어나면, 식탁에 올려놓았던 그릇 가득한 밤이 어느새 한두알 남아있곤 했다. 물론, 성장기 청소년 2명과 그들을 만든 아버지, 그리고 밤 킬러 엄마가 있는 집에서 탐스러운 밤 한 그릇을 식탁에 무방비로 올려둔 것은 밤에 대한 소유권을 완전히 포기한 것과 다름없는 행위로, 사실 먹으라고 놔둔 것이긴 하다. 그러나 괜히 "누가 내 밤 다 먹었어!"라고 한 뒤,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는 의롭지 못한 가족들을 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기 때문에, 이 과정은 야밤의 밤까기 활동 마지막 단계로 포함할 가치가 충분했다. 이 과정을 생략하려니 뭔가 완성되지 못한 듯 하여 아쉽지만, 그래도 기숙사에서 밤을 깔 수 있었다는 것에 만족한다.
중간고사가 끝나면 밤을 한봉지 사려 한다. 밤을 잔뜩 쪄서 새벽 늦게까지 밤을 까다 자고 싶다. 취업이니 시험이니 다 벗어나, 밤(열매)과 나만 존재하는 밤(시간)을 나에게 선물하겠다. 침대에 누워, 피아니스트는 못되어도 밤까기스트는 될 수 있겠다는 아무짝에 쓸모없는 생각을 하며, 한껏 충만한 기분으로 잠에 들고 싶다. 그렇게 오늘은 무언가를 해냈다는 마음으로 자고 일어나면, 다음 날을 힘차게 살아갈 힘이 생기리라 기대해본다.